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라는 투수.
삶이라는 팀에 선발투수는 언제나 에이스인 불안이었다.
무자비하게 던지는 불안의 변화구에 맞서 베트를 휘둘러 대 보지만 헛 방망이질만 하는 밤이었다. 불안은 끝없이 쳐내기 힘든 변화구를 던져 댔다. 무작정 어느 날부터인가, 써보고 있는 소설있다. 오랜시간 쓰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불이 번진 궤적을 추적하여 불씨를 찾아 더 큰 불을 막고자 하는 소방관 같은 의지에 불타 있었다. 등장시킨 인물들의 정리가 쉽지 않았다. 어느 날 문득, 소설을 써보자 마음먹었다. 원고지 100매 남짓 불량의 단편소설을 완성해 보고는, 무슨 자신감인지 장편소설을 써보고 싶어졌다. 오래 전 부터 생각해 두었던 것들을 꺼내 들었다. 그 시작은 거짓말처럼 술술 써지던 것이었다. 일을 하다 보니, 짬짬이 휴무 날이나, 퇴근 후 깊은 밤까지 소설을 썼다. 하나의 인물이 등장하고 엮이면서 쓰면 쓸수록 누군가를 반드시 죽여 없애야 했다. 이야기는 복잡해져 갔고, 그 복잡한 걸 쉽게 끝내려면, 어느 등장했던 인물을 죽여야 했다. 읽어보니 막히기 전까지는 흥미진진하다가 점점 재미가 없고 복잡했다. 정리가 필요했다.
생성의 힘을 손에 쥐고 열심히 구덩이를 파내려 가고 있는 소설의 주체성은 불안속에 땅굴이 되어 갔다. 열심히 파내려 가보지만 점점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숨이 막혀오는 가스가 가득 찬 탄광 같았다. 소설. 이거 쉽지 않구나. 독백처럼 내뱉은 뒤, 그동안 썼던 글들을 다시 읽어 보았다. 잘 쓰려는 것인지, 이 소설을 쓰는 이유가 정확히 전달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에 의도했던 것과 다르게 헷갈리기 시작했다. 잠시 쓰던 모든 글을 덮어 두었다.
잠이 오지 않아 커피를 내려버렸다. 출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놀랍지도 않았다.
서점에 들러 산 젊은 작가들의 단편이 엮인 책을 펼쳐 보았다. 글이 끝나고 작가의 말에는 모두 같은 맥락의 글이 남겨져 있었다. 고통으로 물든 밤. 상처와 아픔을 견디며 쓴 글들이라는 작가들이 남긴 말이었다. 나에게는 마감이라는 것이 없는 그저 써보는 소설일 뿐이다. 나는 작가도 아니다. 등단을 하지도 않았다. 왜 이렇게 열정적이게 잘 쓰려고 노력하는지 잠시 생각했다. 직업도 아니고 그저 써보는 소설일 뿐이었다. 나에게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 있을 것이었다. 억지로 쓸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천천히 써가기로 마음먹고 따뜻한 커피를 들이켰다. 그리고 젊은 작가들이 쓴 글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날씨는 믿기 힘들 만큼 금세 차가워졌다는 걸 눈을 뜨고 알았다.
바보처럼 밤새 열어 두었던 창문 사이로 스며들어 방안을 가득 매운 차가운 공기에 강보에 싸인 아기처럼 이불을 말고 잠시 움직이지 않았다.
밝아오는 햇살이 벽들에 선을 긋고 있었다. 거미줄같이 길게 그려진 선을 잠시 바라보았다. 온몸으로 내면화하는 자의 그림자도 새겨진다. 불안이라는 투수가 던진 변화구를 쳐내지 못하고 타석에서 내려와 고개를 떨구는 중년의 사내 그림자가 새겨졌다. 수치심과 패배감은 따뜻하게 흐르는 물에 씻어냈다. 심연에 잠식당하는 불안이라는 것은 늘 그랬다. 불길함의 증조 혹은 불행의 근원에 대해 샤워를 하며 떠올려 보지만 모르겠다. 왜 자꾸 마운드에서 불안이라는 변화구가 던져지는지 말이다. 하루를 시작하기에 유쾌하지 않은 생각들이 번졌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어쩌면 욕심을 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늦게나마 해보고 싶던 신춘문예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매일 글을 쓰며 마음을 달래는 일이 직업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그때마다 달라붙는 불안이라는 것은 변화의 주범이 되기도 했다. 모든 것이 정해져 있고, 오래된 일을 쉽게 그만두기에는 하자가 많았다. 머리로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다시 생각을 고쳐 먹지만, 계속해서 글을 쓰게 된다라는 사실에 늘 책상으로 기울져 있는 그림자 하나가 불안하게 떨리고 있는 밤이 많았다. 불면은 늘어갔다. 일상은 피곤했다. 그리고 그렇게 밤은 깊어져 책상에 앉아 있는 그림자는 길었다.
실존적 소외는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주는 것이다. 가끔씩 이렇게 실존적인 불안이 형상화되면 마음은 무거워진다. 불행과 행복이 엉켜 있는 미지수 같은 지금은 그렇다. 차가운 진실과 뜨거운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이 맞물려 김을 내고 있었다. 험한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삶의 난관들로부터 생존하는 것이므로 잔인한 진실이지만 여전히 나는 조력이나 연대는 필요하지 않는다. 해우소에서 일보는 것처럼 혼자 볼일이다.
불안이라는 것에 잠식당할 때면, 그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해 내기 시작하는 게 사람의 뇌이다. 뇌도 불편한 건 싫다는 뜻이다. 나는 그 불안이 잠식할 때까지 내버려 두는 편이다. 어디까지 인지, 무엇이 불안한 것인지 불안이라는 투수가 마운드에 들어서서 나를 노려보다가, 변화구를 던져 대기 시작하면 나는 깨끗하게 삼진 아웃을 당해준다. 그리고 타석을 벗어나 벤치에 앉아 저따위 변화구를 못 쳐내는 이유를 생각한다. 그래도 늦지 않다. 스스로가 일궈내야 할 일에는 늘 끈질긴 태도가 필요했다. 불안의 힘과 격돌 속에 승리하여 안타를 치거나 홈런을 치고 불안이라는 투수를 비웃어 주며, 홈 베이스를 밟는 꿈을 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