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지독한 향기 속을 걷다
"사람은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를 제시했을 때, 난폭한 감정적 반응을 보인다."
유순하고 협조적이며 다정하기까지 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며 살았다. 유전적인 결함들이 아닌 후천적으로 유전자도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향기 속에 지독하게 맡을 수 있는 모든 냄새들을 맡으며 살았다. 지금 세상에서는 나의 변형된 유전자로는 다정하고 협조적인 사람이 되긴 틀려먹은 듯하다.
살인을 예술 행위쯤으로 여기는 자는 사람을 인형처럼 다룬다. 어릴 적 바라던 꿈을 찾아 이룬 사람은 세상에 몇이나 될까. 한 때 나도 잘 나갔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지금은, 지금의 그들이 더 잘 알 것이었다.
사회의 모든 구조는 자살을 권장하는 인간실험실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었다. 살인자는 살인의 여운을 수집하며 다음 범행 전까지 그 굶주림을 채운다. 어쩌면 지금 내가 했었던 일과 현제의 일에 대한 상충이 부딪혀 만든 먹구름 정도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감정들이 수놓은 가시들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늘 참는다는, 버틴다는, 되지도 않는 정신머리를 갖고 스쳐가며 얻은 자신도 모르는 상처들은 이미 밤이면 꽃이 되어 피어났다.
권력이란, 자신의 힘과 통제력, 그 전율을 맛보는 것이다. 그들이 밉다. 어느 날은 죽이고 싶을 만큼 밉다. 세상에는 이해하기 힘든 사이코패스들이 존재한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지독하고도 향기로운 것이 사람의 향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실수를 저지르며 살아간다. 예상했어야 할 일들을 겪으면서도 그 예상을 늘 대비하지 못하며 사는 게 문제였다. 사람으로 살아보질 않았는데, 나이가 들어도 겪게 되는 모든 것들이 첫 경험들인데, 과거의 지난 경험이 가르쳐 주는 것은 고작, 사람들마다 비슷하게 이해하고, 갖고 있는, 쉽게 부서져 내리는 감이라는 것이었다.
죄책감에 사로잡히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사고에 전전긍긍하며 직장을 잃기 직전에 명성과 자유도 잃을 게 뻔하다는 걸 알면서도 모험을 감행한다. 자기도취적이며 가학적이라 불러도 무방할 만큼, 사람들은 자신에게 빠져 살고 있다. 경험이란 어쩌면 연기나 과장일 수도 있다. 혹은 단순한 꾀병일 수도 있다.
나이가 들수록 자아가 두 개로 바뀌는 것 같다. 그들처럼 나 역시 사이코패스 쪽으로 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감정에는 정도가 있고, 공감의 결핍 또한 사람마다 다르다. 지구 반대편의 굶주린 아이들에게 마음 아파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감정과 공감은 늘 다른 이야기였다.
늘 처음이 어려웠다. 그러나 시간에 따라 익숙해지고 스위치는 쉽게 켜진다. 그리고 선을 넘어버린다. 그 순간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우리가 회사라는 구조를 다니며 걷는 길의 순서가 비슷했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고 믿으며 스스로를 무대 위에 올린다. 그렇게 사람들의 향기에 섞여 살아가다 보면 결국 스스로를 묻게 된다. 자신의 향기는 나지 않고 그들에게 파묻힌다.
진정한 나는 무엇일까.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사람들은 찾고 갈망한다. 답을 알면서도 답이 아닌 길을 걷는 것이 사람이었다. 그 질문이 어느새 우스워질 때가 있다.
늦은 잠에서 깨어 커피를 마신다. 그 향기에 취해 생각이 끝없이 이어진다. 애잔한 삶을 논하기 전에 치워야 할 과거의 향기에 빠지는 때가 많아진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하루, 가장 지독한 향기가 가득했던 날. 겨울의 검은 숲은 그날을 찾고 있었다.
어릴 때 학대당한 아이는 공포와 불안을 경험한다. 그 감정들을 억누르기 위해 가학적으로 변한다. 자신이 당할까 봐 두려운 일을 남에게 먼저 할 수 있다면, 더는 무서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광적인 폭력조차도 그 주체의 마음속에서는 어떤 의미가 있다. 그것을 아는 전문가들은 그들을 가두는 사회 속에 산다.
세상은 늘 우수한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으로 나뉜다. 도살업자를 기다리는 울어 되는 돼지보다는 포효하는 맹수가 되는 편이 낫다고 믿으며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가끔은 무언가를 사람들에게서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럴 때마다 사람은 좋은 친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시간 속에서 배워간다.
사람들마다 한 번쯤은 겪었다는 믿음. 의심. 배신. 이 수많은 관계의 단어들은 이미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위험에 빠뜨리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할 무언가가 필요해진다. 그래서 의심이 생기고 벽이 세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로움이라는 이름으로, 변질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되는 믿음이 있다. 그리고 그 믿음의 끝엔 늘 겪었던 배신이 있다.
사람들은 상처받았다고 말하지만, 그 반복적인 돌림노래는 누구나의 경험일 뿐이다. 마치 짐승처럼 땅을 파고 깊은 굴에 숨어 사는 것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 가장 어려울 때 향기로워야 할 사람들이 가장 지독한 냄새를 풍긴다.
또 한 해의 연말이 그 냄새 속을 지나가고 있다. 위태롭다는 것은, 늘 새로운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그것을 안다. 늘 새로운 사람이 생겨나고 늘 버려지는 사람이 생겨난다. 그것이 사람이다.
넓지도, 좁지도, 그렇게 깊지도 얕지도 않은 인간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그저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