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닌 나로 살아온 밤의 기록
기억을 잃고 오랫동안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았던 사람들이 있다면, 세상에 태어나 의식을 갖게 된 이후로 참으로 오랫동안 나는 내가 아닌 사람으로 살아왔다면, 진실이 떠나버리기를,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허구인 사람이라는 것을 벗어나, 익숙한 피로로 물들더라도 지성적이고 자연스러운 나로 다시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나를 둘러싼 익숙한 가구들이 조용히 숨을 쉬는 밤이 오면, 그것에 기대어 잠시 생각하는 시간들을 갖게 되는데, 유리창으로 비치는 도시에 뿌려진 달빛과 비슷한 색을 가진 가로등이 벽지에 스며들 때까지 한순간 진실을 보기 위한 두 눈을 뜨고 앉아 현실이라는 악마의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한 사투를 짐작해 보는 것이다. 더 깊어지기 전에. 그 유혹의 밤이 더 짙어지기 전에. 그것을 대비하기 위해 내 영혼이 말하는 마법의 언어를 찾아 헤맨다.
갑작스럽운 빛이 늘 싱그럽지 않은 것처럼
빛은 모든 것을 태우고
모든 것을 소멸시킨다.
심지어
스스로를 발가벗겨 버리기도 한다.
나는 나를 보았다. 누구도 알수 없는 틀림없는 사실들을 보았다. 그 순간이 지나가 지금은 내가 누구였는지 모른다. 어쩌면 모든 것이 잠에 속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운명이라는 것도 그렇게 잠든 사이에 바뀌는 것이기에. 순간이 전부일지도 모른다는 이 밤의 뜬눈은 불필요한 것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조용히 늘어뜨리게 되는 사색이 무색하지는 않을 만큼 생각에 잠겨보는 것도 여전히 나쁜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각인하고 있을 뿐이다.
죽음이 일종의 잠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숨을 쉬지만 죽어있는 것이 잠이라면, 이건 정말 아무 의미도 없는 얘기가 될 것이다. 이미 죽음과 견줄만한 일들을 비교할 만한 것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유일하게 좋아하던 옷을 벗어던지는 일이 죽음이라는 길을 떠나는 일 같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바라보는 좁은 거리 위로 단조로움을 점점 넓게 퍼뜨려가다 보면, 나는 모든 것에 기대듯이 유리창에 기대서서 깨어 있는 채로 자는 중이다. 음울한 건물 벽면에 열린 창문을 배경으로 검게 빛나며 떨어지는 소리 없는 달빛의 기운을 느끼며 내가 느끼는 감각을 알고 싶어 나 자신의 내면을 살펴본다.
내 인생의 때늦은 모든 고통이
일상 속 우연한 기회에 자연스럽게 걸쳤던 행복이라는 옷을 벗어던지고 싶다. 때로는 행복했고 때로는 만족스러웠던 모든 순간마다 어쩌면 나는, 나의 일부는 늘 지금 내 뒤에 서 있었다. 요구된 적 없는 것과 그것을 포함한 사람에게 허락된 모든 안락함을 다 포기하고, 광기의 도로를 무한질주로 달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가짜 레이스를 만든 신이라는 존재들은 웃으며 그것을 지켜보고 있고, 흔적과 불학 실한 것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음 레이스를 위해 피곤한 다리를 주무르고 있을 것이다.
내면의 공허에 상처받지 않은 존재가 된다면
그 사람을 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영혼도
생각도 없이
아무 감각도 없이
험한 산길을 헤매고
가파른 비탈 틈에 앉아
숨을 고르며
돌이킬 수 없는 발걸음이나
뒤돌아보고 싶지는 않다.
같은 풍경 속에서 길을 잃는다면
존재하지 않고 먼 곳의 색깔로
남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일이기에.
내가 서 있는 창문 밖으로는 밤이면 나타나는 주술사(呪術師)가 한줄기 가벼운 바람이 떨어지는 빗방울을 여러 갈래로 공기층으로 조각을 하고 있다. 마치 내게는 보이지 않았던 하늘 한 귀퉁이에 숨겨진 나만의 하늘을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한, 이렇게 몰두해서 모든 것을 보기 전에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는지 그려져 있는 화면이 펼쳐지는 듯한, 내 마음의 밑바닥은 평온이 없고 앞으로도 결코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차라리 깨끗하게 아무것도 없는 것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하나씩 비워가며 덜어내는 것들이 이렇게 시간 속에 많았다는 사실에 놀라운 밤이 있다.
언제나 똑같고 변화 없는
삶을 지속하는 무기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표면에 붙은 먼지를 털어내며 살아가야 하는
기한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일종의 위생관념의 결여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겉만 깨끗하면서
속이 더러운 것에 대한 청소가 미흡했던 것처럼
아무리 비워내도 채워지는
마음이라는 그릇의 넓이와 깊이를 알 수 없기에.
스스로 위생적이지 못한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니지만,
이것이 둔감하게 생각하고 있던
신이 내리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저주라면
나는 이것을 풀어내고 싶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글을 썼는지도 모른다.
시들어버리고
끝나버리고
말라버리는 것 투성이인
사람들이 사는
이곳을 어느 누가 무(無)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확신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은 세상을 만든
신이 밉다.
그들을 증오하는 수많은 밤이
물들기도 했다.
추상적인 것보다
지성의 피로가
얼마나 지독한지
피로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것이
지성의 피로라는 사실을
사람만이 갖은 마음의 무게라서
영혼이 숨 쉴 틈마저
남기지 않는 피로를
거부한다.
새것들은 누더기가 되는 것에 익숙해져야만 하는, 마치 이런 피로는 구름을 흩어놓는 바람처럼, 인생의 의미에 대한 생각과 미래의 희망을 위해서만 세워놓은 골로 세움처럼 사람들은 그곳을 기어오르기 위해 사투를 벌이게 만든 *투장(鬪場) 같다는 생각이 물드는 밤이다.
*투장(鬪場) = 싸우는 장소
Ryuichi Sakamoto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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