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브런치 작가 68일 간의 기록

브런치. 글을 위한 플랫폼. 사람을 위한 설계는 없었다

by 구시안

내가 늦은 나이 꿈을 위해 선택한 브런치.

글을 위한 플랫폼. 하지만 브런치에는 사람을 위한 설계는 없었다.


브런치는 오랫동안 ‘글이 중심인 플랫폼’이라는 이미지를 유지해왔다.

광고보다 문장, 속도보다 사유, 소음보다 밀도를 선택한 공간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 글을 쓰는 작가의 위치에서 브런치를 바라보면, 이 플랫폼은 이상과 다르게 작동한다. 특히 악플을 반복하는 멤버십 구독자를 작가가 차단할 수 없다는 구조는 브런치의 가장 치명적인 결함 중 하나다. 이 결함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명확한 피해를 만들어낸다.


브런치의 멤버십 구조는 ‘후원’과 ‘구독’이라는 긍정적 언어로 포장되어 있다.

브런치 멤버십은 플랫폼이 떼는 돈은 없지만 시스템이 알아서 떼어간다. 브런치에서 직접 후원 기능으로 받는 수익(응원하기)은 수수료가 존재한다.


브런치 플랫폼 수수료: 결제 금액의 약 10% 차감

카드사/플랫폼 결제수수료: 결제 방식(웹/앱) 따라 추가 부과웹/PC: 카드사 결제 수수료 약 약 2.4%앱(구글/앱스토어): 구글/애플 결제 수수료 최대 30% 부과될 수 있음세금(원천징수): 약 3.3% 부과되는 사례가 검증되어 있다. 나의 경우 정산 된 응원 수수료가 거의 40%정도 브런치로 돌아갔다.


브런치 플랫폼은 구독자를 이탈하면 안 되는 사용자로 취급하지만, 작가는 보호 대상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이 구조 안에서 구독자는 보호되고, 작가는 노출된다. 돈을 내는 독자는 플랫폼의 고객으로 간주되며, 글을 쓰는 작가는 콘텐츠 공급자로 취급된다. 브런치는 공간을 제공한 이유로 수수료를 가져간다. 문제는 이 관계가 권력의 비대칭을 낳는다는 점이다. 멤버십 구독자는 댓글과 반응을 통해 작가의 글에 지속적으로 개입할 수 있지만, 작가는 그 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없다. 그리고 브런치는 작가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 작가라는 이름으로 사람이 많아질 수록 브런치는 수입이 높아 질 수 밖에 없는 구조임에도 작가의 어떠한 안전도 책임져 주지는 않았다.


이 구조에서 악플은 교묘한 형태를 띤다.

노골적인 욕설이 아니라, 평가와 조롱, 의심과 폄하의 언어로 나타난다. “이 글이 왜 멤버십 콘텐츠인지 모르겠다”, “작가가 감정에만 매몰돼 있다”, “독자를 무시하는 태도다” 같은 문장들은 규정상 ‘의견’으로 분류된다. 이 정도의 브런치 평가속에 등장하는 댓글 정도면 훌륭한 양반이다. 그보다 더한 성희롱이나 명예훼손을 버금가는 댓글을 남겨도 멤버십 구독자는 건드릴 수 없는 존재로 브런치가 만들어 놨다. 이것은 누구봐도 반복될 경우, 그것은 명백한 공격이다. 문제는 브런치가 이 반복성을 인식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작가에게는 같은 사람이 남긴 댓글이라는 것이 보이지만, 플랫폼은 이를 각각의 개별 사건으로 취급한다.





멤버십 구독자는 차단이 되지 않는다. 여전히 활개하고 있는 이 사람은 나의 공간을 여전히 망치고 있다.

이것은 브런치 시스템의 구멍이다. 어쩌면 알면서도 개인이라는 이름의 책임을 묻기 위해 만들어놓은 시스템의 구멍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운영에 대한 책임 회피을 위한 도구인가?



차단 기능이 없는 환경에서 작가는 매번 선택을 강요받는다.

