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손가락의 미래를 가진 사람

잔설을 바라보는 얼굴

by 구시안

여러 삶을 겪어내며 내 얼굴은 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넘어선 문턱과 손길마다

봄이 다시 태어났었고

나를 위해 봄의 잔설(殘雪)들을 바라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고 있다.


다섯 손가락의 미래를 간직하고

알 수 없는 운명의 손금은

늘 손바닥에 새겨진 채로

조금씩 변해가는 얼굴과 손금을 바라본다.


타인을 통해 살아가야 할 이유의 낮보다

쇠약해진 섬세한 황금 달 보다 더 아름다운

눈멀고 연약해져 가는 소년이 앞에 있다.

안개와 이슬의 길을 밟아가며 살면서도

혼자 서지 못하는 어린 육체는 이제 없지만,

바람과 추위가 아직 서늘하게 느껴지는

도시 속 어느 자리에 나라는 존재는

여전히 어른이라는 이름을 갖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보이는 손길마다의 존재와 미덕은
이제 유일한 고독이 되었다.

환희에서 분노로,
번뇌에서 각성으로 넘어가는
너무 가파른 고개마다

나는 스스로 고개를 끄덕이거나
혹은 가로저으며 지나간다.

산과 구름 속의 모든 시간,
모든 존재를 지나

나 하나를 온전히 만들어 가는 시간이
이렇게 힘든 일이란 말인가.


지나가는 계절들.

사계절이라는 이름이 이 계절들이 너무나 짧게 스쳐만가고 있고

내 피는 내 폐허에 솟구치기 바쁠 때가 존재하는 것을 보면

사람은 서로에 대한 애착보다

하늘에게 땅을 주고 밤에게는 하늘을 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매혹적인 것이 있을까.

끝없는 하루를 준비하는 낮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아직 치지 않은 천둥의 검은손 뒤에 숨어 있을 뿐이다.


빛은 이상하게도 가장 아름다운 시점에서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하기도 한다.

빛은 나무와 바다와 돌에

균열을 내기도 하니까.

황금빛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살 테지만,

새와 물고기는 진흙 속에서 뒤섞이는 낮도 존재한다.


나는 나밖에 없는 곳에서 사람들을 바라본다.

내 근심은 가벼운 옷으로 부서지고

나는 매우 감미로운 말들이 내 심각한 목소리와 만나

내는 소리를 듣고 있다.

순수한 시선의 망을 받치고 있고

험난한 산과 바다를 지나야 하는

지워지고 있는 지도를 하나 들고 있는 것뿐이지도

모르겠다.


무슨 상관인가.

이미 시간은 흐르고 있을 뿐이다.

자연과 거울이 흐려졌던 것이

하늘이 비어 있었던 것이

그 비어짐 속에 비단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놀랍지도 않을 뿐이다.



이전 20화모래 위의 깃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