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밤들

시간은 늘 한 번 더 돌아온다

by 구시안

나는 어제 새벽 네 시의 편의점에서 전자레인지 앞에 서 있는 영혼들을 보았다. 잠을 팔고, 커피를 사고, 꿈 대신 영수증을 접어 주머니에 넣는 사람들을. 그들은 말없이 씹었고, 말없이 씹히고 있었으며, 도시는 그들의 등을 쓰다듬지도 밀어내지도 않은 채 형광등 아래서 끝없이 깜빡였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로부터 추방당했고, 그래서 서로를 향해 말이 많아졌고 말이 많아질수록 진실은 더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나는 종종 생각이 시작된 지점을 잃어버린 채 그 생각 안에 오래 머문다, 마치 이미 떠나온 집의 구조를 더듬듯, 방이었는지 복도였는지 알 수 없는 장소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서서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시간이 과거에서 흘러온 것인지 아니면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의 그림자인지 구분하려 애쓰지만, 그런 구분이 실제로 필요했는지는 끝내 알 수 없다. 시간은 언제나 설명보다 먼저 몸에 와 닿았고, 몸은 늘 이해보다 앞서 반응해왔기 때문이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현재의 것이지만, 그 소리를 듣는 방식은 오래된 기억에 가깝다. 예전에 들었던 비슷한 소리들, 비슷한 밤들, 비슷한 마음 상태들이 겹쳐지며 지금을 흐리게 만든다. 지금이라는 순간은 언제나 단독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늘 무언가를 끌고 온다. 어제의 피로, 오래전의 선택, 아직 말로 만들어지지 않은 후회 같은 것들. 그것들은 조용히 자리를 차지한 채 사라지지 않는다.


낮 동안의 장면들이 불쑥불쑥 떠오른다. 말의 앞부분은 잊히고, 표정만 남은 얼굴들. 그 얼굴들을 대할 때 사용했던 목소리의 높낮이, 너무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조절했던 반응들.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간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수없이 반복된 연습의 결과였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반복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성격처럼 굳어간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선택이 아니라 상태가 된다.


밤은 그런 상태를 조금 느슨하게 만든다. 사물들이 낮보다 더 오래 침묵하고, 침묵은 생각이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그 공간에서 생각은 직선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되돌아가고, 멈추고,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문장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문장이 되기 전의 상태, 아직 정리되지 않은 감각의 덩어리들. 그것들은 의미를 요구하지 않고, 다만 존재를 허락받기를 원한다.


나는 가끔 이 모든 사유가 어디로 향하는지 묻지만, 대답은 늘 같은 자리에서 멈춘다. 향한다는 말 자체가 이미 방향을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생각은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멈춘다. 멈춘 채로 있는 시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너진 것도 아닌 상태. 그 중간에 머무는 법을 몸이 먼저 배운다.


글을 쓰는 일은 그 중간을 오래 붙잡아 두는 일과 닮아 있다. 문장은 길어지고, 쉼표는 늘어나며, 끝은 쉽게 오지 않는다. 끝내지 않는다는 선택이 아니라, 끝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가깝다. 생각은 계속 이어지고, 이어지는 동안 스스로를 조금씩 바꾼다. 처음과는 다른 모습으로, 그러나 여전히 같은 질문을 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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