댓글을 숨길 것인가, 대응할 것인가, 아니면 침묵할 것인가. 이 모든 선택의 비용은 작가가 혼자 감당한다. 감정적 소모는 물론이고, 글을 쓰는 리듬 자체가 무너진다. 어떤 작가는 댓글 창을 닫고, 어떤 작가는 멤버십을 중단하며, 또 어떤 작가는 아예 플랫폼을 떠난다. 이 이탈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결과다. 나는 오늘 이 글에 댓글을 처음으로 숨겨 봤다. 여전히 차단하지 못해 활개 치고 있는 악플러 때문이다.


브런치 운영에 대한 불만은 여기서 비롯된다.

플랫폼은 중립을 가장한다. “표현의 자유”, “다양한 의견”이라는 말 뒤에 숨는다. 그러나 중립은 언제나 힘의 분포를 전제로 한다. 차단할 수 없는 구조에서의 중립은, 사실상 가해자에게 유리한 선택이다. 플랫폼이 개입하지 않는 동안, 작가는 스스로를 검열하고 침묵하는 쪽으로 밀려난다.


가장 아이러니한 점은, 브런치가 모든 책임을 작가에게 돌린다는 사실이다.

글의 내용에 대한 책임, 독자의 반응에 대한 감내, 갈등 상황의 관리까지. 플랫폼은 공간을 제공했을 뿐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공간의 규칙을 설계한 주체 역시 브런치라는 플랫폼이다. 작가에게 차단 권한을 주지 않은 것, 반복 가해를 감지하지 않는 것, 명확한 제재 기준을 공개하지 않는 것. 이 모든 선택은 운영의 책임이다.


브런치는 글을 아카이브하는 데는 능숙하지만, 작가를 보호하는 데는 서툴다.

아니, 서툰 수준을 넘어 무관심에 가깝다. 그 결과, 글은 남지만 사람은 지친다. 문장은 쌓이지만, 창작자는 소모된다. 이것이 지금의 브런치 생태계가 보여주는 현실이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정말로 글을 존중한다면, 질문은 분명해야 한다.
왜 작가는 자신을 공격하는 독자를 차단할 수 없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브런치는 계속해서 “글을 좋아하는 척하는 플랫폼”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 비용은 언제나, 조용히 글을 쓰던 작가들이 치르게 된다.



브런치 플랫폼의 한계 - 글은 남지만, 작가는 남지 않는다.


브런치는 오랫동안 ‘글이 중심인 플랫폼’을 자처해왔다.

깔끔한 인터페이스, 출판으로 이어지는 상징적 서사, 작가라는 호칭이 주는 자부심. 그러나 일정 기간 이상 이 플랫폼에 머문 작가라면, 그 문장이 얼마나 쉽게 공허해지는지를 체감하게 된다. 브런치의 가장 큰 한계는 글을 다루는 방식이 아니라, 사람을 다루는 방식에 있다.


첫째, 브런치는 작가를 보호하지 않는다.

작가는 자신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실질적인 통제권을 거의 갖지 못한다. 악의적인 댓글, 반복적인 조롱, 정체성을 건드리는 발언이 있어도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차단은 불완전하고, 신고는 불투명하며, 운영의 개입은 드물다. 플랫폼은 중립을 말하지만, 그 중립은 언제나 공격을 지속하는 쪽에 유리하게 작동한다.


둘째, 책임은 항상 작가에게 귀속된다.
문제가 발생하면 글의 톤이 문제였는지, 표현이 과했는지, 대응을 잘못했는지 묻게 된다. 플랫폼의 설계나 운영 방식은 거의 논의되지 않는다. 갈등을 관리하라는 요구, 감정을 조절하라는 충고, ‘인터넷이 원래 그렇다’는 말 속에서 작가는 홀로 버티는 존재가 된다. 브런치는 공간을 제공하지만, 그 공간에서 발생하는 소모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다.


셋째, 성장 구조가 닫혀 있다.
노출은 이력 중심이고, 추천 기준은 불투명하다. 꾸준히 쓰는 것과 성장 사이의 인과관계는 명확하지 않다. 실험적인 글, 느린 서사, 개인적인 목소리는 쉽게 밀려난다. 결과적으로 작가는 글을 발전시키기보다, 시스템에 맞추는 법을 먼저 배우게 된다.


넷째, 브런치에는 커뮤니티가 없다. 작가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없다.

