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혼자
어느 순간부터였다.
흘러가는 하루가 탈진한 듯
보라색 작약꽃처럼 쓰러져 물들고,
노을 아래를 걷고 있던 그때,
나는 그렇게 혼자이기를 다짐했다.
침입을 허락하지 않게 된 것은 홀로 있다는 감각이 유난히도 좋게 스며들기 시작한 때부터였다.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이도, 내가 누구였는지 기억해줄 사람도 점점 사라져 간다는 사실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나는 아무도 모르는 산에서 내려온 사람처럼, 나를 증명할 흔적 없이 존재하고 싶었다.
나의 발자국이
나른한 오후의 빛 속에서
조용히,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그런 작은 마법이 일어나기를
지금도 여전히 바란다.
내 방의 하얀 벽을 넘어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고
지금 이 방은 마치 인생과 하루처럼
깊이도 없고
중단도 없으며
시간이 없고
기다림이 없다.
그러므로 완벽하게
나와의 거리가 없어진 것이다.
혼자라는 이름이 가득하다.
절제하여 말할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는
혼자.
움직이지 않는
침묵을 좋아하고
몇 순간 안에
폭발과 은닉을 반복할 수 있는
임박하지 않은 상태.
나와
정면 대 정면
마주한 자리에
혼자이나 혼자가 아닌 상태.
시간.
목적.
어떠한 내일의 지령 없이
매일을 매듭지는 밤에 자리한
혼자.
생각이 머물던 시간은
거짓말처럼 흘러가고,
이내 드러나는 것은
움직임의 속도였다.
혼자일 때에만
비로소 가득해지는 감각,
모든 것을 발견하게 하는 존재로서의 나.
더욱 거대한 시간을 느끼며,
검은 진주의 은은한 빛처럼
드러나지 않고,
그 찬란함을 간직한 채.
아무것도 스며들지 않는 순간을 즐기는
혼자는
그저 잠잠하다.
누적됨이 없이
증폭되는
잃은 것 같지만
전혀 잃은 것이 없이
가득해지는 얻음을
가운데로,
더 깊이,
재어봄 없이
그대로
심장 곁에 가져가게 되는 혼자.
움직임과 작은 소리로
그 차이를 쉽게 알 수 있고
다른 단어일 수가 없는
같은 대기의 부분들 속에 자리한
사람들을 피한
거리가 없는
측량이 가능한 혼자라는 존재.
혼자라는 공기 안에서
순수하게 하기 위하여
밤을 찾는다.
밤은 하얀 기둥의 광채들로 물들고, 늦게 끝나버린 매장에 남아 있을 때 내일을 준비하는 손길이 끝나갈 무렵, 갑작스러운 멈춤으로 삼켜진다. 호흡의 내어 쉼이 시작과 정지 그리고 다시 시작을 기다리며 오늘에 희생되었던 호흡을 다시 채우고 앉아 잠시 아무도 없는 매장을 바라본다.
대지는 이미 어둡고, 습기가 골고루 오점 없이 내리는 사이에 나는 연기를 피운다.
심장을 감싸고 있는 유리 속
기이하게도 그곳에 맺혀 있는 땀처럼
무엇이 안에서 떨고 있는지
무엇이 안에서 꿈틀거리는지
내 입이 놓친 한 모금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하며
나를 들어 올려
나를 풀어주는
혼자.
심장의 벽에서
오랫동안 씨름했던 하루에
자리한 혼자를 위로하는 시간.
늘 옆으로 드리워진
또 다른 나의 그림자를 벗 삼아
옷을 입고 있는지
벌거벗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또 다른 나와 함께
하루를 마감한다.
알록달록한 천에 감싸여
태어나진 못했겠지만,
적어도 그윽한 향기 속에
녹아내리지 않고 세상에 자리한
일그러지고 나서야
침묵을 선택하는
서로의 눈은
잔잔한 바람에 반짝인다.
이 그림자가 나의 전령이라면
나는 무엇이든 내놓을 것이다.
전혀
혼자인 것이 두렵지 않게
혼자서도 잘 버티게
거울 유리가 공포에 질리지 않도록
혼자인 내가 존재하고 걱정하는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동지처럼.
나는 말없이
알 수 있고
그림자를 기다릴 필요 없이
이미 늘 내 곁에 머문다는 사실에
나 스스로 그림자에 돛을 내리게 한다.
내가 너에게 열어주지 않았던 것들을
모두 열어놓은 채로.
내가 담갔던
모든 것을 느껴보라고.
나는 혼자이나
혼자가 아니다.
하루가
사라지기 직전에 잠깐 머무는 충만.
끝난 줄 알았던
계절에 다시 찾아온 따뜻함.
혼자로 돌아와
하루를 마감하며
머무는 밤.
이 곡이 생각났습니다.
피아노 선율을 남겨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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