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한 온도에서 인화되는 모든 것들

나의 밤

by 구시안

정화하다.

스쳐간 하루를 무심하게 정화하는 것이다.

내 두 눈이 바라보고 생각한 모든 것들을

인화하는 것이다.


나의 밤은 그런 시간일 뿐이다.

희박하게 고갈시켜 가는 기억의 모든 것들을.

파하고

양육하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부수는 기억을.


이 폭우는

금세 다가올 더위가 꺼뜨릴 것이다.


어둠이 내리면

보이지 않는 별들은 붉게 빛나지만

하얗게 서서 자기 몸의 하얀 별빛을 뿜어내는

어둠 속을 항해하는 모든 녹슨 별들들을 위해

길을 하나 밝히기 위해 스탠드의 작은 불빛에 자리한다.


달은 서서히 차오를 것이고

아직 살아남아

새벽이 오기 직전까지

하늘 저편에 걸려 있는 밤의 빛을 바라봐야 한다.


태양은 서쪽으로 오늘도 저물어 버렸고

동쪽의 달은 점차 빛을 푸르르게 더하며 차올라

불에 덴 듯 불그레한 얼굴로

하늘을 기어올라 앉아 있다.


달은 보름마다 임신을 하여 거짓으로 만들어내는

둥근 배를 볼 필요는 없다.

하늘은 이미 벌판으로 넘쳐 흐르고 있을 뿐이다.


구름은 배를 만들고 그 배처럼 구부러진

푸르른 바다를 인어공주 하나 없는

소란스럽지 않은 이슬이 꽃 피우려 애태우는

밤을 만들어 줄 것이다.


나의 자유로운 손이 행복을 부르는 시간.

모든 대지는 부풀어 올라

검은색을 드리운다.


나의 입술과

밤의 기운이

빛깔을 더해 목소리와

나의 기억에 왕관을 을 씌워놓고

이야기를 뱉어보라며 독촉하는 시간이

무색하게도

소망하는 것이 금지된 것을 잊지는 않은 듯

하얀 책상에 스탠드의 불을 밝히고 앉아

자주 치지 않는 피아노의 건반처럼

꾹꾹 눌러가며 써 내려가는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향기롭기를 바랄 뿐이다.


매일 밤을 신음하는 과거 안에서

타오르는 태양이 내가 정해놓은 문턱을

넘어가지 않고 그렇게 은은하게 비추어지길

사람들의 낙원과 폭풍우를 이미 알고 있더라도

그것을 비밀로 지켜주길 바랄 뿐이다.


꿈을 위해 간직하도록.

늙지 않는다는 자비심이 없어도

무덤은 되지 않도록.

내가 바라보는 밤의 창공이

지금 이대로라는 걸 느끼게 해 주도록.

내가 만드는 언어를 가지고

열정적으로

소멸하도록 나누도록.

나는 그런 밤을 오늘 보내고 싶을 뿐이다.


습관이 구멍을 내고

지체된 시간을 메워 줄 수 없어도

그저 섬세한 생각을 하도록.

이 글이 함께 이야기 나눌 이야기가 되도록.


눈망울 속에 간직한

내 반대편의 형제들에게

솔직한 마음을 전하며

무력한 기름이 묻은 수건을 건네지 않게 하기 위해

나는 여전히 인간의 모습을 갖고 있을 뿐이다.


시각이 무용해지는 꿈을 꾸길

베일도 없고

비밀도 없지만

내밀한 이유를 알고 있는

나 자신에게 온갖 힘을 주기 위해

애쓰는 밤을 보내도록.


수많은 이미지는

흑백의 사진으로 남아

그렇게 빛바래져 가도록

시간 속에 산화되게 두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나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시간.


내게 말하는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된다고.

손잡고

안아 줄 사람이 없어도

내 존재의 확신의 두 팔이 나를 안아 줄 때

그 평범한 밤이 아닌 기묘한 밤이 되더라도

좋다고.


가슴을 열어

과거에 사는 추한 아이를 보는 것이 아닌

지금의 내 심장을 더 볼 수 없을 만큼 보고 싶어서

내 손은 덜 수줍은 척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 안에 있는 두려움도

나 스스로가 태운 모든 것들의 재들도

모든 것을 나누는 일이

무엇이 되든 표현이 된다면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고 느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내 무거운 입에 노하지 않게

오늘 밤도 나는 눈 속에서

불을 피운다.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나만의 적정한 온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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