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라는 시간 위에서
살아가는 날이
그 하루가 마지막 축제이길 바란다.
태양이 부서지는 광장에서
나는 아직 타오르는 심장 하나 들고
거리의 불꽃 속을 걸어간다.
내일은 없다.
내일은 언제나
겁쟁이들이 숨겨둔 날짜다.
오늘,
이 피와 같은 오후와
이 미친바람과
이 몸을 찢어내는 음악 속에서
나는 모든 것을 낭비하겠다.
사랑도
분노도
한 번도 말하지 못했던
짐승 같은 기쁨도
전부 오늘 밤에 던져 넣겠다.
별들이 깨지도록 웃고
도시의 지붕 위에서
심장이 터질 때까지 살아보겠다.
왜냐하면
인간은
내일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단 한 번의
눈부신 축제를 위해
지옥 같은 시간을 지나온 것이니까.
그래서 나는 말한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나는 더 크게 웃고
더 깊이 사랑하고
더 맹렬하게 살아갈 것이다.
세상이 끝나는 날에도
누군가는
불꽃을 던지며 춤출 것이다.
그 사람이
바로 나이기를.
꿈에서 보는 모습은 현실에서
보는 것과 똑같은 윤곽을
똑같은 모양새를 가졌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꿈에 나오는 모습은 현실과 다르다.
꿈과 현실은 평행선 위에 놓여 있다. 마치 피아노의 건반처럼 그것은 흑과 백의 조화로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지만 그 건반을 치기 시작하면 어떤 음악이 나올지는 현실에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의 삶은 모두 저마다의 현실성을 갖지만 서로 다르다.
마치 가까운 사물과 멀리 있는 사물처럼 느껴진다.
꿈속의 모습이 내가 그리는 그림과 더 가깝지만
현실은 그것을 닮아가기 위해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담배를 피우다가 문득 Acoustic Café의 앨범에 손을 댔다.
가장 좋아하지만, 가장 듣지 않게 되는 음악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음악을 가장 좋아하냐고 한 가지만 말해보라면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 앨범을 말할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음악이라면 바로 Last Carnival이라는 곡이다.
이 음악을 듣게 됐을 때는 한 참 전으로 되돌려야 하지만, 긴 이야기보다 이 음악이 주는 힘이 모든 것을 말해주기 때문에 설명이 필요 없다. 마치 한편의 인생의 짧은 연극무대를 본 느낌이라면, 마지막 축제라는 제목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 삶이라는 경계에 모든 것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감정을 담고 있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어느 하루에 따라 틀려지는 감정을 만드는 음악이기에. 가장 손을 많이 대면서도 가끔씩만 듣게 되는 음악이 되어 있다.
평상시의 의식은 심연에 빠져버렸음에도 그것을 깨닫기보다는, 모습을 드러내는 지평선에 희부연 푸른빛을 던지며 희미하게 밝아오는 아침이 포근한 입맞춤처럼 느껴지는 날이 드물지 않기에 진짜 하루를 알리는 그 빛이 나를 무언가로부터 자유롭게 해 줬다.
흘러넘치는 감수성이 간절히 바라던 휴식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은 사람이 아닐 때가 많다.
살아가며 느끼게 되는 모든 것을 자극해 오는 음악들은 이미 세상에 널려 있지만 그 안에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든지 문득 틀어놓고 수많은 생각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에서 자유로움을 느끼게 될 때 흘러나오는 음악과 함께 느껴지는 모든 것을 기록하는 일도 자기만족이 되어간지도 오래다.
내 마음이 동화처럼 누그러지고 이제 불안은 사자질 거라 확신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쓰라린 아침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그림자가 드리워진 아침일 수도
물어가 있던 그림자들이 몰고 온 비밀들이 폭로되는 아침일 수도 있기에.
지난밤이 낙서처럼 휘갈겨진
집중과 산만의 흔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내 안에서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는 짓을 하지는 않는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 애쓰지 않는다면 모든 것들은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냥 두는 것이다. 아무 데도 도망치지 않고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감정과 선율이 만드는 음악을 마음껏 틀어놓도록 두는 것이다.
나는 항상 현제에 살고 있다.
그것은 변함없는 일이다.
어디로 갈 수가 없다.
과거로도
미래로도 갈 수 없기에
현제에 충실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자기만족이 무엇인지만을 생각하며
이기적 이게도 나 하나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인생이 고단하고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인생이란 우리가 인생에 대해 품는 생각일 뿐이다.
긍정적인 평온함이
내가 숨 쉬는 공기 속에 쓴맛보다
단맛을 원하는 사람들이지만
쓴맛과 어울려 분노를 일으키는
아파가는 영혼들을 구경하는 짓거리를 하는
일 또한 인생이기 때문에.
자신의 바다에서 산란하는 권태 때문에
괴롭기도 하지만,
그저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며
그것을 추스르며 작은 것에 기대며
소복하게 마음을 움직이며 살아가는 일뿐이다.
도시가 내는 소리는 너무 많고
온통 혼란스럽지만
질서는 유지되고 있고
모든 소리는 분명하게 들린다.
그저
나는 오늘을 마지막 축제처럼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그것이 행복하고 즐겁기만 쾌락의 축제가 아닌
얼마든지 무엇이든 찾아올 수 있는 축제이길 바란다.
행동을 혐오하며 그 혐오감을 온실 안 화초처럼
키우며 갇혀 살기보다는 그것이 현명하니까.
자신의 삶에 동의하지만
그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느끼는 사람은
이 세상 아무도 없을 테니까.
때론 포기의 미학을 즐기는 것도
축제의 한 부분일 테니까.
모든 것에 성공적인 축제를 바라지 않는다.
그것이 평범한 삶을 포기하더라도
나의 만족을 채울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과 교류를 포기한 자의 선택이라도
그 선택은 존중받아야 할 테니까.
그렇게
마지막 축제처럼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