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자기만족 15화

감각의 실수

일탈의 동선

by 구시안


감동의 원천이었던 수많은 책과 글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거실의 한가운데, 실망이 열매를 맺게 만들지 못하고그냥 그 자리에 내버려 둔다. 여전히 실패처럼 보이는 예술이라는 마술 따위는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새로워지려는 욕망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감동을 느끼려는
현명한 자보다

문장의 형태나 연구해 보던 놈도
글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글을 읽던 시절도 있었으니까.


세상의 모든 구멍이 강요하는 굴욕을 의연하게 감수하며 살아가는 것이 옳은 일이라며 이를 악물었다. 지루해 보이는 시를 쓸 때마다 이걸 왜 쓰고 자빠져 있는지를 생각하는 밤도 길었다.




모호한 생각에 빠져 수영을 즐기던 밤, 언어의 냄새가 얼마나 황당한 것이 되는지도 느끼는 글들을 보며 이것이 현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때쯤, 손에는 시원한 맥주 한 캔이 조용히 찌그러지고 있었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니 폐기당한 인간 몇 명의 안부 문자와 약발도 안 서는 회사의 일에 관련된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삶은 본질적 실수이기 전에
글로도 고칠 수 없는
감각적인 실수처럼
느껴질 때마다

나는 목적지 없는 걸음으로
하루를 일탈하고는 한다.


끽해야

삼청동, 종로의 책방,
서촌이 전부 정도인

오랜 시간
마음이 이미
정해 놓은 동선의 지도를 따라
걷는 일이다.


떠벌리는 것이 본질인 사람들의 어휘와 과잉 단어가 악성 종양처럼 퍼져 나갈 때처럼, 그것으로 하루라는 제목의 글을 쓸 수도 있겠지만, 비탄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이 글이 읽힌다면 기름을 붓는 하루가 될 것 같아

지워 버린다. 그렇게 폐기당한 글은 시의 세계로도 고칠 수 없는 그저 감각의 실수로 치부된다.




현대적이라는 것을 느끼고 싶을 때마다
찾게 되는 미술관은
한가했다.


작가.

세상의 여러 형태에

작가라는 이름을 다는데,

그 작가라는 단어 자체도

어느 한 사람의

생각의 부스러기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느껴본다.



치유 불가능한 잔손질처럼
움직이는 열 손가락이

열 일을 하는 동안

느껴야 하는
수많은 감각들이
요동을 친다.


이렇게 쓰다가는
빈곤한 파편들만
남을 테지.




명료한 한숨을 좋아한다.

차라리 시원하게

인정하고 쉬는 숨이
맑게 느껴진다.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지는 한 줄기 빛처럼 미술관의 투명한 유리창으로 스며드는 한낮의 일탈 속에 비치는 햇살이 이리도 감미롭고 따뜻한 것인가를 운명이 새겨진 손바닥에 잠시 담아 본다. 생각하나 마나, 그 옛날 어떤 미소 하나가 담긴 그릇 정도로 보인다.


인간이 심리학이라는 것을 접하기 이전부터 겪었을 이 고통이라는 여러 가지 색이 그렇게 지난 세월을 살아왔던 사람들의 육체를 칠해 왔을 것이다. 아무리 미술관 여기저기를 걸어도 의심의 갈증은 가라앉지 않을 무렵,그림 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없는
추상적인 그림이

그저 나타났다 사라지는

회오리 같은 바람처럼

세상을 이야기해 주는 듯한

마치 지금의 생각이
너라는 듯한,

그런 형태에

잠시 머물러 있었다.


적당한 시점.
경솔했던 시간.

이제는
무명이 편하다고 말하며

음식의 유행처럼
패션의 유행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이
현대적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입은 여전했다.


차라리
철저한 회의주의를
밥벌이로 이용하는 것도

새로운 전략이 될지도 모를
시대에 태어난 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이겠지.


숨 쉬는 모든 것이
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도시에서

감각은
가로로 누웠다가
뒤집어졌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어떠한 일에 몰두했을 때 건방진 인간이 되자고 다짐했던 것들이 미술관 안을 채운 햇살만큼 높은 천장에 쌓여 가니 눈만 꿈벅꿈벅거리며 말없이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이런 일상의 일탈이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녹여내고 있다는 사실에, 잠시 떠오르는 하나의 그리움을 삼켜봤다.



keyword
이전 14화가로누운 감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