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의 인플레이션

사과는 많고, 변화는 없다

by 구시안

사과는 언제부터
이렇게 가벼워졌을까.


나는 그 질문을
자주 떠올린다.

한때 사과는
쉽게 꺼낼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잘못을 인정하는 일이었고,
책임을 감수하는 일이었고,
체면을 내려놓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사과는
가장 먼저 나오는 문장이 되었다.

논란이 생기면 사과하고,
비판이 커지면 고개를 숙이고,
시간이 지나면 돌아온다.


사과는
끝을 알리는 말이 된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이 문장은
묘하게도 안전하다.

무엇이 잘못이었는지 말하지 않아도 되고,
누가 책임질 것인지 밝히지 않아도 된다.

잘못은 흐려지고,
감정만 남는다.


우리는
책임이 아니라
기분에 대해 사과한다.

사과는 점점
위기 관리의 기술이 된다.

윤리가 아니라 전략이 되고,
반성이 아니라 절차가 된다.


형식은 남고
내용은 사라진다.

사과가 많아질수록
사과의 가치는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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