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를 부르는 머릿속의 바다

변명 없이 살아가는 한 인간의 사유

by 구시안

쉽게 쓰인 느슨한 손가락의 한숨을 지운다.

나는 내가 당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변호하거나 이해받기 위한 것을 만들지 않으며 살아가기에도 바쁘다.


기본적인 법칙에는 결코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것.
밤중에 불붙인 나무조각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를 뿐이다.

거만하지도,
지면보다 낮게 행동하지도 않는다.


존재하는 것 자체로 만족하기가 이렇게도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사람으로 태어나 알게 되기까지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바뀌지 않는 의식 하나는 제자리에 앉아 있다.


그것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일이
이렇게나 힘든 일인가.

내가 다시 기도를 하게 될까.
무언가를 소원하거나
기원하게 될까.

아마,
아닐 것이다.


늘 결정한 것에 번복이라는 것은
내 인생에는 없었다.


이미 머리로는 백 년도 못 산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 그것을 즐겨야 하기에도 모자란 판국에
혹은 그 즐거움을 기다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정해진 시간이라는 것이 있음에도
늘 사람으로 살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육체의 시인이 되든
영혼의 시인이 되든,

천국도 모르고 지옥도 모르지만
대지와 밤에 반쯤 붙잡힌 채
여전히 머릿속은 바다를 부르고 있다.


고요함.
그 알 수 없는 신비한 심해.
그 고요함.

그 심해에도 서늘한 숨결의 대지가 존재할 것이다.


물기를 머금은 바다에서 살아가는 나무들이 숨 쉬는 곳.

밀려옴과 밀려간 자들이 함께 머무는 곳.

그곳에도 미움과 찬양은 존재할까.
사랑은 존재할까.
동정심은 존재할까.

차라리 땅 위에 있는 것들은
그곳에는 없었으면 한다.


한쪽의 균형과
그 정반대의 균형이 있듯이
아직 내가 모르는 세계는 존재할지도 모른다.


생각과 행동이 활기를 이루는 곳이면 좋으련만,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은 어느 영화에서 본
이상한 그림들로 도배되어 있을 뿐이다.

상상하기 힘든 곳.
허나 있을 것만 같은 곳.

오래된 소용돌이 장식으로 문법을 이룬 곳이 존재한다면 어떨까.


사람들은 그곳을 찾아 떠날 것이다.
늘 새로운 것을 찾는 사람들이 그러하니까.

사람은 지질학자이기도 하고
의사이기도 하며
또한 수학자이기도 하니까.


공기 중에 수증기가 가득하여
안개와 어떤 기운들이 창가에 밀려든다.


가린 목소리들이 흘러나오고
금지된 목소리들이 흘러나오고
바보스러운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내면으로나 외면으로나
늘 흔들리는 빗줄기처럼 바람의 영향을 받으며
만지는 것,
평평한 것,
단단한 것.

생각이 자라는 나의 경작지에는
소심한 도요새 한 마리조차 오지 못하게 하는
허수아비가 서 있는 것만 같다.


모든 것이 순수한 신의 장난처럼 느껴지는 밤.

말없이 솟아오르고
신선하게 스며 나오는 언어들이
비스듬히 높고 낮게 돌진하기 시작한다.


항상 나로부터 일출을 내보낼 수 없다면
사람들은 태양처럼 눈부시고 놀랍게 솟아오를지도 모른다.

새벽의 고요함과 서늘함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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