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으로 물든 온실

우리가 조용히 자라나는 시간

by 구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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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속에서 자라나는 인간에 대하여"






유리창 너머로 겨울빛이 흘렀다.
그 빛은 식물의 잎 끝에 닿아,

천천히 녹았다.



세상은 바깥에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목소리는 얇은 유리 너머에서

금이 간 파도처럼 들려왔다.



사람은 때때로 자라지 않는다.

그저, 견딜 뿐이다.

햇빛이 닿지 않는 마음의 온실 속에서

조용히, 자신을 버티며 살아간다.



남자는 말없이 서 있었다.
누군가의 시선에 기대지 않은 뒷모습,
그의 어깨 위엔 시간이 쌓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남기고 간 온기를

식물들이 대신 흡수하고,
그 속에서 그는 자신이

조금씩 사라지는 걸 느낀다.

식물들은 말이 없다.

대신 매일 조금씩 새로운 잎을 내민다.
그 느린 속도에 그는 위로를 받는다.


세상은 너무 빠르지만,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늦게 자란다.

손끝이 창가의 화분을 스친다.
흙의 냄새가 잠시 공기 속에 머문다.



그는 살아간다는 것이

무언가를 이루는 일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는 법을

배우는 일이라는 걸 안다.
그 배움에는 말이 필요하지 않다.
식물들처럼 침묵 속에서

하루를 늘려가는 일뿐이다.

바깥은 차갑고 빠르다.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추락하고,
누군가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이 온실 안에는

단 하나의 온도만 존재한다.
조용하고, 미세하게 따뜻한,
체온과 흙의 경계 같은 온도.

그 온도 속에서 그는 숨을 쉰다.


식물들과 함께 호흡을 나눈다.

그가 내쉬는 숨은 잎맥을 타고,
잎맥은 다시 공기로 번진다.
그 속에서 그와 식물은

하나의 생명이 된다.



그는 문득 생각한다.
사람도 이렇게 자라날 수 있을까.
빛을 향해 몸을 비틀며,
언젠가 스스로의 그림자를

넘어설 수 있을까.



바깥은 여전히 겨울이다.
눈 대신 바람이 내리고,
온실의 유리는 그 바람을 막고 있다.
하지만 그 유리도 언젠가는 금이 간다.
햇빛처럼, 외로움도 언젠가 들어온다.



그는 고개를 든다.
유리창 너머의 하늘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렇지만 그는 오래 바라본다.
아무것도 없는 그곳에서
그는 무언가를 본다.

그건 아직 말로 할 수 없는 것.
그러나 반드시 자라날 무언가.

그의 등 뒤로 식물들이 출렁인다.

초록의 숨이 그의 그림자를 감싸고,

공기의 결이 천천히 변한다.



그는 돌아서지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서 있다.
그의 침묵은 흙으로 스며들고,
그의 체온은 잎으로 흘러든다.

이제 그는 온실 속에 자라는

하나의 생명일 뿐이다.


사람이자, 식물이며,

삶과 식물의 경계에 서 있는 조용한 존재.

그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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