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한 상상
나무별이 빛나는 시간,
무의미한 상상으로
시(詩)를 하나 적어보았다.
시는 때로는 시시하기도 하여 시일 수도 있다.
나무별이 빛나는 시간 - 구시안
나무의 혈관 속으로
어둠이 천천히 스며들 때,
나는 잎맥 사이에 숨은 별들을 본다
달은 만신창이가 되도록
얻어맞았다
밤은 그 피를 받아 마시며
점점 더 투명해졌다
녹슨 반지를 낀 손들이
가시를 닮은 꽃을 피운다
그렇게 피어나는 시간에
나는 너를 생각한다
나무들이 빛나는 시간에
너는 잎맥 사이에 숨어
말하지 않는 별이 된다
너의 밤의 갑옷은 허술하여
쇠고리 사이로
너의 미소 짓는 빛나는 눈동자로
너임을 알 수 있다.
나는 너를 부르지 않는다
이름은 빛을 무겁게 하니까
너는 뿌리처럼 깊어지고
나는 그 위에 놓인 밤이 된다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 숲에서
우리는 서로를 더 잘 안다
너의 침묵은
내 안에서 가장 환한 곳이다
손을 뻗으면
너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가까워진다
나는 눈을 감고
너를 본다
너는 빛이 아니라
빛을 가능하게 하는 어둠
그리고 나는
그 어둠 속에서만
너를 잃지 않는다
나무들이 별처럼 서 있는 시간에
나는 너를 생각한다
너는 나의 바깥에 있지만
언제나 나의 안쪽에서 숨 쉰다
우리는 말하지 않는다
말은 우리를 나누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그림자가 되어
같은 빛을 지나간다
나무별이 빛나는 시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왜냐하면
너는 잊혀질 수 없는 방식으로
나를 떠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피곤을 느끼고 불안에 싸이는 데, 불안은 피곤이 거기 있다는 사실 외에는 거기 있어야 할 아무 이유도 없는 피곤의 쌍둥이처럼 마주보고 앉아 무의미한 상상에 빠진다. 내가 취해야 할 동작들이 은밀히 두렵고, 말해야 할 단어들에 자신이 없어 소심해진다는 현상이 싫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부터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 편해졌을 뿐이다. 나의 냉소적인 실험실인 밤에 소박한 방 한쪽에 앉아 노트에 적어보며 끄적이기 시작한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아온다. 허락된 밤이 끝나가고 있다.
행복과 불행에 기묘하게 반응하면서도,
존재 자체가 끔찍한 것들을 떠올릴 때면
권태조차 하나의 놀이가 된다.
이런 나를 ‘이방인’이라 부른다면,
나는 이미 그일지도 모른다.
타인 역시 정신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부인하진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타인과 사랑에 빠진다거나 갈등을 겪을 때를 알아버렸기에 시작 전에 이미 멍이 시퍼렇게 드는 것처럼 느껴지는 현상은 이미 나의 육체와 정신이 습득한 듯하다. 관계라는 것을 막연하게 인정하면서도 무의식적인 기억 속에 나는 어떤 인상으로 남겨졌는지, 내 몸짓과 말과 눈의 모양은 어땠는지 보지 못한 나 자신의 그때의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하지만 부질없는 일이다.
눈에 보이는 나의 인생은
다른 이들의 해석의 망막에
어떻게 새겨질지가 궁금하다.
나는 나를 밖에서 본 적이 없으니까.
나 자신에 유체이탈을
자유롭게 하여 볼 수 없으니까.
그것을 한다 해도
나 스스로가 쳐다보는
남은 몸뚱이는 껍데기에 불과할 것이다.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 타인의 영혼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일까. 다르게 바라보고 생각하는 방식이 필요할 것이겠지만, 모두가 스크린에 나오는 영화배우가 될 수 없듯이 높은 목소리로 모든 것을 녹음한다 해도 여전히 밖에서 보이는 내 모습과 타인의 모습은 알 수 없을 것이다.
나만의 공간도
이렇게 높게 성벽이 쌓였는데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가진 것은
비단 나만은 아닐 테니까.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지를
잘 모르겠다.
자신의 의식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상태로
삶에 참여하는 중인 것인지도 모르고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더 자신 속에
깊이 빠져서 오로지
자기 자신일 수박에 없는
미개함을 한탄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완전히
그렇게
항복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나 역시
타인도 역시
꿀벌처럼
개미처럼
복잡한 감각을 가진 상태로
열심히들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인간사회보다
잘 조직된 사회를 형성하는
기적을 매일 보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이렇게 복잡할 수 있을까.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의 의사소통이 아쉽기만 한 날은
이미 많았다.
불규칙한 해안과 높고 낮은 산과
호수가 있는 거대한 곳에 살아가면서
관계라는 인간이 하는 이 몹쓸 짓이
거대한 복합체처럼 느껴질 때마다
환상적이거나
풍자적인 책을 읽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정밀하게 그려놓은
장난으로 만든 지로를 너무 진실로 받아들였기에
벌어지는 방황들이 여전한 것을 보면
모든 것이 장난처럼 느껴진다.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복잡할 법일 테지만,
생각은 사물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가끔 잊어버릴 법도 하지만,
생각하는 상상하는 사람은 포기를 정당화하기 위해
거창한 해석 과정을 동원하려 드는 것을 보면
얼마나 미련한 존재인지를 느끼게 될 뿐이다.
시간에 묻은 흙을 털어내는 순간,
그 어느 순간 내뱉었던
거짓들의 뿌리를 발견하고 나면,
나는 무의미한 상상을 한다.
결국은 아무 상관도 없기 때문에,
어찌 되었든 모든 것이 복잡하다.
여전히 나 자신이 복잡한 인간이다.
큰길에서 길을 잃고 빗나간
모든 생각들이
모든 것에서 추방되어 멀어질 때까지
맞물리지 않는 생각들을
결론 없이 매듭짓고 마는 이 밤에
별들을 보며 작곡했을지도 모르는
이미 별이 된 누군가의 곡을 쳐보며
운명이라는 위대한 이유로 태어나었지만,
버림받은 고아처럼
인간은 늘 그런 생각과
상상을 만들지만
떠오르는 삶의 역설을 마주하며 보니
웃음만 나온다.
가장 정확하고
가장 아름다운
검은색과 흰색의 조화를 누르며
무의미한 상상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