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의 단상
이 모든 무대에는 입장료가 없다.
펼쳐진 하늘과 자연은 더러운 정치를 벌이지도 않고
누군가를 속이지도 않는다.
낡지도, 손상되지도 않은
언제나 가장 신선한 상태의 날것 그대로의 무대를
차별 없이 사람들에게 내어준다.
시간의 흐름과 변화를 묵묵히 견디며
순간순간 계절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가고,
날씨라는 이름으로 하늘의 색을 바꾸며
때로는 무언가를 내려 보내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이 모든 것을
하나의 철학이라 부른다.
어떤 무대가 펼쳐질지 알 수는 없다.
베일에 가려 어렴풋하고
아련하다.
그 무대 위에서는
사랑이 소리 내어 웃기도 하고,
기분이 구슬프게 가라앉기도 한다.
유쾌한 농담이 공기 속에 퍼지기도 하고
사람들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뒤흔들기도 한다.
고유한 즐거움.
지금의 삶이 비록 시시하다 해도
그것이 단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과거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모든 삶에는
저마다의 특별한 성격이 있고
그에 어울리는 고유한 즐거움이 있기 마련이다.
비록 생활이 더 나아졌다 하더라도
그 고요한 즐거움은 예전만큼 좋지 못하고,
그 특별한 성격 또한 더 이상 특별하지 않게 되어
결국 사라지고 놓쳐 버린 것이 된다.
언젠가는
내가 무용지물이었고
초라하며 불완전했던 시절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삶의 가혹함뿐 아니라
행복으로부터도 나를 보호해 주는 금고 같은 이곳에
나를 언제까지나 머물게 해 달라고
신에게 간청하고 싶지는 않다.
방랑자에 대한 기억을 남겨 놓는 일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훑어볼 뿐
끝까지 읽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속에서 황혼이나 달빛에 대한 묘사 몇 줄쯤
건져 갈 수 있다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이라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이다.
나는 한 권태와 다른 권태를
굳이 구별하지 않기로 했다.
길게 휘어진 거리가 두 갈래로 나뉘는 곳에서
죽어 있던 가로등 불이 갑자기 켜진다.
무언가가 넘어지는 것처럼
슬픔이 가슴을 조일 때가 있다.
추상적인 길의 끈적한 대기 속에서
감정선 한 가닥이
멍청한 운명이 흘린 침방울처럼
내 영혼의 의식 위로 떨어진다.
나는 비현실을 감지하면서
불확실하게,
그리고 비유적으로
계속 걷는다.
삶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을
되뇌면서.
삶이 시작되기도 전에
나는 이미 물러나 있었다.
꿈속에서조차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꿈 자체가 피곤했다.
그 피곤함은
끝이 없는 길의 마지막에
마침내 도달한 것만 같다는 묘사로
사람들을 현혹했다.
허구 같기도 하고
누군가 내 안에 주입해 놓은 감각 같기도 하다.
나 자신으로부터 흘러넘쳐
어딘지 모를 곳에 머물게 되는 날.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그 자리에 멈춰 서고 싶지는 않기에
나는 걷는다.
나를 지켜보며 산다는 것조차
이렇게 어려운데
입장권 없는 이 무대의 관객들을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어떤 눈길로 바라봐야 할지 모르는 사이
내 감정들은
마치 외부의 사물인 것처럼
내 눈앞을 지나간다.
무엇을 하든
나는 나 자신이 지겹다.
모든 것이
뿌리 끝까지 전부
내 지루함의 색깔과 같은 것처럼 보인다.
어떤 날에는
최소한의 활동조차
영웅적 행동처럼 힘이 든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분수다.
기껏 솟아올라 봐야
결국 같은 자리로 떨어질 뿐인 것.
햇볕 아래에서
아무 의미 없이 반짝이거나,
고요한 밤에 물소리를 내
누군가가 꿈속에서 바다를 떠올리고
잠깐 미소 짓게 만들었다가
곧 잊히게 되는 것.
분수의 그 거짓된 움직임 이상으로
무언가를 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더 나은 날도 있다.
시간이 나에게 건네주었던 꽃들은
이미 모두 시들어 버렸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꽃잎들을
천천히 하나씩 떼어 내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속이 덥고 불쾌했던 하루가
칙칙하게 식어 갈 무렵,
가장자리가 찢어진 먹구름이
갑갑한 도시 위를 떠돌고 있었다.
길게 이어진 침울한 도시의 강어귀 위로
그런 구름들이 겹겹이 쌓이고,
흐려진 태양을 향한
정체 모를 울화와 권태가
하얀 연기가 되어 휘돌아 나갈 때,
이 무대 위의 모든 것은
어느 성당에서 울리는 종소리처럼
조금 서글프게 느껴진다.
햇빛은 이미
완전히 숨어 버렸다.
어두워진 사무실의 중간 구역에
불이 켜지고,
한 손에는 믹스커피 한 잔이
다른 손에는 타들어 가는 담배 한 대가
천천히 식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