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침표

아직은 희미한 점

by 구시안
다운로드 - 2025-12-13T235036.704.jpg



무엇인가의 시작에는 늘 끝이 존재한다.

끝을 알기에 사람은 조심스럽게 시작하고, 때로는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으려 한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일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애써 혼자가 되더라도 끝내 혼자가 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달콤한 근심을 종이학보다 조금은 더 복잡한 모형처럼 고이 접어두었다. 펼쳐지면 아플 것을 알았기에, 그 접힌 자국 안에서만 조용히 숨 쉬게 두었다. 결국 한 사람으로 가득 차버리는 그 나른한 고통이 싫어서였다. 나는 누군가에게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고민하다가도, 아무것도 되어주지 않는 편이 어쩌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언젠가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그 인연은 결국 만나게 될 것이라는 희미한 믿음을 놓지 않았다.



살다 보면 현실이 가장 잔인한 순간이 될 때가 있다.

평생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죽을 때까지 한 사람과 산다는 것은 어쩌면 사랑보다 무거운 일이기도 하다. 아마 그 부담감 하나만으로, 나는 혼자이길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퇴근길, 늦은 시각 들른 가락국숫집에서 가락국수 한 그릇과 김밥을 시켰다. 혼자 밥을 먹는 일쯤은 이제 아무렇지 않다. 젓가락으로 면발을 집어 들었을 때, 김이 피어오르는 그 한 줄기를 한참 바라보다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나온 적도 있다. 살아가다 보면 문득, 혼자 감당해야 할 무게가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가장 흔한 이야기들이 모여 가장 무거운 이야기가 되는 것, 그것이 사람의 삶이다.



내 마음속에는 말보다 생각이 많다. 늘 그래왔다.

그래서 나는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 가까이 있지만 식구라 부르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고, 친하다고 믿었지만 더 이상 친구라 부를 수 없는 관계도 있다. 의심하고, 원망하고, 그러다 하루를 흘려보낸 적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미 마침표가 찍힌 일들에 다시 마침표를 찍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지나간 것은 되돌릴 수 없고, 되돌릴 수 없기에 그 자리에 남겨 두어야 한다는 것을. 늘 그랬듯이 시작에는 끝이 있고, 끝을 알아야 비로소 또 다른 시작이 가능하다. 나는 오늘도 조용히 마침표 하나를 찍는다. 그것은 종착이 아니라, 내가 다시 살아가기 위한 아직은 희미한 점 하나 같은 작은 마침표를 찍는 일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심연의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