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마음을 내려놓으며
고기를 태운 연기와 의미 없이 건배한 잔들이 올해의 마지막 얼굴처럼 남았다.
웃음은 정해진 속도로 나오고 농담은 안전한 선까지만 미끄러졌다. 우리는 서로의 하루를 더 묻지 않기로 합의한 사람들처럼 문을 나서자 밤이 갑자기 진짜가 되고 있었다. 쉽게 취기는 식고 한 해가 몸으로 돌아온다. 지하철 유리창에 겹쳐 보이는 얼굴들 이름표를 떼고 난 뒤에야 사람은 자기 표정을 갖는다.
매해 반복되는 건배사는 여전했다.
다른 레퍼토리를 기대한 것이 의미 없어져 입을 벌려 조용히 술을 부었다. 오랜만에 송출되는 재방송 되는 드라마 같은 장면들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무런 감흥이나,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할 설렘은 없다. 그저 또 하루가 지나가고 있을 뿐이다.
연말도 마찬가지다. 끝이라는 말에 더 이상 몸이 반응하지 않는다.
올해와 내년은 달력에서만 다를 뿐 기대는 줄었고 실망도 줄었다. 그 대신 버티는 법이 남았다. 축하받지 않아도 섭섭하지 않고 혼자여도 설명하지 않는다. 이 나이는 크게 울지도 쉽게 웃지도 않는다.
대신 다시 일어나는 법을 안다.
촛불보다 형광등 아래의 하루가 익숙하고 케이크보다 미지근한 커피가 어울린다. 그러나 무던해졌다고 비어 있는 것은 아니다. 감정은 줄어든 게 아니라 안쪽으로 옮겨갔다. 조용해진 것은 심장보다 표정이다. 이 나이에 시간은 선물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무게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늘을 지나간다.
그것이 지금의 나이로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생일이 기념일이 아니라 통과 지점이 되었을 때 초를 끄는 일보다 다음 날 일정을 먼저 떠올릴 때 나이는 조용히 자리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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