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ant : 거인

오래된 고독의 몸

by 구시안

내가 밟고 있는 이 대지가 어쩌면 내가 모르는 거인들의 발자국으로 만들어진 거라면.

수많은 거인들이 먼저 모든 것을 불가사의 한 모든 것들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면.

그 발자국들이 나라가 되고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터전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밤은 언제나

뼈를 부러뜨리며 커지는 것처럼.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깨어난 적이 있다.


그의 숨은

도시의 굴뚝들 사이를 자니

검은 구름을 불러 모았다.


거인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대륙처럼 느리게 움직였다.


그가 한 번 발을 옮길 때마다

거리의 가로등들이

깨진 병의 유리처럼 떨렸다.


나는 그의 심장 속에서

오래된 기차의 소리를 들었다.

아직 출발하지 않은

수천 개의 밤들이

거기서 증기처럼 끓고 있었다.


거인의 등에는

지도에 없는 숲이 자라고 있었다.

그 숲에서는

어린 새벽들이 길을 잃고

낡은 별들을 쪼아 먹고 있었다.


거인의 눈동자 속에서

천천히 바다가 하나 열렸다.

그 바다는

죽은 항구들의 기억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침몰한 시간들이

조용히 물속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거인은 하나의 몸이 아니라

버려진 모든 시간의 무덤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잊힌 도시들.

부서진 약속들.

사라진 이름들.


그 모든 것들이

서서히 쌓여

하나의 거대한 어둠을 만들고 있었다.


거인은 그 어둠으로 서 있었다.

그의 그림자는

대륙보다 길었고

그의 침묵은

수천 권의 책 보다 두꺼웠다.


나는 그의 어깨 위에 서

작은 인간의 키로 서 있었다.


각자의 가슴속에

보이지 않는 폐허 하나씩을 키우며

밤마다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것을.


어떤 날에는

도시 전체가

한 사람의 슬픔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날에는

한 사람의 침묵이

대륙 하나를 덮기도 한다.


그날 이후로


나는 밤이 깊어질 때마다

가끔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쩌면 어딘가에서

또 하나의 거인이

조용히 자라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직 아무도 모르는

어둠의 속도로.




전봇대보다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끌고

노동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나에게로 돌아가는 시간 동안.

나에게 들리는 것은 구두 밑에서 부서지는 자갈의 소리로

새벽을 조금씩 밀어 올리고 있었다.


주머니 속에는

버려진 도시들의 지도와

이미 식어버린 번개 몇 개가

구겨진 채 들어 있었다.


거인을 생각했다.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커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 버릴 만큼

너무나 커다란 거인을.


거인은 사람보다 먼저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사람의 고독이 너무 오래 쌓여

결국 몸을 얻은 것이라는 걸.


그의 눈 속에는

바다보다 깊은 피로가 있었고

산맥처럼 겹쳐진 침묵이 있었다.


가로등들이 하나둘

노란 열매처럼 흔들릴 때


거인은 도시의 지붕 위로 올라가

별들을 주머니에서 꺼내

거리 위에 흩뿌렸다.


사람들은 그것을

바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것은

거인의 오래된 기억들이

조금씩 부서져 떨어지는

순간이라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새벽이 오자

거인은 점점 작아졌다.


지붕보다 낮아지고

전봇대보다 낮아지고

마침내 사람들 사이에 섞여


평범한 얼굴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 얼굴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얼굴이었다.


지친 계산대 뒤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에서

비에 젖은 신문을 접고 있는 손 위에서.


세상에는 가끔

자신의 고독을 너무 오래 들고 있어

결국

거인이 되어 버린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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