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은 많다
착한 사람은 많다.
그러나 세상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다. 이 단순한 모순 앞에서 우리는 자주 침묵을 선택한다. 침묵은 안전하고, 침묵은 예의 바르며, 침묵은 때로 도덕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관은 흔히 ‘착함’의 다른 이름이 된다.
착한 방관자는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남을 해치지 않으며, 자기 몫의 삶을 성실히 살아간다. 문제는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해야 할 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세상은 늘 작은 균열에서 무너진다.
불합리는 처음부터 거대한 얼굴로 나타나지 않는다. 조금 불편한 농담, 한 사람쯤은 감내해도 될 차별, 지금 말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은 침묵. 그 사소함들이 겹쳐 구조가 된다. 그리고 구조는 개인의 선의를 가볍게 압도한다.
착한 방관자는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다.
이건 잘못되었다는 것을. 누군가는 다치고 있고, 누군가는 침묵 속에서 고립되고 있다는 것을.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나선다고 뭐가 달라질까.” 이 문장은 체념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책임을 유예하는 가장 온순한 방식이다.
우리는 종종 착함을 무해함으로 착각한다.
아무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태도, 분란을 일으키지 않는 선택, 중간쯤에 머무르는 자세. 그러나 무해함은 언제나 선한 결과를 낳지 않는다. 때로 그것은 악이 자라도록 충분한 공간을 제공한다.
불의는 혼자서 오래 버티지 못한다.
그것이 지속되는 이유는 늘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동의하지 않아도,
조용히 지나쳐 주는 시선만으로도 불의는 자신이 허용되고 있다고 믿는다.
착한 방관자는 자신을 이렇게 위로한다.
나는 가해자가 아니라고. 그러나 역사는 가해자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 ‘상황이 복잡하다’는 말로 거리를 둔 사람들의 합이 하나의 시대를 만든다.
철학은 오래전부터 이 문제를 알고 있었다.
악은 언제나 괴물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고. 대부분의 악은 무난하고, 평범하며, 자기 할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얼굴을 하고 있다고. 그 얼굴 옆에는 늘 착한 방관자가 서 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피하고, 오늘 하루도 무사히 넘겼다는 안도 속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은 사실 많은 일이 일어난 날이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강화된 권력, 지적받지 않음으로써 반복된 폭력, 외면받음으로써 더 깊어진 고립.
그 모든 것이 착한 하루의 그늘에서 자란다.
착한 방관자는 종종 용기를 과대평가한다.
세상을 바꾸려면 거창해야 한다고 믿는다. 큰 목소리, 위험한 선택, 모든 것을 걸어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대개 작고 불편한 행동들이다. 웃지 않는 것,
자리를 뜨는 것, “그 말은 틀렸다”고 말하는 것. 그 한 문장은 관계를 어색하게 만들 수 있고, 자신을 불편한 사람으로 보이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변화는 늘 그런 얼굴로 시작된다.
예의 바른 침묵이 아니라, 불편한 정직에서. 착함은 미덕일 수 있다. 그러나 행동 없는 착함은 윤리라기보다 자기보호에 가깝다. 다치지 않기 위해,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관계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침묵을 선택한다.
그 선택은 개인을 지켜줄지 몰라도 공동체를 지켜주지는 않는다.
착한 방관자는 세상이 나빠졌다고 말한다. 예전보다 각박해졌다고, 사람들이 이기적이 되었다고. 그러나 그 말 속에는 자기 자신을 제외시키려는 욕망이 숨어 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나는 착하다고 말하고 싶어서.
하지만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의 착함은 누군가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었는가. 아니면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정당화하는 이름이었는가.
세상은 착한 사람보다 행동하는 사람에 의해 조금씩 바뀐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불완전함을 감수했기 때문에.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했고, 움직였고,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착한 방관자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그러나 불편한 참여자는 아주 작은 균열을 만든다. 그 균열로 공기가 들어오고, 그 공기로 시대는 서서히 숨을 쉬기 시작한다.
우리는 모두 선택의 순간에 서 있다.
착함으로 남을 것인가,
책임을 질 것인가.
세상은 그 선택의 총합으로 오늘의 얼굴을 갖는다.
P.S
사색의 노트 세번째 사색을 읽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행복하고 따뜻한 크리스마스 되시길 바랍니다.
크리스마스에 일하긴 싫지만. 성탄절 출근하며
진심을 담아 성탄절 아침에 남겨 봅니다.
한해도 어느덧 마지막을 향해 달립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의 공간에 풍요로운 언어에 공감되는 마음이 많았으면 합니다.
저는 네번째 사색으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구시안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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