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의 종착역은 없다 : 점유당한 시간
먹을거리를 가리켜 나는 이것을 소유한다고 말한다면 나는 이해할 것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나는 먹을거리를 내 안에 포함하고 나의 일부로 변화시키며 음식이 내 안에 속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먹는 행위를 두고 소유라는 말을 쓰지는 않는다. 나는 뭔가를 단어화하는 미친 짓을 하거나 신념이라 불리는 질병에 걸리지 않으려 한다. 행복이라 불리는 오명 또한 그렇다. 이 모든 것에서 세상의 냄새가 느껴지고 지구라는 슬픈 존재의 맛이 난다.
나는 무관심해진다기보다 육체도 진실도 소유하지 않기에 그렇게 서 있을 뿐이다. 거짓말로 꾸민 유령들이 다니는 낮은 다시 겨울처럼 차가워지는 바람 속에서 안팎으로 텅 빈 공허를 만들고 있었다. 퇴위한 왕처럼 열망은 죽게 놔두고 권태의 벚꽃나무 사이에 멈춰 선 채, 그 사이의 수풀을 지나 모인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들의 얼굴에는 입기도 전에 낡아버린 예복이 입혀져 있었고 도망가던 길을 밝혀주던 달빛은 없으며 침묵을 뿌려 덮어버린 별빛만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들의 입에서는 하얀 입김이 피어올랐다.
피로로 더럽혀진 꿈들이 귓전을 적시고 생을 잊은 나무들의 우듬지 아래에서 나의 망각은 달빛 어린 바위틈을 따라 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나는 시간도 산들바람도 아닌 무언가 사이를 거닐었고, 용산역을 배외하는 쓸모없는 신념을 돌이켜 보았다. 외계인이 뱉는 이상한 언어의 향수를 알지는 못하지만 부지런하고 다정한 붙임 속에 스며 있는 무료함만은 느낄 수 있었다.
정말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있는가. 아니면 우리는 이름을 붙이며 착각하고 있을 뿐인가.
잠시 군복을 입은 한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돌아가기 싫은 기색이 서려 있었다. 현실의 궤도에서 방황하는 인공위성처럼 두 눈동자는 계속 맴돌고 있었고, 열차에 오를 시간을 확인하듯 시계를 바라보며 발사 상태를 점검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소유하지 못하는 시간을 아쉬워하는 사람처럼.
나는 그의 눈에서 시간을 보았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지 않고 맴돌고 있었다. 돌아가기 싫은 궤도였지만 이탈할 연료는 없어 보였다. 열차는 정확했고 시계는 성실했으며 플랫폼의 공기는 군대식으로 정돈되어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발사 직전의 버튼처럼 단단해 보였지만 이미 눌린 뒤의 얼굴이었다. 결정은 끝났고 남은 것은 수행뿐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국가가 그의 시간을 소유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가 자신의 젊음을 국가에게 기증했다고 말해야 할까. 소유는 언제나 명사로 말해진다. 젊음, 조국, 의무, 명예. 그러나 삶은 동사로 흘러간다. 늙어가고 떠나고 잊고 기다린다.
그의 군복은 아직 새것이었지만 이미 낡아 있었다. 천이 닳아서가 아니라 그 안의 망설임이 너무 빨리 늙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연민하지 않으려 애썼다. 나 때보다 훨씬 짧아진 군 생활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연민은 값싼 감정이고 값싼 감정은 쉽게 소유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소유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무언가에 점유당하고 있다. 신념에 점유되고 역할에 점유되고 두려움에 점유된다. 행복조차 점유의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 “나는 행복하다”라고 말하는 순간 행복은 나를 떠나 문장 속으로 도망쳐 버린다. 늘 소유하기 힘든 것이 되어.
플랫폼 위로 열차가 들어왔다. 거대한 쇳덩이가 숨을 몰아쉬듯 다가오며 개인적인 사색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삶은 구조가 개인을 압도하는 순간 가장 또렷해진다. 청년은 가볍게 목을 굽혔다. 누구에게도 아닌, 아마 자기 자신에게. 그의 발이 움직였다. 그것은 결심이라기보다 관성에 가까웠다.
나는 알지 못한다. 그가 떠나는 것인지 밀려가는 것인지. 다만 그 순간 그를 소유한 것은 국가도 시간도 열차도 아니었다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그를 붙들고 있던 것은 이름 붙여지지 않은 두려움과 설명되지 않은 충성심, 그리고 그 사이에서 흔들리는 젊음이었다.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마 없을 것이다. 우리는 스쳐 지나가는 상태를 잠시 붙들고 그것을 우리 것이라 착각할 뿐이다. 열차 문이 닫히고 차창에 비친 그의 얼굴이 잠시 나와 겹쳤다. 나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 역시 나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같은 방식으로 점유당하고 있었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문장 속에서 각자의 자리에 끼워 넣어진 채, 끝까지 읽히지 못한 채 다음 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열차가 출발하자 플랫폼에는 바람만 남았다. 남겨진 사람들은 주머니를 뒤적이며 무엇을 잃었는지 확인하는 척했지만 잃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애초에 쥐고 있던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때 시간이 내 것이라 믿었다. 젊음도 선택도 후회도 모두 나의 소유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것들은 임시 보관증에 불과했다. 도장은 찍혀 있었지만 소유권은 언제나 다른 곳에 있었다.
군복을 입은 청년은 열차 안에서 창밖을 보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떠나는 풍경을 버리는 것이라 착각하면서. 그러나 떠나는 것은 그가 아니라 이전의 자신일 뿐이다. 사람은 늘 이전의 자신에게서 도망치며 미래라 불리는 감옥으로 걸어 들어간다. 국가와 의무와 복무기간 같은 단어들은 정교하게 설계된 문장이다. 문장은 안전하고 의심을 허용하지 않는 문법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가는 순간 사람은 주어가 아니라 목적어가 된다.
나는 그를 보며 나의 시간을 떠올렸다. 그때도 누군가는 나를 “나라를 위해”라고 설명했을 것이다. 설명은 늘 깔끔하지만 실제의 밤은 단정하지 않았다. 침상 위에서 천장을 바라보던 순간들, 이유 없이 울컥 차오르던 숨, 점점 커지던 적막은 어떤 명사로도 정리되지 않았다.
우리는 소유하지 못한 시간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재포장하고 그것을 내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추억은 저장된 것이 아니라 매번 다시 쓰이는 문장일 뿐이다. 쓸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고 우리는 그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청년은 다음 역에서도 시계를 보았을 것이다. 시간을 확인하는 행위는 시간을 소유하려는 마지막 몸짓처럼 보이지만 시계는 무표정하다. 누구의 것도 아니고 누구를 위해서도 멈추지 않는다.
이제 나는 묻지 않는다.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를. 대신 생각한다. 우리는 소유하려는 존재가 아니라 통과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음식이 몸을 통과해 일부가 되듯 시간도 나를 통과해 어딘가로 흘러간다. 나는 그것을 붙잡지 못하고 잠시의 온기나 냉기를 느낄 뿐이다. 소유는 아마 감각의 착각일 것이다. 잠시 머문 온기를 영원이라 믿는 실수.
플랫폼은 다시 조용해졌고 사람들은 다음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은 거대한 환승역과 같다. 누구도 최종 목적지를 모른 채 자신의 표가 진짜라 믿으며 이동한다. 그리고 나는 안다. 그 청년도 나도, 이 문장을 읽는 누군가도 어디에도 완전히 도착하지 못한 채 잠시 어떤 역에 서 있을 뿐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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