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가교환의 법칙

나를 브랜드로 만드는 시대의 선택에 대하여

by 구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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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등가교환의 법칙을 가장 잘 설명한 사람은, 내가 생각하기에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김혜자 선생님이었다. “이 세상은 등가교환의 법칙에 의해서 돌아가. 우리가 뭔가를 갖고 싶으면, 그 가치만큼의 무언가를 희생해야 되는 거야.” 그 대사는 취업도 어려운 젊은이들에게 전해졌다. 늙은 나와 바꿔 살자는 이야기, 그 전제를 품고 있었기에 더 아프고 진실하게 다가왔다.



예전에는 어떻게 그렇게 일을 했을까, 싶을 때가 있다. 그때는 시간의 제한도, 삶의 균형도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부러 집에 늦게 가고, 야근을 해야만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사실 별반 다르지 않다. 최근에 목숨을 잃은 청년. 안 좋은 뉴스를 접하고 같은 업종의 사람으로서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다. 누군가의 죽음이 누군가와 비교될 때가 더 서글퍼지는 일이었다. 주 80시간의 노동, 직업의 차별성을 논하는 이들도 있었다. " 우리는 더 오래 일한다." 며 그 청년의 죽음을 비교하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사람들은 침묵을 모르는 것일까를 생각했다. 슬플 때는 비교가 아닌 고요히 침묵을 해주는 것이 어쩌면 사람다운 일이 아닐까 싶었다. 사람이 많은 곳, 바쁜 매장일수록 누군가는 소모해야 하는 전과와 업무의 양이 높아지는 것은 지금의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본사와 현장의 입장차이는 요식업의 아직까지 풀 수 없는 불협화음이자,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숙제이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구호가 생겼지만, 이 밤에도 여전히 불 켜진 사무실은 많다. 불 켜진 매장과 현장도 많다. 성과를 숫자로만 측정할 수 없는 세상에서, ‘정책과 대책이 결합하면 괴물이 나온다’는 말은

여전히 틀리지 않다.



나는 여전히, 어부처럼 살고 싶지 않다. 디자이너였던 내가 요식업에 발을 들이자 주변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왜 잘하던 일을 그만두고,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하냐?”내 대답은 간단했다. 더 이상 디자인이 재미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만난 디자이너들 중에는 기획 감각이 뛰어난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디자인 감각은 탁월하지만 다른 일에는 감이 없는 친구들도 많았다.



대학에서 배운 4년의 전공이 무색하게도 전혀 다른 길에서 빛을 내는 사람들을 자주 보았다. 나는 이런 걸 빠르게 읽어내는 게 관리자로서 내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을 같은 눈높이에서 보되, 노력하고 개선의 여지가 있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 그 사람이 마케팅이든, 기획이든, 디자인이든 스스로의 가능성을 펼칠 수 있게 하는 것이 매니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요즘 면접을 보다 보면 ‘등가교환의 법칙’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세대를 만난다. 그들은 궁금한 건 바로 묻고, 내가 줄 수 있는 것과 얻고 싶은 것을 명확히 구분한다. 세대 차이라기보다, 새로운 균형감각이다. 나는 사람을 전공이라는 틀에 가두지 않는다. 전공을 살려 그 안에서 빛나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속한 F&B 업계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오히려 전공이 다르더라도 탁월한 감각과 열정으로 돋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나는 전공을 ‘통과의례의 순서’ 정도로만 여긴다. 모든 열정에는 정확한 지침사항이 주어져야 한다. 그것을 통제하는 것이 이 AI 시대에 아직까지 사람이라는 관리자가 존재하고 있는 이유이다.



학교와 전공은 시작일 뿐, 본질이 아니다. 요즘은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도화지 같은 사람이 좋다.

가르치면 빠르게 흡수하고, 배운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 그런 사람을 볼 때마다 나는 희열을 느낀다.

