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끝났고 나는 남았다
나는 현실보다 꿈속에서 천재였다.
예술에 저마다 주어진 역할이 있다면
적어도
내 인생에는
예술가로서 담당할 몫이 있었을 것이다.
마치
늘 일등으로 달리다가
결승선 바로 앞에서 넘어져 버린
달리기 선수처럼
이 모든 일들이 다 꿈만은 아니었던
의자에서 몸을 일으킬 때마다
같은 자리에서 두 번 넘어선다.
모노드라마가 생긴 것이
이런 감정 때문일까.
그 볼륨이 높아지거나
마음대로 낮아지는 모든 것에
쓰인 대본이
이제는 예상이라도 되는
드라마처럼 느껴진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비극은
시간이 지날 수록
더 짙어지게 되어 있고
자신의 고통에 가치를 부여하는 건
자만심의 햇살로
고통에 금박을 입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전부 다 꿈은 아니고
어떤 것은 내 생각과 현실 사이의
추상적인 경계선에 남아 있다는
비극이다.
마치 고통이 선택한 자가 되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는
시달림이란
스스로 재배하여
만드는
아편과 다르지 않다.
농익은 검정으로 가득한 유리잔 안에 어둠이 짙게 다져 있다. 꿈꾸는 것이 소리 없이 나를 감아 오른다. 이제는 계절이 바뀌었다는 듯이 티를 내며 꽃핀 노란색의 개나리도 검게 칠해진 밤. 시간의 만개 속에 서 있는 것도 이제는 익숙해진 나이처럼 봄을 느끼기보다는 머릿속은 이미 하얀 눈송이를 나르고 있다. 밤이 나를 쓰는 방식은 늘 이런 식이다.
작은 얼음 알갱이가 투명한 컵 안에 두둥실 떠 있고, 방안에 자리한 새는 여름을 이미 통과하고 있다. 시간의 기다란 탁자 곁에서 시계공이 만들어 놓은 길고 짧은 화살표가 취한다. 시간을 다 마셔 비워버릴 모양으로 그리고 밤에 눈먼 자들의 눈까지도, 현존하는 그늘에 앉아 있는 심장들에게 검은 이불을 덮어주며 공허를 충만함처럼 입가로 이끌어 넘쳐나지 않게 하고 있다.
밤에 머릿속의 저울추가 늘 그대로 남아 있는 것들과 없어져 찾게 되는 기억을 저울질하고, 혼자 내뱉는 독백 속에 달빛이 부딪힌다. 멀리 떨어진, 꿈으로 검게 물든 때늦은 것들이 돌아다니는 시간.
가라앉는 것과 떠오른 것은
마음속 깊이 묻어둔 것에 늘 유효하다.
하루를 살아가며
우리가 주고받던
눈길처럼 눈이 멀어가는 시간.
밤은 심장이 될 것이다.
내 심장은 모든 곳에서 뛰고 있다.
입도 마시지 못하고
어떤 형상도 그늘을 이루지 못하는 밤.
물처럼
달빛이 거품을 내며 흐르는 곳에 앉아
그 달빛 사이로 부유한다.
이 밤에 할 수 있는 고안한 놀이가 된
잊히고 싶어 하는 것들을 적어보며
고요한 창문 속에서
고요한 문이 흔들린다.
밤의 꽃들은
희지도 붉지도 않다.
본 적이 있어도
밤이 피우는
다른 색깔을 입힌
이 줄기의 밤에
밤의 입김은
나의 관자놀이를 어루만지며
나를 꾀어내고 있다.
말속에서
나를 찾아내고
희망 속에서
생각 속에서
어둠은 내 시간에게서
도시가 뿌려놓은 모래를 가라앉히고
그 소리를 엿듣고
그것을 내 앞에 놓아둔다.
빛이기도 했고
꽃이기도 했고
어느 시절의 추억을 새긴
한 권의 일기장처럼
모든 이야기를
나에게 부어준다.
밤이 나를 쓰는 방식은
시간속에 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