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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와 찰스는 길 위에 조각이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존재들

by 구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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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고양이 두 마리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서로를 보지 않으면서도 같은 햇빛을 나눠 가진 채, 마치 오래 알고 지낸 두 사람처럼 편안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그 앞에 서서 발끝을 조심스레 멈췄다.



햇살은 조용했고, 고양이들의 숨결도 느리게 움직였다. 그 단순한 풍경이 이상하게 마음을 건드렸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존재들.



고양이 두 마리가 햇빛의 가장자리에 웅크리고 있었다. 하나는 낡은 돌 위에서, 다른 하나는 문턱에 몸을 붙이고 있었다. 서로를 보지 않는데도 두 존재 사이에 흐르는 온기는 이상하게 닮아 있었다.



출근 길, 집 앞 카페 모퉁이에서 마주한 두 녀석은 햇살 아래 엷은 숨을 밭게 쉬는 중이었다. 누군가에게 지어진 이름으로 불렸을지도 모르는 두 마리의 녀석들이 햇살아래 식빵 흉내를 내고 앉아 있었다.



손을 대지 않기로 했다. 녀석들의 편안함을 방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걸음이 멈춰졌다. 고양이들은 조용히 햇살을 마시고 있었다. 그저 햇빛을 받아들이고, 몸을 말리고, 누가 보든, 말든 자신의 속도로 숨을 쉬고 있었다. 나는 그 단순함이 애잔했다. 마치 너도 여기 잠깐 모든 걸 내려놓고 앉아서 햇살 좀 마시라는 듯 말없이 말해주는 것만 같아서 한참을 그렇게 서서 고양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잠시 그림자의 방향을 확인하고 고양이들에게 닿지 않게 몸을 조금 돌렸다. 그 조그만 배려가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햇빛을 바라보는 두 마리 고양이의 등을 보며 나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들의 성별도 모른채, 잠시 마주친 그들의 눈을 보고 말이다. 혹시나 오늘 같은 아침 길에 마주하게 된다면 이름을 불러주고 싶어서였다. 나를 올려다 보며 눈인사를 하는 녀석은 표정이 아름다우니 '안나'라고 부르기로 했다. 잠시 내 그림자에 가려져 짜증을 냈던 녀석은 '찰스'라고 부르기로 했다.



마치 내가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 잠시 멈춘 길의 조각처럼 느껴졌다. 이상하게 너무나 아름다운 조각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햇살이 벽을 따라 흘러 그들의 등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울음도 없고, 움직임도 없는데 이 작은 장면은 묘하게 살아있어 보였다.



가끔은 이런 순간이 사람을 하루의 바깥으로 데려가기도 한다. 말도, 계획도, 마음의 소리도 잠시 멈춘 자리. 단지 따듯함이 머물렀다는 이유만으로 기억에 오래 남는 순간.



조용히 안나와 찰스의 이름을 불러주니, 그들은 햇살아래 눈을 반짝이며 나에게 쳐다보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눈을 깜박거리는 그들의 인사가 이상하게도 소슬하게 부는 차가운 바람이 가득한 골목길에 서 있는 내 마음을 따뜻하게 녹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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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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