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것들을 알고도 머무는 감정
오래된 침묵을 어렴풋하게 깨닫는 나의 감정 속에는 미리 예고된 슬픔 한 조각이, 여행을 떠나기 위해 옷을 차려입은 상처 하나가 담겨 있다. 모두 지나갈 테고, 모두 사라질 것들이다. 무(無)를 덮는 어둠만 남을 것이다. 가벼운 나뭇잎처럼 땅에 덜 메인 것들은 회오리바람에 높이 날아올랐다가 무거운 것들 보다 더 먼 곳에 떨어진다. 먼지와 다름없어 거의 보이지 않고, 가까이에서 볼 때만 구별할 수 있는 것들이, 가는 나무줄기사이로 부는 바람에 끌려다니다가 여기저기 버려진다. 우주는 별과 영혼의 쓰레기로 가득 차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였던 모든 것. 존재하는 것. 그렇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들이 나뉘어 웃음기 없는 빛을 이 대기와 나의 영혼에 데려온다.
모든 행동의 예고된 피곤함이고
모든 꿈들의 예고된 환멸처럼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지 않기로 한지
오랜 시간이 지나왔다.
무감각한 궤도 안에
달이 아닌
무(無)의 주위를 도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한 이유를
태양이 마지막 햇살이
금빛으로 물드는
깨끗하게만 보이는
세상의 부스럭거리는 도시들마다
생각했던 모든 것과
내가 꿈꿨던 모든 것을 비출 것이다.
하루의 빛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부질없는 슬픔으로 끝나는지
아니면
그림자 속의 환영들일 뿐이고
세상은
불확실함이 별들을 향해
천천히 열릴 때 불어오는
비를 머금고 있는 이런
바람을 느낄 때마다
마음 안에는 해초만 무성해진다.
바람에 밀려가길 기다리며
천천히 머물러 있을 뿐이다.
반쯤 검은색을 띠기 시작한
하늘을 감지하면서
어쩌면 만들어진 허구의 공간을
이 도시의 그림자보다 더 어둡게
물들일 때
더러운 흰색이 섞인
모든 것이 검은색이 되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구체적이고
추상적인 것의 중간의 세계에 있다.
나의 감정은 불안하고
생각은 참으로 불쾌하며
욕망은 참으로 부질없다는 사실을
항상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저 구름이 실제로 얼마나 큰지를
가늠할 수 없는 상태처럼
희한한 놀이에 쓰이는
이상한 형태의 공을 마음에서 튕기고 있다.
흘러내린다, 하루가 열병을 앓은 몸처럼 식지 못한 채, 진땀 어린 빗방울 속으로 스며든다. 사람들은 그 속에 얼굴을 감춘다 아니, 어쩌면 마음을 젖은 거리 위에 흩어 놓고도 아무 일 없다는 듯 걸어간다. 우리가 진실이라 부르던 것들은 밤의 끝에 남겨진 꿈의 잔해 희미한 흔적 위에 기대 선 채 확신이라는 이름을 흉내 낸다.
이해되지 않는 것들은 몽유병자처럼, 의식의 가장자리에서 서성이다, 이따금 현실의 문을 두드린다.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옳음이라는 것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혹은, 진실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하기는 하는지.
아름다움조차
한때의 빛, 한철의 숨결
시간이 스쳐 지나간 자리마다
다른 얼굴로 부서져 왔으니
그러니 우리는
어쩌면
끝내 해석되지 못할 문장 속에서
서로를 읽으려 애쓰는
한 편의 미완성 시일 뿐이다.
내 것이라고 여겼는데 알고 봤더니
너무나 이질적인 것들 뿐이었고
단지,
그것을 완전하게 비추는 거울이거나
투명한 포장에 불과했던
경우도 또 얼마나 많았던가를
생각해 본다.
스스로를 기만하는
인간의 능력에 대해 생각할수록
확신은 느슨하게 풀린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마음에 퍼올린
모래알처럼 부서진다.
이런 생각들이
내 마음속에 먹구름을 드리울 때
그림자로 만들어진 안개 숲을 거닐며
세상의 가장 가장자리인
나의 공간에 앉아
구석에 남아 있는 황혼을 보며
피아노의 선율처럼
때로는 그것조차 허구처럼
결코 밝아오지 않을 새벽을 기다릴 뿐이다.
절대,
절대적인 목적을 이루지 않기 위해
어떻게 노력하는지,
또는 그 노력을 발휘하는 믿음을
갖게 되는지 알 수 있다면
나는 은둔자로서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을 경험할지도 모른다.
밤의 따스함으로
빚어낸
잘 정제된 절망의 미학도
요람의 흔들림 같은
내면의 리듬을 만드는
천천히
어쩌면 더 느리게 시간을
쪼개며
열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는
밤을 기다릴 뿐이다.
나는 이미 사라지고 있는
감정을 알고 있다.
"헛된 노력"이라는 제목의 곡입니다.
애씀 자체는 진짜지만,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 상태.
그런 것을 경험하는 하루도 존재합니다.
결과가 아니라 허무만 남는 노력.
그러면 어떤가요.
잠시 이렇게 앉아
들을 수 있는 음악에 몸을
기대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이미 실패가 예정된 시도에도
서사는 존재하니까요.
이야기는 존재하니까요.
흐르는 시간 속에
모든 노력이 헛되지 만은 않기를 바라며
오늘 듣고 있던 음악을 남겨봅니다.
일상 속에 쪼개어 쓰는 글이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