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얼굴을 한 착취에 관하여
이해득실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 먼저 계산한다. 이 만남이 나에게 이득이 되는지, 이 말이 손해를 부르지는 않는지, 이 침묵이 더 안전하지는 않은지. 감정마저 손익계산서 위에 올려놓고, 관계는 투자처럼 관리된다. 오래된 신뢰보다 당장의 효율이 우선되고, 진심은 가성비 앞에서 자주 밀려난다.
이런 세상에서 조용히 등장하는 존재가 있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어디에나 있는 사람들. 나는 그들을 도굴꾼이라 부르고 싶다.
도굴꾼은 무덤을 파헤치는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도굴꾼은 살아 있는 사람의 마음을 파헤친다. 아직 식지 않은 상처, 충분히 애도되지 않은 기억, 미처 정리되지 않은 관계의 잔해 속으로 들어가 자신에게 쓸 만한 것을 골라낸다. 그들은 공감하는 척하며 정보를 캐고, 이해하는 척하며 약점을 수집한다. 그리고 필요할 때, 그 파편들을 꺼내 이득으로 바꾼다.
도굴꾼은 감정에 능숙하다.
타인의 취약함을 빠르게 알아보고, 어떤 말이 문을 여는지 잘 안다. 그러나 그 능숙함은 돌봄을 향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용을 위한 감각이다. 도굴꾼에게 타인의 고백은 위로의 대상이 아니라, 활용 가능한 자원이다. 그래서 그들의 경청은 깊어 보이지만, 늘 어딘가 비어 있다.
도굴꾼의 세계관은 철저히 수단적이다.
인간은 목적이 아니라 도구가 된다. 관계는 만남이 아니라 거래가 되고, 대화는 교류가 아니라 채굴의 과정이 된다. 무엇을 주고받았는지, 누가 더 가져갔는지가 관계의 성패를 결정한다. 이때 사라지는 것은 윤리다. 아니, 윤리는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다.
사회는 이런 도굴꾼을 은근히 부추긴다.
경쟁은 미덕이 되고, 결과가 과정을 덮어버린다. 누군가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는 것을 넘어, 실패 그 자체를 발판으로 삼는 태도가 자연스러워진다. 타인의 고통을 콘텐츠로 소비하고, 상처를 서사로 포장해 주목을 얻는다. 애도의 시간은 짧고, 이용의 속도는 빠르다.
도굴꾼은 밤에만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은 햇살에 적응한 뱀파이어처럼 밝은 낮에도 활동한다. 웃으며 악수를 하고, 따뜻한 말로 다가오며, 신뢰라는 이름의 문을 연다. 그리고 사람들이 가장 방심하는 순간. 마음이 열렸다고 믿는 그때. 조용히 손을 뻗는다. 그 손길은 폭력이 아니라, 친절의 형태를 띤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그러나 도굴꾼의 가장 큰 비극은, 결국 그들 자신에게 돌아온다.
끊임없이 남의 마음을 파헤치며 살아가는 사람은, 어느 순간 자신의 내면이 비어 있음을 깨닫는다. 진짜 관계가 남지 않고, 계산되지 않은 온기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 모든 것이 교환 가능했던 삶의 끝에서, 그들은 교환할 수 없는 외로움과 마주한다.
이해득실의 세계에서 도굴꾼이 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대단한 도덕성이 아니다.
오히려 아주 기본적인 태도다. 타인의 이야기를 내 것이 아닌 것으로 존중하는 마음, 누군가의 취약함 앞에서 이득을 계산하지 않는 망설임, 그리고 가져갈 수 있어도 가져가지 않는 선택. 이 선택은 손해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인간으로 남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모든 사람이 계산하는 세상에서, 계산하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어 보인다.
그러나 그 어리석음 덕분에 세상은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여전히 지켜야 할 선을 남겨두고, 누군가는 파헤치지 않아야 할 영역을 존중한다. 무덤을 파지 않는 사람이 있기에, 기억은 기억으로 남고 상처는 회복의 시간을 얻는다.
도굴꾼은 많아질수록, 신뢰는 희귀해진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관계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훼손하지 않아야 하는가라는 질문. 이 질문을 놓치지 않는 한, 우리는 적어도 서로의 마음을 약탈하지는 않으며 살아갈 수 있다.
이해득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도, 모든 것이 계산으로 환원되지는 않는다.
어떤 것은 건드리지 않는 선택으로 지켜지고, 어떤 가치는 가져가지 않음으로 남는다. 도굴꾼이 되지 않겠다는 결심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매 순간의 작은 윤리다. 그리고 그 윤리 위에서만, 사람은 사람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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