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솔이 아닌, 사람의 온도로 일하다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같은 업종의 후배와 술자리를 가졌다. 쌀쌀한 날씨에 좋아하는 곳이 생각나서 늦은 시간 단골집을 찾았다. 따뜻한 불 앞에 있고 싶었다. 최근 점장이 되어 바쁘게 보냈던 후배의 얼굴은 말을 안 해도 알만 했다. 여러 가지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술이 깊어질수록 후배의 표정에는 묵직한 고민이 배어 가고 있었다. 술이 무르익어가고, 서로의 사는 이야기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얼마쯤 지났을까. 무엇이 그리 분통이 터지는 순간이었을까.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불콰한 얼굴을 하고 내게 물었다.
“선배, 사람들을 잘 통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띠동갑인 후배의 입에서 ‘통솔’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군사정권시대가 생각나기도 하고, 마치 대통령이라도 된 듯, 혹은 어느 군단장쯤이 떠오르는 아주 오래 묵은 단어였기 때문이다. 이 친구는 누굴 통솔하고 싶은 것일까를 생각하며 소주를 비웠다. 솔직한 감정의 여러 가지 말들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고 넌지시 웃어주었다. 다시 비어진 후배의 소주잔을 채웠다. 그의 질문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진지한 삶의 고민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간의 온도가 문제일 것이였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일상의 구조는 ‘조직’이다. 개인의 의사결정만으로 굴러가는 일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윗사람의 명령과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그 속에는 ‘충성’이라는 이름의 구조가 숨어 있다. 리더의 한마디에 구성원들은 방향을 맞춘다. 누군가는 신이 나고, 누군가는 지치며, 또 누군가는 저항한다. 그래서 인사(사람의 자리)가 중요하다.
리더의 가장 큰 일은 사람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이다. 리더는 구성원을 설득하고, 동기를 부여하고, 평가하며, 기대치를 조율해야 한다. 또한 변화의 흐름을 감지하고, 그에 따라 조직을 움직여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마치 풀리지 않는 큐브를 매일 돌리는 일과 같다. 복잡하고, 피곤하고, 답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파고들면 의외로 단순하다. 결국 사람의 본능을 움직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본질을 보지 못하고 표면만 건드리면, 결국 이렇게 말하게 된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해.”
“그냥 위에서 이렇게 정했어.”
그 순간, 일하는 사람은 생각을 멈춘다. '위에서 시켰으니까요.’라는 말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어 버린다.
그렇게 되면 일은 느려지고, 소통은 복잡해지며, 사람은 많은데 진행은 더디다. 나는 그런 구조 속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 내가 바라는 건 이런 조직이다.
“그래, 우리가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거야.”
“그렇지만 이건 틀렸을 수도 있어.”
리더는 이런 대화가 가능한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작은 사람이 큰일을 할 수 있고, 그 일이 자연스럽게 재미있어지게 되어 있다. 일의 감각이란 결국 현명한 생각의 흐름이다. 버틴다는 건 단순히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다. 문제의 본질을 찾아가며, 어렵고 괴로워도 그 과정을 견디는 일이다.
‘버티느냐, 나가느냐’의 갈림길에서 나는 후배에게 단 한마디를 남겼다 “ 버텨라.” 후배의 얼굴에는 은은한 미소가 지어졌다. 마치 더 이상 말을 안 해도 알겠다는 것처럼 미소를 지어 보였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성과는 없다. 하지만 풍파를 견디고, 비바람과 눈보라, 더운 날과 추운 날을 지나며 끝까지 버티다 보면, 결국 본질의 답은 드러나게 되어 있다. 세상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없다. 그 과정이 험난할 뿐이다. 나는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 뜨거운 순간마다 찬물을 끼얹는다. 무언가 너무 잘 풀릴 때, 스스로 그 열기를 식히는 편이다. 온탕의 나른함보다 냉탕의 정신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삶이란 목욕탕과 같다. 온탕과 냉탕을 자유롭게 오가며 균형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 너무 빠른 성장은 늘 위험하다. 물이 넘칠 것 같으면 수도꼭지를 잠가야 한다. 리듬과 템포를 조절하는 감각, 그것이 진짜 리더십이라고 나는 믿는다. 세상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브랜드가 생기고 사라진다. 오랜 시간 사랑받는 브랜드에는 모두 ‘서사’가 있다. 반면, 일시적인 성공에 취한 브랜드는 금세 사라진다. 그 이유는 단 하나이다. 본질을 놓쳤기 때문이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매출이 떨어지면 가장 먼저 줄이는 건 인건비다. 사람이 회사를 살리지만, 사람을 가장 먼저 내치는 곳 또한 회사다. 아무리 좋은 마케팅과 화려한 홍보를 해도, 본질의 문제점을 외면한 조직은 오래가지 못한다. 때로는 잘 되는 현실에 도취되어 묵어 가는 문제를 외면할 때가 있다. 그러나 본질의 이해와 사고 없이는 어떤 브랜드도, 어떤 조직도 성공할 수 없다.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사회는 복잡한 그물망 같지만, 사실은 단순무식할 만큼 명확한 곳이다. 너무 어렵게 생각할수록 문제는 더 어려워진다. 가장 단순한 해결책을 찾는 일, 그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네, 알겠습니다.”라는 말만 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리더가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이 함께한다면, 일은 단순해지고 방향은 명확해진다. 통솔이 아닌 통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람 사이를 잇는 온도의 기술이 뛰어난 사람을 아직 이 시대는 찾고 있다.
후배가 질문한 물음에 ‘통솔’이라는 단어는 결국 너무 오래된 말이었다. 리더는 사람을 ‘통솔’하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통합'하며 나아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후배의 매장에는 새로운 로봇이 들어와 홀 서빙을 하는데 만족한다고 했다. 인사 정리가 이루어진 사람들을 대신해 로봇이 사람과 함께 하게 된 것이다. 사람을 대신할 로봇들의 등장은 이미 진행 중이다. 하지만 모든 시스템에는 관리자가 필요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아직 사람이 필요한 법이다. 어떠한 곳이든 아직까지 사람이 필요한 시대에 사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사람의 본능을 움직이는 일을 하며 사는 시대가 그리워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사람사이를 잇는 온도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아직까진 행복한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물드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