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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도 새로운 전구를 갈아 끼워야 할 때가 있다

완전하지 않은 세상. 그 안에 사는 우리를 위해

by 구시안


완전하지 않은 세상에서, 완전하지 않은 우리를 위하여




이른 아침. 시청 거리를 걷는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피해 외진 골목으로 돌고 돌아, 고요하고 허름한 카페 구석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나름대로 바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완벽한 조명을 갖춘 구석자리에서 하는 생각들은 카페의 커피 맛만큼이나 씁쓸하지만 여운이 남는 것들이었다. 특이한 건 사람들 손에는 전혀 들려있지 않은 우산을 비가 내릴지도 모른다는 '촉' 하나를 믿고 검정 우산 하나를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병신. 상쾌하지 못하게도 짐이 하나 늘게 되었다.



이동, 변화, 사람. 인간. 교환. 병신. 노동. 진실. 억측. 정보. 거짓. 요즘 내가 생각하는 단어들이다. 이 모든 것은 어느새 우리에게 일상적이고도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변화는 더 이상 특별한 사건이 아니며, 어느 순간부터 삶에 스며든 ‘기본값’처럼 느껴진다. 반복되는 경험 속에서 무뎌짐이 숙성되고, 그 무뎌짐은 잘 로스팅된 원두가 진한 향을 내며 한 방울씩 떨어지는 커피처럼 묵직하게 마음에 내려앉는다.



그래서일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마음 한가운데에 ‘중심’이라는 무게가 만들어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사소한 문제에도 마음은 흔들렸고, 생각은 분주해졌으며, 에너지는 여기저기 흘러나갔다. 그러나 이제는 해결책이 따로 없는 일조차 시간에 맡겨두는 지혜가 생겼고, 무의미한 소모를 경계하는 능력이 체득되었다. 이것은 어쩌면 나이가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은밀하고 고마운 선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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