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비워내는 가장 조용한 방식
미래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무죄가 된다.
우리는 그 무죄함을 사랑한다. 손대지 않은 흰 종이처럼,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약속처럼.
그래서 미래는 언제나 현재보다 깨끗하고, 과거보다 정직하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
미래를 생각할 때, 우리는 유난히 정돈된 사람이 된다.
해야 할 일은 목록이 되고, 감정은 계획으로 바뀌며, 불안은 전략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불확실성은 숫자로 환원되고, 우연은 제거해야 할 변수로 밀려난다.
그 과정에서 현재는 자주 누락된다.
지금의 망설임, 지금의 무기력, 지금의 설명되지 않는 감정은
모두 ‘아직’이라는 말 뒤로 밀려난다.
아직 괜찮아.
아직 결정하지 않아도 돼.
아직 시작하지 않아도 문제없어.
‘아직’이라는 말은 유예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현재를 비워내는 가장 조용한 방식이다.
우리는 미래를 준비한다고 말하지만, 실은 미래를 이용해 현재를 견딘다.
지금의 실패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기 위해,
지금의 공백이 의미 없지 않다고 믿기 위해,
언젠가 도착할 어떤 장면을 앞당겨 상상한다.
그 장면 속에서 우리는 늘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다.
덜 불안하고, 덜 흔들리고, 더 명확한 언어를 가진 존재.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나를 이해해 줄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이 우리를 하루 더 살게 한다.
하지만 그 믿음은 동시에 잔인하다.
미래의 나는 언제나 현재의 나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현재의 나는 끊임없이 미완성으로 남는다.
충분하지 않고, 준비되지 않았으며, 아직 도착하지 못한 사람. 그래서 우리는 현재를 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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