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주의
살아가며 가장 짧은 밤이라고 느낀 밤들이 있다.
벌거벗은 지워진 잠든 밤이 아닌
선택된 것들이 만들어 놓은 구조 위에
고독한 활기정도가 날아다니는 밤들이 그러했다.
야생의 어두운 말을 더듬는
가로등 아래 놓인 나무들이 한결같은 긴장된
숨소리를 내는
차단되고
보호되고
모순된
용서할 수 없는 것들로 놀라
묶여있는 매듭처럼 가지에 풀잎들이 서로 엉키는 밤.
검은 모욕당한 흙탕물이 된 것처럼
고독한 남자처럼 서서 자리한
시각의 구멍을 완전히 통과해 지나가는
지난 밤들이 그러했다.
상상은 물체의 욕망을 품고 있다.
무한한 지점까지 하나의 점을 만들며 이어지는 것이다.
욕망은 예행을 반복하고
마지막 공연을 위해 준비한다.
변주도 필요 없고
무언가를 지켜나가며 그것에 포로가 되고
변장을 하며
늘 어두운 천 아래 가려져 있다.
일관성 없는 시간의 늙은 게으름뱅이처럼.
거만함이 웃게 하는
사막의 먼지로
시멘트로 만들어진 상자 안에서
모든 것을 배부르게 하는 술처럼
검은 꽃 하나가 활짝 피어 있다.
나는 오늘도 확신하지 않는다.
확신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이 나에게 확실하다.
아침의 빛이 창문 틈으로 들어와 책상 위에 얇은 금빛 막을 펼쳤을 때, 나는 그것이 정말로 빛인지 의심했다. 그것은 어쩌면 눈의 피로가 만든 환각일지도 모른다. 혹은 세계라는 거대한 연극의 조명 장치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그 무대 위에서 역할을 맡은 배우들일 뿐이며, 진실이라는 것은 무대 뒤에서 절대로 관객에게 보여주지 않는 장치인지도 모른다.
나는 회의주의자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지, 아니면 생각이 나를 지나가는지 구별하지 못한다. 생각은 바람처럼 스쳐 간다. 어떤 것은 차갑고, 어떤 것은 먼 곳의 바다 냄새를 품고 있다. 그러나 그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정말로 존재하는지, 아니면 단지 내가 존재한다고 믿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신념을 가지고 산다.
그들은 세계를 단단한 돌처럼 믿는다. 하지만 내가 보는 세계는 모래로 된 성 같다.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모양이 변한다. 조금만 질문을 던져도 의미가 무너진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그리고 묻는 동안 나는 살아 있는 것처럼 느낀다.
어쩌면 회의주의는 불신이 아니라 감각의 과잉일지도 모른다.
너무 많은 가능성을 보는 눈, 너무 많은 설명을 듣는 귀, 너무 많은 세계를 동시에 상상하는 정신. 한 사람에게 하나의 세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그는 모든 세계를 의심한다.
밤이 되면 도시의 창문들이 하나씩 켜진다. 수많은 작은 사각형의 빛들. 그 안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확신 속에 앉아 있다. 어떤 이는 사랑을 믿고, 어떤 이는 신을 믿고, 어떤 이는 돈을 믿는다. 나는 그 창문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저 많은 확신들 중 어느 것도 나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그들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확신은 때때로 무거운 갑옷과 같다. 그것을 입으면 세상은 단순해지지만, 숨 쉬는 것이 어려워진다. 회의는 오히려 가벼운 옷이다. 차갑지만 자유롭다.
나는 오늘도 의심한다.
이 문장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내가 그것을 쓰고 있는지,
혹은 누군가가 나를 통해 쓰고 있는지.
그러나 이런 생각 속에서
나는 이상한 평화를 느낀다.
확실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편안하게 한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다면, 모든 것은 아직 가능하기 때문이다. 평소 햇빛 가득하고 밝아만 보이는 도시에 이른 아침부터 안개가 드리우는 날이 있다. 줄지어 늘어선 집들과 버려진 공간에 새롭게 올라가는 아직 형체를 알 수 없는 건물들이 올라가고 있고, 저마다 높이가 다른 대지와 사람들 위를 햇빛에 서서히 금빛으로 물드는 얇은 망토로 감싸는 하루를 시작하고 있을 뿐이다.
정오를 향해 가면서 부드러운 안개는 베일의 그림 같은 입김과 함께 형체 없이 사라진다. 그리고 시간이 점차 흘러가며 하늘에는 가느다랗고 희미한 푸른색만이 한 개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소리에도 가벼운 변화가 일었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에 길에 깔린 돌과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표정한 모습에도 스며들었다.
미친 사람 혹은 비정상인 사람이 인생의 여러 경우에서 평범한 사람을 앞지른다는 이야기에도 별 감흥이 없는 도시의 삶이라는 것은 점점 편집증 환자가 되어가는 지름길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광기. 그저 광기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현상들을 경험한다. 영혼의 눈이 먼 채로 사막 한가운데 쓸모없이 고립되어 승리를 거두는 것보다는, 꽃의 아름다움을 아는 패배자가 되는 것이 이곳에선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를 생각한다.
헛된 꿈 대문에 얼마나 내적인 삶에 싫증을 내고 신비주의와 명상에 생리적인 구토감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꿈에 빠져 사는 사람들. 집을 나와 서둘러 회사로 뛰어가는 아침. 그렇게 꿈에 빠져 사는 안전한 항에 도착하지만, 이미 배는 떠나버린 상태인 것처럼 다시 배를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밤이 물들고 있다.
진실보다
현실을 선호한다.
지금의 삶이
이 모든 것을 창조해 낸 신보다 좋다면
내 정신세계도 문제가 있는 것일까.
나는 꿈꾸는 사람이라 꿈을 꾸지만,
꿈을 개인의 공연장 이상으로
간주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전원의 동트는 모습보다
여전히 검게 물들어 오기 시작하는
밤의 항해를 좋아하게 되었지만,
어둑한 빛이었다가
물기를 머금은 빛이 되고
나중에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태양이
단지 지금의 현실을 비춰주는 것뿐이다.
셀 수 없이 많은 유리창과 여러 색깔의 건물들. 서로 다른 모양새의 지붕 위로 태양이 사물을 비추는 시간이 올 때까지. 그 빛을 몇 배로 늘려가며 다른 수많은 현실과 뚜렷이 구별되는 빛나는 밤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더 많은 것이
새로이 탄생하고
기대감을 자아내는 밤.
다른 모든 희망과 마찬가지로
현실이 아니라는
약간은 쓰라린 아련함을 포함한 밤.
어떤 것도 약속하지 않는 밤을.
생각하는 것이
사는 것보다
더 낫다고 여길 수밖에 없는 밤을.
그런 어떤 밤에는
나의 심장은 마치
내 몸의 일부가 아닌 듯
나를 아프게 한다.
그리고
나의 뇌는 천천히 내가 느끼는
모든 것을 잠재울 것이다.
투명한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이 특색 없고, 부적절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선명한 의식을 갖게 되는 것처럼. 모든 행동의 예고된 피곤함이고, 모든 꿈들의 예고된 환멸처럼 느껴지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것은 어디서 올까를 생각하게 되는 무감각한 궤도 안에 자리하여 여러 방향으로 불을 켜려다가 버려진 성냥개비처럼. 안이 텅빈 공처럼. 둥글게 오그라진 종잇장들처럼. 심연에서 졸던 어린애를 깨워가며 내가 사는 소박한 집에 침묵이라는 것이 안개로 가득 차고, 무심한 부드러움 안에서 모든 생각들은 서서히 지워지거나 조용히 잠에 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