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단계

거절의 방식

by 구시안

나에게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살다 보니

타락이 빚어낸 도깨비불이

지속적인 암흑을 밝히는 최소한의 빛이 되기도 했다.


감정에도 단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스스로 관전하는 심판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지도 참 오래 지났다.

부끄러워하는 것은 창피한 것이 아니며

행동할 줄 모르는 것은 훌륭하지 못한 것이 아니며

생활에 서툰 것은 위대하지 않지만

후진 것도 아니었다.


내 입술에 올릴 생각조차 못했던 말들

끝까지 꿈꾸지 못하고

잊어버린 꿈들이 담긴 우물을 들여다보는 밤.


누군가 나에게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답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한순간의 대답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과연 믿어줄까.


가짜 축하.

가짜 경멸을 할 바에야

야릇한 미소와

모호한 인상을 자아내는 조각이 되느니

나는 차라리 완벽한 거절을 하면서

이 지겨운 인간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아주 오랫동안

혼자서 씨름을 하는 밤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여전히 나는

내 삶을 어느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았다는 사실이

유일한 행복이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인간들을 만나고

생리적인 구토감이 올라오게 되기까지

이 십 대의 나절들에 내 주변으로 모여든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는 행복한 줄 알았다.


일부러 토하는 경우처럼 의도적으로

메스꺼운 정도를 높이기도 하는 지금

따분한 일상이 감옥이라도 되는 양

두려운 마음으로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 아직 문을 열지 않는 가게와

혹은 사무실을 열기도 하지만, 늘 나눠야 하는 일상 속의 대화의 파편들에서

나는 반드시 거절해야 할 이야기를 듣게 되는 일과를 보내게 된다.


보이지 않는 학교처럼 느끼고 싶지도 않고

나의 하루를 망치기도 싫기도 하여

냉소적인 동냥처럼 떨구기도 하고

가장 많이 쓰는 말 중 하나인

"관심 없다"는 말이 입에 포도알처럼 맺힐 때마다,

결정을 확실해주는 것이 상대에게도 좋다는 것을 알기에

거절을 할 때는 시차를 두고 단호하게 거절을 한다.


나이가 먹어가며 생기는 직관이라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능력이 되어 있기도 하지만,

거절을 할 때는 모든 목소리에 또렷한 음성을 더해주고

힐끗대는 눈길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조심하며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감정을 더한 추잡한 태도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단단히 붙잡아 두고

추잡한 속임수나 애매한 기대를 갖지 못하게 단어를 선택한다.


충분히 상대가 다시는 권유나 부탁하지 못하게

그들 입에서도 충분히 구토가 유발될 수 있을 만큼 간 적도 많지만

그것은 단절이라는 이름을 걸어두고 진행시키는 것들이기에

지금 단절될 사람에게만 행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거북하고

상황을 설명하거나

태도가 문제가 되는 관계는 필요조차 없으니까.

은밀한 이야기나

헛소문이

난무하게 될 인연이라면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살아오면서 배웠다.


나는 원숭이들이 서로를 긁어주는 듯한

서로 지껄이는 저급한 농담이나

자신이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모르는

무지한 인간들을 멀리한다.


감정의 단계를 모르고 덤볐다가는

싸움이 되거나 일이 커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때로는 스스로 감정의 심판자가 되어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원하지 않아도 그런 순간은 일상 속에서 반복되기에,

자신만의 거절 방식만큼은

분명히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감정을 느낄 때 나는 누구인가를 모른다면

그 사람 자체는 희미한 도시의 풍경 어딘가와 다를 것이 없는 존재이다.

미리 써놓은 이별의 편지를 받는 사람들이 내게는 존재한다.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무엇을 여기저기 뒤지고 있지만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

그런데 이 모두를 초월하는 속임수가 있고

단지 들을 수만 있는 가변적인 신성이 존재하기에

목적지로 가는 길을 잃은 커다란 희망 혹은 닫힌 방 같은 상처.

깊은 피로나 쓰이지 않는 설명서를 읽고만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될 때.

몇 가지 의구심은 금세 그렇게 내 감정에 젖어들게 되어 있다.


리트머스 종이처럼.

그들의 말이 닿으면 반응하는 색이 달라지는 것처럼.

거짓말과 진실을 감지하는

다시 읽지 않아도

다시 리트머스를 시험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게 되는 그 사람들의 마음은 이미 나의 관심 밖으로

떠나갈 때가 많다.


허락하게 되는 순간은 아주 작지만,

거절하게 되는 순간이 많아지고 있는 것을

나이에 비한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나이가 들수록 거절하는 순간이 많아진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

어깨를 움츠리기보단 더 당당하게 펴고 말하는 것이

그리고 그 관계를 유지하려 애쓰기보단

지금 단절돼야 한다는 생각이 옳다면

그 관계 역시 뒤끝을 생각하지 말고

거절을 해야 한다.


나는 오늘

가짜 이름과

진짜 꿈이 만나는 현실 사이에서

세 명의 사람에게 거절을 보냈다.

자동이 되어가는 세상이지만

나는 아직 수동적인 것이 좋아서.

새로운 현실보다는

그래도 싫든 좋든

구역질이 계속 나든

시간 속에

지켜오던 것이 좋아서.


추측을 버리고

거절을 완벽하게 보내고

그 추측들로 실제로 다른 감정이 생겨버릴 봐에야

익숙한 감시가능한 내가 느끼는 감정의 단계가

좋아서 말이다.


착각과 환상에 사로잡혀 사느니,

지독한 현실주의자가

여전히 나와는 어울린다.

늘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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