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자리를 바꾼다

남아 있는 감정의 조용한 이동

by 구시안

나는 특별하지 않다. 이 말은 이제 나를 낮추는 문장이 아니다. 눈에 띄지 않는 하루, 기억되지 않을 표정, 누군가의 삶에서 중요하지 않은 장면으로 남는 일, 그 안에서 나는 숨을 쉰다. 특별하지 않아서 설명할 필요가 없고, 증명하지 않아도 되며 끝까지 말하지 않아도 된다.


세상은 늘 특별한 것을 요구하지만,

나는 응답하지 않는다.

대신 아침의 빛이 창문에 닿는 속도를 보고,

아무도 묻지 않은 감정을 혼자서 끝까지 느낀다. 그것으로 충분하고 만족하니까.


특별한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가고 나는 남는다. 남아서 사라지지 않는 것들을 본다. 말해지지 않은 친절, 지나간 뒤에야 의미가 생기는 하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의 무게를. 특별하지 않아서 나는 부서지지 않는다.


기대가 없어서 실망도 깊지 않다. 행복은 나에게 도착하지 않는다. 이미 안쪽에 있다. 조용해서 눈에 띄지 않고 작아서 이름 붙일 수 없지만 나는 안다. 특별하지 않다는 것은 버려진 상태가 아니라 남겨진 상태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조용히 행복하다.


그 행복은 소리 내어 부르지 않는다. 도착했다는 신호도 없이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 나는 그것을 찾으러 다니지 않는다. 잃어버릴까 봐 쥐고 있지도 않는다. 그저 하루가 끝날 때 몸이 무사하다는 사실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특별하지 않은 삶에는 설명할 장면이 적고 그래서 남겨지는 감각이 많다.


식어가는 차의 온도, 계단을 오르며 느려지는 숨, 아무 일도 없었던 날의 묘한 충만함, 이런 것들이 내 하루를 지탱한다. 나는 큰 선택을 하지 않았고 큰 성공도 없었으며 크게 실패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 매일 조금씩 살아냈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증명하느라 지칠 때 나는 나를 의심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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