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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의 바다

바다의 품속에서

by 구시안
팔라우.png



바닷속은 말이 없었다.
깊어질수록 어둠은 더욱 진해지고, 별들의 속삭임조차 스며들지 못했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차단된 그곳에서, 나는 숨을 고르고 몸을 맡겼다.

물속은 차갑고 무거웠다.
처음 발을 담갔을 때의 충격과, 몸 전체로 전해지는 압력.
숨을 들이쉴 때마다 공기가 폐를 채우고,

내 몸은 물속에서 부유했다.


어릴 적 냉탕 속 철제 사다리에 팔을 끼우고 숨을 참던 순간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물속이 주는 완전한 평화를 느꼈다.

사춘기를 지나, 수영을 배우며, 물속은 내 두 번째 세계가 되었다.
팔을 저으며 물을 가를 때마다, 온몸과 마음은 진공 상태로 들어갔다.



숨을 참는 순간, 물의 무게와 압력이 나를 감싸고,
나는 시간과 존재의 무게에서 자유로워졌다.

빛은 희미하게, 물결 속에서 춤을 추며 손끝을 스친다.
모든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지면서,
나는 오직 존재 그 자체가 된다.

아무 소리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잠수를 배우고 팔라우의 심연으로 들어갔을 때,
바다는 내 몸과 마음을 완전히 삼켰다.
숨을 고르며 깊이 내려갈수록,
압력은 점점 몸을 누르고,
시야는 점점 어두워지고,
나는 세상과 완전히 단절됐다.

그 편안한 방처럼 느껴지던

고요한 심연의 바닷속에 나를 담갔다.



물속에서 느끼는 모든 것은 말이 필요 없었다.
미세한 조류가 몸을 스치며 남기는 감각,
산소통의 공기가 가슴을 채우는 리듬,
빛과 그림자가 부서지는 속도까지
모든 것이 내 감각 안에 들어왔다.



산소통을 벗고

다시 들어간 심연 속에 유영은

우주같이 느껴졌다.

진공상태로 포장된듯한

몸과 육체가 단단히 물속에 잡혀 있는 느낌이었다.



움직이지 않고,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것을 느꼈다.

아무런 장비 없이도 잠수할 수 있을 때,
나는 물속과 완전히 하나가 됐다.


숨을 참으며 부유하는 동안,
바다는 나를 안고, 나를 비우고,
고요 속에 몸을 맡기게 했다.


시간은 느려지고, 물속의 밀도와 온도,
바다의 숨결까지 온몸으로 느껴졌다.

어디선가, 해초사이에 자신의 몸을 숨기고

물속에 떠있는 나를 보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인어를 상상하기도 했다.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 평화는 쉽게 사라졌다.
도시의 소음과 사람들의 움직임이 기억의 고리를 끊었다.

그러나 잠을 이루지 못하는 새벽,
나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간다.
숨을 참으며, 몸을 맡기고,
빛과 그림자가 춤추는 심연 속을 떠올렸다.



바다는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눈을 감고 바다가 허락해 줬던

그 고요한 방 안에 머물 때가 있다.
그리고 눈을 뜨면 다시 떠오른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항상 그 바다,
그 심연 속에서 느꼈던 완벽한 평화가 그립다.


나는 단지, 다시 그 방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다시 숨 쉬고, 다시 부유하고,
다시 깊은 심연의 바닷속에 나를 안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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