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카페에 풍경을 매달다

고요를 매다는 시간

by 구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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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는 맞지 않고 흔들리며, 결국 깨지게 되어 있다. 누군가를 은밀히 미워하면서도, 경계 저편으로 밀어두었던 사람들을 챙겨야 한다는 것이, 내가 하고 있는 일이다. 그것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수수께끼 같은 것이다. 매일 수없이 오고 가는 사람들을 마주한다.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 공기가 달라지는 순간은 매일 겪게 되는 형벌처럼 느껴지고 있다.



약한 마음을 먹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누구도 비난하지 않지만, 이만큼 버텨낸 것도 잘하고 있는 것이라 되뇌며 스스로를 각인시키는 정신없는 오전을 보냈다. 모든 구조의 형태에 존재하는 전쟁이 있다. 아침부터 매장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들의 편을 나눈 남과 북의 전쟁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미팅을 하면서 나는 그 전쟁에 대해 아무 말하지 않기로 했다. 서로의 의견을 내세운 전쟁은 결국 각자가 더 높은 산이 되고 싶어서일 뿐이다. 어차피 스스로 느끼고 잠잠해질 이 전쟁을 겪은 지도 몇 년째다. 작은 마을의 우물 속 개구리들이 서로의 깊이를 논하는 것처럼 어이없는 것이었다. 유치하게 찬란한 것이 이런 전쟁일까. 죽은 청개구리 무덤의 둔턱이 얼마나 낮은지 아무리 이야기해 줘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해 귀머거리처럼, 진심을 다해 말을 전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 입을 닫는 일은 이제 내겐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저 매일 벌어지는 일이라 치부해 버린 지 오래다. 별 의미 없는 또 다른 사건들의 계기가 된 소음들은 출근길부터 여전했다.



마치 시골에서 가끔 전봇대 확성기를 통해 들려오는 이장님의 별다를 것 없는 동네 방송처럼 흘려보내면 그만이었다.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시간은 쏜살처럼 점심시간을 메우고 있었다.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일에 집중하기 시작한 직원들은 그렇게 또 자신의 할 일들을 하고 있었다.



하늘은 청하 한 차가움이 깃든 겨울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속은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어제와는 다른 오늘의 또 다른 온도를 식혀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식사는 거르고 책을 들고 답답할 때면 들리는 검은 카페에 앉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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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쏟아지는 비가 도시의 모든 활기를 잠시 삼켜 버리는 듯했다. 알 수 없는 변덕스러운 날씨는 오전 매장의 일과와 닮아 있었다. 소나기 같은 시작이었다. 늘 예고 없는 이야기들이 생겨나는 곳,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써 내려가는 즉흥적인 대본 같은 하루 속에 펼쳐지는 드라마가 난무했다. 철저한 익명성이 가득한 매장의 온기가 사라진 관계들을 경험하는 아침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바쁘게 돌아가는 매장 안에 발자국들이 불이 나는 지옥 같은 런치를 끝내고 찾아온 한가한 시간. 밥을 포기하고 들리기 시작한 검은 카페가 이렇게 한산했던 날도 있었던가 의심스러웠다. 마치 나를 위해 비워둔 것처럼 좋아하는 자리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실내는 빈자리가 많았고, 나는 유일한 자유 시간처럼 느껴지는 이 순간에 책을 들고 다시 검은 카페에 앉았다. 사람들과 1도 섞이기 싫어, 바람은 차지만 사람이 없는 밖을 택했다. 용산으로 출근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이곳을 ‘검은 카페’라 부르기 시작했다. 밥보다 책을 먹기로 택하며 들리게 된 곳. 아지트 아닌 아지트가 되어 버린 곳이다. 카페에 앉아 허공 어딘가를 응시하며 찾아든 고요를 즐긴다. 나는 가끔 운명에 작용했을 변수들을 불러내는 일에 골몰할 때가 있다. 물론, 최선을 다한 인내와 배려로 이어진 시간을 보상해 줄 타인은 없다. 모든 것은 스스로 선택한 결과이며, 정해진 운명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익숙해질 나이가 되고 나서야, 그 자연스러움의 미학이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을 뿐이다.



그저 익숙한 일. 이제는 할 만한 일이 되었기에 하는 것뿐이다. 정해진 운명 같은 것의 존재를 느낄수록, 일에서 오는 기쁨과 자연스러움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유난히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는 출근길의 조바심이 싫었다. 용산역에 내리면 다 때려치우고 어디론가 바다를 보러 떠나버리고 싶은 욕구가, 수많은 열차가 세워져 있는 용산역을 잠시 바라보다 발걸음을 돌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날이 많았다.



