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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길이음 Apr 05. 2022

늦깎이 대학원생 살아남기
#2 논문계획서

나는 아직도 '논문'이라는 이 단어에 애증이 있다. 매번 논문을 왜 써야 할까?라는 고민에서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분야에 관심은 있으나 딱히 이것만은 내가 연구하여 세상에 알리고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크지는 않은 것 같다. 음..... 그러면 왜 대학원에 와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가?


처음 나와 '논문'의 형태는 '연구보고서'라는 이름으로 일을 통해 만났다. 일에 필요한 내용을 논문 형식이나 연구보고서 형태로 이야기하고 만드는  일은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나오는 '연구보고서'속에 주장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고자 했고 일을 담당하는 담당자는 그 판을 열어주는 자리로서 '연구보고서' 만드는 과정을 함께하는 것이었다. 일을 통해 이 방법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한 목소리를 내고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확신이 들기 시작했고 나는 어느새 함께 모여 연구할 수 있는 방식의 일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나는 솔직히 똑똑하거나 영민하지도 않고 예리하지도 않다. 그저 다른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했고 그런 그들의 이야기를 일이라는 상황에서 통용될 수 있도록 '연구보고서'라는 결과물로 만들어 냈다. 


그러나 현장의 언어와 학문의 언어가 다름을 느끼는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아 알게 되었다. 현장에서 하는 이야기는 실용 어이고 학문에서 이야기는 학술어이어야만 했다. 이 언어들의 실질 내용이 다르지 않지만 최종 정리될 때는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들까? 고민하기 시작했고 나는 내가 직접 공부해 보고 싶다는 쓸데없는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허전한 한 귀퉁이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이제는 '연구 보고서'가 아닌 나만의 '논문'을 써 보리라 생각하고 대학원에 도전했다. 그런데 이 도전은 너무 무모했다.


 반백살 문턱에서 도전한 대학원 도전기는 운이 좋게도 혼자 지망해서 당당히 합격하였다. 대체로 실용학문 위주로 흘러가는 분위기에 대학원에서 야간이나 주말반을 찾기가 쉽지 않았고 학비 부담이 만만치 않았기에 직장인이나 나이 든 사람들의 도전이 점차 줄어드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기롭게 도전한 나는 나의 무지함을 잘 알기에 적응기에는 오로지 공부만 하겠다고 선언하고 직장도 그만두고 시작하였다. 시간을 내어 주시겠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한 학기 박사과정에 돌입하였다. 일로 만났던 수많은 박사님들이 존경스러워졌고 10여 년 넘게 공부를 하지 않다가 책을 잡고 논리를 잡아간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그 과정 속에서 나의 희망만큼 나의 지식과 건강은 좋지 않았고 급기야 교통사고까지 내는 사단을 내고 말았다.  집안 식구와 주위 분들은 무슨 공부를 한다고 그러냐? 면서 걱정 어린 말씀들을 건네주셨다. 결국 나는 나의 모자람을 인정하고 나보다 젊은 나의 딸에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공부를 1차 접었다. 자퇴하기는 싫고 휴학이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여지를 남겨두었다.


시간은 금방 흘러 휴학도 6번 하고 3년의 시간이 흘렀을 때 학교 조교로부터 경고장이 날아왔다. 이번에 등록 안 하시면 제적된다고 전해왔다. 마음은 하고 싶으나 경제적 상황과 체력적 한계를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도전이 쉽지 않았다. 포기하려던 찰나에 평소에 알고 지내던 교수님으로부터 편입의 권유를 받게 되었고 기존 수강했던 과목이 인정된다는 말씀을 전해 듣고 다시 '공부'라는 열차에 탑승하게 되었다. 이번 최종 목적지는 '논문'을 써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무엇을 쓸 것인가'에서 초점이 점차 흐려져 갔다. 내가 처음 욕심을 내었던 분야는 현재의 상황에서 맞지 않게 되었고 '논문 주제' 잡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그런 상황 속에 어찌어찌하여 '논문계획서'까지 내고 마는 상황이 되었다.




그냥 하면 안 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데 그냥 하고 있다. 못다 이룬 나의 꿈이라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인지, 나도 모르는 박사님에 대한 동경이 있는 것인지..  늦깎이 대학원생이 되니 더욱 나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는 것 같다. 


논문 계획서를 쓰면서 더욱 크게 다가온 나는 무엇을 하려 하는가??? 이 질문에 답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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