목소리를 모으지 못하게 하는 대기업 플랫폼 구조에 들어가 있는 메뉴얼이다. 모든 구조에는 소통해야 할 넓고 시원한 창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브런치에는 없다. 브런치에는 댓글이 있지만 대화가 없고, 작가는 있지만 관계는 쌓이지 않는다.


작가들이 서로의 글을 읽고 밀어주는 구조, 실패를 공유하고 다음 시도를 격려하는 장치는 거의 없다.

고립된 개인들이 각자 성과를 기다리는 구조 속에서, 플랫폼은 아카이브로만 기능한다. 작가들의 입을 사전에 막겠다는 것이다.


이 모든 한계가 쌓여 만들어내는 결론은 단순하다.
브런치는 글을 저장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작가를 지속시키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

플랫폼이 정말로 글을 존중한다면, 더 이상 ‘좋은 글이 올라오길 기다리는 태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글은 사람에게서 나오고, 사람은 안전한 환경에서만 계속 쓸 수 있다. 작가가 소모되는 구조 위에서 만들어지는 글의 축적은, 결국 플랫폼 스스로의 신뢰를 깎아먹을 뿐이다.


브런치의 한계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를 책임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태도의 문제다.



침묵을 시스템이라 부르지 말 것 — 브런치 작가의 자리에서 묻는다


브런치는 ‘글을 쓰는 사람의 공간’이라고 말해 왔다.
천천히 쓰는 문장, 사적인 목소리,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 글의 가치를 존중한다고.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이곳을 선택했다. 빠른 반응 대신 깊은 호흡을 믿었고, 플랫폼보다 문장이 앞서는 장소라고 믿었다.

그러나 묻고 싶다.


정말 이곳은 사람의 말을 듣는 공간인가.

악성 댓글과 명백한 권리 침해 상황 앞에서, 브런치는 너무 자주 침묵한다. 신고 기능은 존재하지만, 응답은 형식적이고 지연되며, 때로는 아예 되돌아온다. 수차례 메일이 반송되고, 충분한 증거가 제출되어도 “형식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처리가 중단된다.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의 인내심이 아니다. 이것은 시스템의 태도다.

브런치 작가라면 한 번쯤 느꼈을 것이다.


글은 공개되어 있지만, 보호는 사적인 영역에 맡겨져 있다는 감각을.
플랫폼은 ‘중립’을 말하지만, 그 중립은 종종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선택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분명히 말해야 한다. 명백한 괴롭힘과 침해 앞에서의 중립은 중립이 아니다. 그것은 방치이며, 결과적으로는 가해의 편에 서는 일이다.


특히 현재의 구조는 취약하다.
구독 시스템을 악용하면, 차단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악성 댓글이 지속된다. 이는 기술적 허점이 아니라 운영 철학의 부재에 가깝다. 플랫폼이 글을 유통한다면, 그 글을 쓰는 사람의 안전 또한 함께 관리해야 한다. 운영은 메뉴얼을 반복하는 일이 아니라, 예외 상황에서 책임을 지는 일이다.


브런치는 도시와 같다.
사람들이 모여 살고, 말을 건네고, 흔적을 남긴다. 도시라면 최소한의 치안이 있어야 한다. 비상구는 형식만 존재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작동해야 한다. 피해자가 스스로를 증명하느라 소진되지 않도록, 먼저 들여다보고 판단하는 눈이 필요하다.


이 문제는 한 사람의 일이 아니다.
이미 많은 작가들이 비슷한 경험을 글로 남겨왔다. “브런치 악플”이라는 검색어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시스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것이 반복된다면, 결국 남는 것은 조용한 이탈뿐이다. 말 많은 항의가 아니라, 아무 말 없이 떠나는 작가들.


카카오라는 거대한 이름 뒤에 숨기엔, 이 침묵은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다.
대형 플랫폼이 감당해야 할 것은 트래픽만이 아니다. 신뢰다. 그리고 그 신뢰는 위기 상황에서의 태도로 증명된다.


우리는 완벽한 보호를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의 목소리를 실제로 듣고 있다는 신호,
“보고 있다”, “검토 중이다”, “책임을 인지하고 있다”는 최소한의 응답을 원할 뿐이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비판이 아니라, 무응답이다.
브런치가 정말로 작가의 플랫폼이라면, 이제는 그 침묵에 대해 답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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