나는 되도록 사람과의 경계를 두지 않는다. 솔선수범이 첫째이고, 팔짱 끼고 지시만 하는 관리자가 아니라
함께 현장에서 땀 흘리는 관리자가 되려고 여전히 노력중이다. 다른 사람을 볼 때도 선입견이나 학력이나,전공의 벽을 걷어내고, 그 사람의 역량을 있는 그대로 보려 한다. 그것이 내가 믿는 등가교환의 법칙이다. 내가 먼저 주면, 그 또한 자기의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 노력을 무시하는 사람들 또한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냥 상대를 인정하면 되는 일이다.



나는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그 안에 ‘선한 의지’가 있다고 믿는다. 면접을 통과해 같은 회사의 일원이 되었을 때, 그 사람의 인생이 내 인생 안으로 들어온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인생이 나로 인해 바뀔 수도 있다는 것, 그건 생각보다 무섭고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인간관계라는 것을 배웠다. 사람을 함부로 믿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믿음이 가장 중요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설사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해, 날카로운 가시에 찔려 피를 흘린다 해도, 나는 그 피를 닦으며 웃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열린 마음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일, 그것이 기회의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을 믿으려면, 먼저 나를 사랑해야 한다. 이건 자만심이 아니다. 스스로를 “나는 별로야”라고 여기면 남의 말 한마디에도 쉽게 무너진다. “그럴 수도 있지.” 이 한마디를 말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면, 타인에게도 관대해진다.



자신을 불신하는 사람은 남을 신뢰할 수도, 가능성을 볼 수도 없다. 스스로를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가 칭찬해도 믿지 않는다. 이제는 학교나 조직이 '나'를 대표하지 않는다. 이제는 내 이름이 나의 브랜드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삶이 길어진 만큼, 이제는 마라토너처럼 내 페이스대로 달려야 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트랙을 선택해 달릴 것인가이다. 나와 맞지 않는 트랙이라면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그 길이 길든 짧든 상관없다.

내가 혼자 달리더라도 함께 뛰어주는 ‘페이스메이커’를 만난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이다.



사람들은 모였다가 흩어지고, 결국은 홀로 선다. 나는 지루하게 원하지 않는 트랙을 뛰며 시간만 채우는 선수가 되고 싶지 않다. 월급만 받으며 버티는 월급루팡이 아니라, 제대로 일하는 사람이고 싶다. 사람들은 남들이 내 생각을 모를 거라 믿지만, 사실 다 알고 있다.



감추려 해도 모든 것은 결국 드러난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바르게 하려 한다. 누구와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고, 공감이 오가는 대화를 나누는 것. 그것이 모든 시작의 출발점이라고 믿는다. 사람들은 가진 자를 부러워하지만, 사실 잃을 게 없는 사람이 더 많이 얻는다. 그들은 두려움이 없다. 습자지처럼 모든 것을 빠르게 흡수한다.



등가교환의 법칙은 결국 딜이다. 서로의 욕망을 솔직히 말하고, 합의된 가치로 교환하는 일. 그게 조직이든, 사회든, 지켜져야 하는 기본 원칙이라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너무 화려한 삶을 그리느라 단순한 행복을 잊고 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나만의 스피커를 지키려 한다. 명분을 갖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것이 내가 지키고 싶은 방식이다.



세상은 짧은 영상의 시대가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긴 이야기를 좋아한다. 어려운 대화를 피하지 않고,

그 본질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믿는다. 글과 음악, 그림은 내 삶의 큰 기둥이자 쉼이다.

삶의 전선을 파악하고, 닿을 수 있는 곳까지 진격하면 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결국 인생은 혼자다. 이미 시대는 개인의 시대가 되었다. 직장은 필수 사항이 아니게 되는 시대, 그 길은 전에는 없었던, 존재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더 많은 감정들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짧든 길든, 우리는 함께였다가 흩어지고, 다시 혼자가 되는 반복 속에 산다. 나는 여전히 글이든 사람이든

짧은 것보다 긴 것을 믿는다. 그리고 깨닫는다. 세상은 여전히, 등가교환의 법칙 위에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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