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새워도 좋은 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끝내 글을 쓰는 이유

by 구시안

부(富)를 부러워하지 않고, 부를 정신적으로만 사랑한다면, 그렇게도 원하는 부유함이 자유를 맞이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달빛은 속이 텅 빈 은으로 지은 낮과 같아 보이고, 내 방 침대에 누우면 보이는 건너편 건물 지붕은 검은빛이 돋는 흰 액체들이 쏟아지고 있다. 백 년 정도 떨어져 살았던 어느 남자가 쓴 글이 담긴 책을 읽다가, 피로해진 눈을 비비니, 비가 내리는 하늘에도 단단해 보이는 달빛 안에 슬픈 평화가 흐르고 있다. 한 사람의 감정이 모든 단어들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롭다. 이렇게 쓸 수 있다면 자유로워질 것인가를 생각한다. 그의 필력을 부러워하진 않기로 한다.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니까. 진실이 써 내려간 모든 것에는 한 사람이 정확히 담겨 있는 것이다. 그저, 그의 글을 읽으며 그를 존경할 뿐이다.


잠도 안 오는데 눈을 감은 채 나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머릿속을 텅 비우려 애쓴다. 가장 진실하게 달을 묘사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이 있을지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지금에 내가 아닌 전생의 내가 무엇인가를 써 내려가는 사람이었다면 아마도 흰빛 혹은 은빛쟁반정도로 표현했을까. 달의 흰색에는 여러 색이 들어 있는 것을 현제에 알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


거무스레한 하얀빛으로 발가벗은 울퉁불퉁하게 원형으로 깔려 있는 평온한 심연에는 오늘도 푸른빛이 스며있다. 검푸른색과는 다른 어두운 푸른색일 것이다. 창문과 만나는 곳에서 달빛은 이 도시와 만나 검고 노란빛으로 마치 무거운 나의 눈꺼풀 속에 보이기 시작한 자개빛 실이 떠다니는 흰 눈 속 같다.


이 비가 내리는 하얀 그림자와 노란색으로 물든 거리에 달빛은 하얀 그림자로 변한 권태라면, 그것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밤을 보내야 한다. 어두운 방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스탠드 아래서 무언가를 끝낼 때마다 경악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나의 성취는 나의 의지를 행동에 옮긴 결과가 아니고, 내 의지가 항복한 결과다.


창밖을 보며 피우는 담배 한 대에 그만둘 용기가 없어서 끝까지 가보는 것처럼.

비겁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창조적인 무능력을 잠시 잊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이런 밤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소리 없이 무너질 것 같고 이상하리만치 가까워 보이는 나무들의 고요한 흔들림에게 타인이 아닌 이 풍경 속에게 말을 건넨다.


축축해진 풀을 물들이는 내가 살지 않는 다른 집들에게 말을 건네며, 더 이상 잘 쓸 수도 없으면서 왜 글을 계속 쓰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다. 어쩌면 글을 써 내려가는 날이 길어질수록 지금보다 열등감이 우월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쓸 수 있는 것을 쓰지 않으면 무엇이 남을까.


뭔가를 이루려 하는 나는 그저 쓸모없는 열망에 찬 평민일 뿐이다. 글을 쓰는 일이 스스로를 깎아내리기도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차마 글쓰기를 그만둘 수는 없다. 이 독약들은 아주 미묘하게 꿈의 폐허 한구석에서 수확한 약초를 말아 피우는 담배처럼. 끊지 못하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잃어버리는 일이다.

상실.

스스로를

다들

잃어버리며 산다.

나는

아무런 기쁨 없이

나를 잃어버린다.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는

물웅덩이 같다.

지루함을 견디려고

일을 하는 사람이 있듯이,

나는 때로 아무 할 말이

없어서 글을 쓴다.


산문으로 꿈꾸는 방법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진지한 감정과

진실한 감동을

끌어올린

그 옹달샘 같은 것을 보았기 때문에.


때로는 살아 있다고

느끼는 공허함이

깊어진 끝에

꽉 찬 긍정에 이르는 순간도 있지만,

그 흔한 긍정으로 불리는 인물들처럼

행동하고 싶지는 않아 글을 쓴다.


감정의 일부만이 아닌

모든 감정을 품은 채로

그저

행동에 나서는 일이

자유로워졌을 뿐이다.

초라하게 내가 속해 있는

소수의 집단안에서 조차

마치 타인처럼 행동하며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확신을 갖고

그 속의 느슨한 가짜들을

바라보다 나는 글쓰기의 형식을

빌려 하루를 마감할 뿐이다.


성인이라고 불리는 위대한 인물이

될 수는 없지만,

그저 나 하나 정도는

잘 알다가 갈 수 있게.

결국은 느린 분석으로 감각에 대한

내가 느끼는 포괄적인 현존하는 방식으로

지루한 단어놀이를 하며

청하는 잠이든,

그림자처럼 놓인 단어들 사이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글을 쓴다.


반쪽짜리 감정이든,

그저 비슷할 뿐인 표현들이 되든,

구성과 조화를 이루든

아니면 그저 흔한 전시물이 되고 말든,

정확히 언제인지를 기억하며

서로 모순되는 대답을 하며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계속 가도 상관없는 밤을 보낸다.


세상에는 그림 속 인물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느끼면서.

무엇인가를 현실이라고 느끼기 위해서

선명하게 감지하는 것으로 충분한 밤이 있다.

우연히 발견한 신비로운

사람의 능력을 바라보며

지새워도 좋은 밤이다.




Idontwannabeyouanymore Cover (BILLIE EILISH) - YouTube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인데

살아가면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신비로운 사람들.

이 곡의 주인공이

또 다른 소년이라면

이 소년의 목소리가

경이롭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면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글과 음악이라는 사실을 지우진 않기로 합니다.

그것으로 우연히 발견한 신비로운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눈을 감고 부르는 소년의 목소리가 가진

이런 능력을 바라보며

지새워도 좋은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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