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끼의 노르웨이의 숲을 걷다
깊은 밤. 몇 페이지 남지 않은 다시 읽어 보게 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걸었다.
와타나베 도루가 비틀즈의 노래 Norwegian Wood를 듣고 1960년대 청춘 시절을 회상하며 시작되는 이야기는 다시 읽어보아도 새로움을 주는 이유에 대해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생각해 보게 되었다.
노르웨이의 숲은 이야기가 끝났을 때 무엇인가가 해결되었다는 안도감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한 사람의 삶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만을 조용히 남긴다. 이 소설을 덮고 나면 마음속에는 명확한 감상 대신, 오래 씹어야 할 질문들이 남는다. 왜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완전히 구하지 못하는가. 왜 어떤 사람들은 삶보다 죽음에 더 가까운 곳에 머무르는가.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은 그 모든 부재를 어떻게 견디며 앞으로 걸어가야 하는가.
와타나베 도루는 특별히 영웅적이지도, 비극적으로 과장되지도 않은 인물이다.
그는 다만 잃어버린 사람들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이다. 그러나 바로 그 점에서 그는 우리와 닮아 있다. 우리는 모두 삶의 어느 시점에서 누군가의 죽음, 관계의 단절, 혹은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경험한다. 그 이후의 삶은 이전과 같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다. 『노르웨이의 숲』은 그 애매하고 불편한 상태, 즉 계속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의 조건을 집요하게 응시한다.
나오코는 죽음에 가장 가까이 서 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기즈키의 죽음을 애도하지 못한 채, 그 사건 안에 갇혀 버린다. 그녀에게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심리적으로 나오코는 상실을 통과하지 못한 상태에 머문다. 애도란 잃어버린 대상을 마음속에서 다시 배치하는 작업인데, 나오코에게 그 작업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녀의 사랑은 현재형이 아니라 과거에 붙들린 사랑이며, 삶을 향한 의지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조용한 동조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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