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이라는 단어를 쉽게 쓰지 않으려 한다
나는 수용이라는 단어를 쉽게 쓰지 않으려 한다.
그것은 너무 자주 체념의 다른 이름으로 오해되고, 너무 성급하게 미화되기 때문이다.
수용의 시간은 결심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다짐도, 깨달음도 없다. 그것은 오히려 모든 의지가 소진된 뒤에 도착한다. 더 이상 밀어붙일 힘도, 설명할 언어도, 변명할 체력도 남지 않았을 때. 삶이 나를 설득하는 데 실패하고, 내가 삶을 통제하는 데서 완전히 손을 놓았을 때. 수용은 그 폐허 위에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수용은 언제나 늦고, 무기력해 보이며, 외견상 패배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무너짐의 끝이 아니라, 더 이상 스스로를 찢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태도다.
수용의 시간에 들어서면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을 개선하려 하지 않는다.
더 나아지겠다는 말도, 다시 잘 살아보겠다는 계획도 잠시 침묵한다. 그 대신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지금 이 상태로도 숨은 쉬어진다는 사실. 아직 심장이 멈추지 않았고, 생각은 여전히 떠오르며, 감정은 비틀린 형태로나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수용은 삶을 긍정하는 태도가 아니다. 다만 삶을 삭제하지 않겠다는 결정에 가깝다.
심리적으로 수용은 저항의 종결이다.
인간은 고통보다 저항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왜 하필 나인지, 왜 아직도 이 자리인지. 그 질문들은 스스로를 단련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신을 끝없이 재판대에 세우는 행위다. 수용의 시간은 그 재판을 중단시킨다. 무죄를 선언하지도, 유죄를 확정하지도 않는다. 다만 판결을 유예한다. 지금은 판단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마음은 비로소 조금 가벼워진다.
수용은 포기가 아니다. 포기는 미래를 닫지만, 수용은 현재를 연다.
지금 여기에 있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 잘못된 선택을 미화하지도 않고, 실패를 교훈으로 강제하지도 않으면서, 그것들이 이미 내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 수용의 시간에는 서사가 없다. 반성도, 성장도, 구원도 없다. 다만 상태만 있다. 이 상태가 부끄럽든, 초라하든, 의미 없든 상관없이.
문학적으로 수용의 시간은 서사의 공백이다.
사건이 멈추고, 인물은 더 이상 행동하지 않는다. 대신 호흡만 남는다. 숨이 깊어지고, 시간은 느려진다. 독자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페이지처럼 보이지만, 사실 가장 많은 것이 정리되는 순간이다.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수용의 시간은 눈에 띄는 변화를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 시간이 없으면, 다음 장면은 시작되지 않는다.
수용은 또한 폭력의 중단이다.
자신에게 가하던 폭력, 비교라는 폭력, 기준이라는 폭력,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라는 폭력.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자신을 몰아붙이며 살아왔다. 괜찮지 않으면서 괜찮은 척했고, 버거우면서 감당 가능한 얼굴을 유지했다. 수용의 시간은 그 가면을 내려놓는 순간이다.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말이 아니라, 지금은 잘하려 들지 않겠다는 선택. 그 선택은 나약해 보이지만, 사실은 살아남기 위한 가장 정확한 판단이다.
수용의 시간은 밤과 닮아 있다. 밤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지만, 많은 것을 허락한다.
설명되지 않은 감정, 정리되지 않은 생각, 방향 없는 피로. 밤은 그것들을 몰아내지 않는다. 수용의 시간 역시 그렇다. 해결을 요구하지 않고, 이유를 묻지 않으며, 미래를 강요하지 않는다.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말해주는 시간. 더 가지 않아도 되고, 더 나아지지 않아도 되는 자리.
사람은 수용의 시간에 들어서야 비로소 다시 움직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멈춤이 있어야 다음 발걸음이 가능하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나서가 아니라,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뒤에. 수용은 회복의 시작이 아니라, 자기 파괴의 중단이다. 그 차이는 미묘하지만 결정적이다.
나는 수용의 시간을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겠다.
그것은 종종 초라하고, 침침하며, 외롭다. 그러나 정직하다. 꾸며진 희망보다, 과장된 긍정보다, 훨씬 인간적인 시간이다. 수용의 시간 위에서 삶은 더 나아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더 이상 자신을 속이지는 않는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삶이 계속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해답이 아니라, 이런 시간 하나이니까.
모든 것을 바로잡지 않아도, 모든 것을 이해하지 않아도, 오늘을 통과할 수 있게 해주는 시간. 수용의 시간은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인간을 붙잡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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