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별이 태어날 때까지

이름과 고독 사이에서

by 구시안

누군가에 뒤에 드리운 고통스러운 스크린이었던 눈(眼)조차도

녹아내려 버렸던 눈(雪)처럼 감추곤 했다.

지상의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만남이라는 이름으로

이젠 화석이 된 모든 것들에 출구의 목선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눈부신 혼돈을 향해 완전히 부풀어 오르는 어둠 속에

나는 누군가의 이름들이 환상으로 변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가끔씩.

이따금씩.

내 입술 위에서만 맴도는 이름들.

가볍게 다가가기 힘들어진 이름들.

서로 멀리 있을 때라도

서로를 아직도 이어주고 있는 그 이름들을.


밤의 흰 풀 위에서

익사한 나무 아래서도

숨을 쉬는 사람들을 기억한다.


무게만큼만 새벽에 균형 잡힌 신경을

내 머리털 위에서

맑은 공기의 화관으로 장식한 분화구를 통해 흘러내리는

모든 것들을 그대로 바라본다.


이제는 상냥함과 신뢰를 애써 주며 살지 않아도 되었다.

내 눈의 벌판 속에

사방에서 부는 바람처럼

혹은 나비처럼 날개를 여는 사람들을 외면한 지도 오래되었다.


타인에게 헌신하며 살았던 만큼

나 자신에게 헌신하기로 한 삶의 중간에서

나를 더 잘 알기 위해 애쓰고 있을 뿐이다.

잠들어 있는 두 눈은

내 인간적인 빛들에

세상의 밤보다 더 찬란한 운명을 지금도 만들어 주고 있다.


무한한 고독을 보여 준 사람들 또한

그들의 생각과 같지 않게 되었고

내가 여행하는 이 시간 동안

내 두 눈은

길의 몸짓에 세상을 초월한 의미를 알려주지는 않지만,

어떻게 버텨야 하는지 침묵으로 알려주기에

그것에 기대어 하루를 보내고 있을 뿐이다.


몸에 쌓인 먼지를 휩쓸어 가려고

육체를 헐벗게 하려고

마음을 황폐하게 하려고

그 마음에 날아다니는 새도 떨어뜨리고

파도를 흩어지게 하려고

그렇게 균형을 잡으려 애썼던 모든 것에서

손을 놓게 하려고

무게 없는 세계를 경험하게 하려고

그렇게 시간은 말없이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아침의 가벼운 우윳빛 속에서

그 숲 속 공터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순간을

기다리며 사는 것이

모래가 빛을 마시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곳이 있다면

잊혔던 혹은 잃었던 모든 사람들을 그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층계의 층계를 더한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세계가 존재한다면,

나는 커다란 칼을 차고

구불거리며 하늘을 나는 양탄자를 타고

펼쳐지는 끝없는 나무를 지나

미동도 없는 그곳에

모든 계단이 가려져 있던 그곳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창백하고

차가운 어깨를 당당하게 펴고

장식적인 미소는 존재하지 않는

상처 없는 과일의 빛깔로 물드는

발이 닿는 날까지는

육체 없는 열정을

끝없이 태어나게 해야 하는

하루 그리고 또 하루를 반복해야만 한다.


어느 순간

시각의 죽음을 애도하는

녹슨 별이 태어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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