모로 누운 아이의 몸을 바로 눕히듯, 자세를 고쳐 잡고 책을 펼쳤다. 의외로 집중이 잘 되는 한강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출근길, 퇴근길, 그리고 검은 카페에서 읽었다. 몇 번을 다시 읽어도 느껴지는 것이 달랐다. 하나, 한강작가가 주는 여운은 늘 겨울 같다는 것이었다. 차가운 여운이 감도는 문체는 한 편의 시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가끔 시계 초침을 눈으로 따라가며 정해진 시간의 압박을 느끼지만, 책 속에 빠진 검은 카페의 시간은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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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일을 겪고도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꾸미며 세상 속으로 흡수되어 살아간다. 철저한 익명성과 소비의 미덕을 노래하는 인스타그램, 유튜브의 광고 속에서 사물들이 노래하고 넘쳐난다. 나는 그 범람이 싫어 SNS를 잠가 버렸다. 모든 사물에 짓눌려 죽어가는 듯한 광고들, 그러나 그것이 오늘의 현실이고 사고이며 유행이었다.



여린 삶의 슬픈 실존처럼 느껴졌다. 얽히고설켜 살아가며, 먹히거나 사거나 버리거나 하는 모든 것들에 이미 질려 있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전쟁의 상흔을 겪은 뒤 가장 평화로운 곳을 찾는 방랑자처럼, 무언가에 집중하고 고요하기 위해 다시 책을 선택했다. 그 안의 모든 이야기, 사람, 전개, 그리고 궁금해지는 결말을 위해 오롯이 혼자 읽어 내려가는 단순 노동을 택했다. 한강의 두 권의 책을 읽는 동안, 현실이 아닌 꿈속의 이야기처럼 느껴졌고, 그것이 다행이라 생각하며 책을 덮었다.



육중한 피로감이 쌓여 침대에 눕고 싶은 날들이 이어졌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도시의 기척이 잠잠해질 때 오히려 또렷해지는 시야 속에서, 읽지 못한 책들을 꺼내 들었다. 하루, 이틀, 삼일 지나도록 잠을 포기하고 눈이 감길 때까지 책을 읽었다. 글을 쓰거나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나 일상 속 모든 것은 늪이 되었다.



잠을 포기한 대가로 몸은 피로했고, 가끔 병이 찾아왔다. 그럼에도 푸른 불길처럼 일어서듯, 숲을 비추는 달빛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런 편안함은 오랜만이었다. 소름 끼치게 진실한 감각으로 느껴지는 것들이 기억 속에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땐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 알게 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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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씩 일을 하며 새벽녘 숲길을 상상한다. 맨발에 닿는 이슬의 감촉을 떠올린다. 그곳은 완전히 다른 행성이었다. 사람에게는 다양한 표현의 방식이 있다. 입을 열지 않아도 가능한 일임을 이제야 안다. 나는 침묵이 좋았다. ‘의식이 존재를 규정한다’는, 그런 거지 같은 사고는 필요 없었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모든 것은 자연스레 고요해졌다.



이 순간, 풍경을 매단다. 바람, 하늘, 검은 카페, 그리고 달라지는 구름의 이동을 시선에 매단다. 비워내면 오히려 마음은 꽉 차는 듯하다. 가장 단순하면 불편한 게 없다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법칙일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난무하는 하루에 예민할 필요는 없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릴 걸 이미 알고 있으니까. 특별한 용도를 위해 사람들과 정치질을 할 필요도 없다. 가장 단순한 일에 자신을 던져버리면 그만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려 애쓰지 않기로 했다. 그냥 가능한 일을 하면 될 뿐이다. 매혹적이고 유혹적이지 않아도 괜찮은 나이가 되었다. 많은 것을 포기하는 건 아닐까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누가 들으면 재수 없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아직도 매력적이고 호기심 많은 사람이다. 초현실주의자가 굳이 망토를 갈아입을 필요는 없다.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며, 할 만한 것을 하고, 싫어지면 그만두면 된다. 가장 단순한 일은 일상 속 풍경을 매달아 두는 일이다. 그 풍경을 매달면 많은 것이 스쳐간다. 그 시간이 찾아오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이야기들이 이미 넘쳐난다. 남들은 갖지 못한 지금 내가 소요할 수 있는 순간의 나만의 것이니까. 일상 속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만큼은 책, 커피, 그리고 깊은 들숨과 날숨, 그리고 검은 카페에 앉아 풍경을 매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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