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이 무성하게 퍼진 골목

바람보다 빠르게 번식하는 소문

by 구시안


무성한 소문은 언제나 사람의 그림자보다 먼저 걸어가는 존재다.

소문은 빛이 닿지 않는 골목에서도 스스로 번식하며 커져가는 생물처럼 느껴지고. 지난밤 누군가의 이야기로 물들어진 거리에 깊게 자리하고 있던 무거웠던 소문들이 기지개를 켜는 것처럼. 모두가 정렬된 소문들이 빛에 스며들며 지금 걷고 있는 거리에 나열되고 있는 듯했다. 누가 처음 퍼뜨렸는지는 이미 잊혔지만, 그 말의 꼬리를 붙잡고 자신만의 해석을 더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늘어나는 형상처럼. 사람이 빠진 텅빈 골목에는 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사람은 왜 이토록 쉽게 소문의 바람에 흔들리는가.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이들이든, 매일 스쳐 지나가는 평범한 얼굴들이든, 우리는 모두 타인의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의 파동 앞에 비슷하게 놓인다. 확인되지 않은 말의 파편이 혀끝에서 굴러다니는 이유는 어쩌면 그 말의 달콤함이 아니라, 마음속 빈자리를 잠시 채워주는 그 즉각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소문은 진실보다 먼저 손을 내밀고, 사람의 마음은 그 선뜻 내밀린 손길을 너무 쉽게 붙잡아버린다. 그렇게 우리는 타인의 이야기를 전한다기보다, 사실은 자신이 믿고 싶은 세계의 단편을 흘려보내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설명이 비어 있는 공간을 견딜 수 없어 허구를 가져다 놓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게 소문이다. 말의 흩날림속에 번식하는 날카로운 가시같은 것. 정확한 건 하나도 없는 것.



진실은 종종 느리고, 불확실하며, 불편하다.

반면 소문은 빠르고, 직관적이며, 달콤한 확신을 흉내 낸다. 그럴듯하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의 귀와 입을 점령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확증 편향이 바로 이것이다. 내가 이미 믿고 싶은 방향으로 사실을 비틀어 보는 경향. 소문은 그 틈에 대담하게 들어와 자리를 차지한다.



평판이라는 것은 본래 유리잔 같은 것이다.

작은 금 하나에도 전체가 깨져 보인다. 사람들은 유리의 투명함보다 금의 어둠을 먼저 확인하려 한다. 누군가에게 금이 발생하면, 이유도 묻지 않은 채 그 금을 확대해 해석한다. ‘원래 그런 사람일 것이다’라는 단정은 이해의 포기이자 상상력의 오용이다. 결국 소문은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을 말하는 사람의 욕망이 비친 그림자에 가깝다.



우월감, 지루함, 자기 방어, 결핍.

소문은 이런 마음의 조각들이 뒤섞여 만들어지는 이야기다. 소문을 전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감정으로 그 말을 되풀이하는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 인간이란 결국 자기 말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고 싶어 하지 않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익명성의 뒤편에서 타인을 다뤄보려 한다.



무성한 소문의 가장 비극적인 점은 진실을 확인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진짜’보다 ‘그럴듯함’을 선택한다. 다가가 물어보는 것보다, 멀찍이 서서 판단하는 쪽을 더 안전하다고 여긴다. 그렇게 소문은 원형을 잃고, 타인의 삶을 소비하는 조용한 폭력으로 변한다.



소문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강한 마음을 갖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시선을 진실 쪽으로 향하게 하겠다는 선언이다. 남의 말이 아닌 자신의 언어로 자신을 규정하겠다는 의지다. 타인을 쉽게 재단하는 데 동참하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품이다. 무성한 소문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지만, 그 바람에 꺾이지 않는 뿌리를 가진 존재로 남겠다는 말이다.



말이란 본래 빛을 비추는 도구가 아니라,

어떤 손에 들리느냐에 따라 칼이 되기도 하고 다리가 되기도 하는 것이라고.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타인의 진실을 확인하려는 수고보다 그럴듯해 보이는 이야기의 가벼움을 선택한다. 확인되지 않은 말들을 옮기며 스스로는 아무 책임도 없다고 믿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가장 쉽게 빠지는 자기기만일 것이다.



언론도, 대중도, 개인도 이 자기기만 앞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소문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기는 속도로 번식하는데, 그 상처의 무게는 아무도 재려 하지 않는다.
정확함보다 속도를, 진실보다 흥미를 선택하는 순간 우리는 말이라는 도구를 통해 타인의 삶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소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들려오는 말보다 침묵 속에서 흔들리는 진실을 먼저 들여다보겠다고.

타인의 삶을 얕은 해석으로 재단하는 대신 가까이 다가가 ‘사실’을 묻는 사람이 되겠다고. 세상은 언제나 떠도는 말들로 시끄럽지만, 그 소음 속에서도 자신의 시선을 잃지 않는 사람만이 끝내 흔들리지 않는 뿌리로 남을 수 있다.



소문은 사람을 죽일수도 있는 날카로운 칼이다.

모든 것에는 그들만의 서사가 있다. 그것을 확인하는 일을 하는 곳이 공권력이다. 기다리면 안다.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자신이 잘못하면 용서받길 바라면서, 남이 하면 벌을 받길 바라는 이상한 심보가 있다.

아직 확인이 안 된 이야기에 시끄럽게 나불거리는 언론도 싫다. 어쩌면 우리 세금은 무성한 소문을 퍼트리는 것에 쓰여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문은 조장이 되고 확장된다. 그리고 그 확장은 사람을 죽일수도 있다.



어딘가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삶을 가볍게 입에 올리며 자신은 그 말의 대상이 될 리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은 늘 등잔 밑의 어둠을 보지 못한 채 다른 이의 그림자만을 더 선명하게 좇는다. 멀리 있는 타인의 흠을 찾는 데 익숙해지는 동안 정작 자신의 내면에서 자라나는 어둠에는 무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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