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방법보다 방향, 그리고 나를 남기는 일에 대하여

by 구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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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마음을 쓰고,

무엇에 에너지를 쏟을 것인가.





생각해 보면, 취업난이 심각하다는 말이 들리는데도 정작 “일할 사람이 없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야.” 하루에도 몇 통씩, 안부를 가장한 전화나 메시지가 온다. 결국 결론은 같았다. 사람 좀 구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누군가가 자리를 옮겼다면, 누군가는 그 자리를 채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움직인 이들은 “일할 곳이 없다"라고 말한다.



이 기묘한 반복은 꽤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 기업이나 공공기관 같은 조직에 들어가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이 과연 ‘성공’일까? 우리가 믿고 있는 성공의 공식은, 어쩌면 20세기 초, 대량생산과 의무교육의 시대에 만들어진 낡은 틀일지도 모른다. 힘든 일은 하지 않겠다는 요즘 세대의 의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강력한 것이었다.



표준화된 위계 속에서 더 높은 서열로 올라가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던 시절의 잔재. 이제는 그 공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주위를 보면, 각자의 방식으로 일하는 프리랜서들이 많아졌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카네기나 나폴레옹 힐의 자기 계발서를 들춰본다. 그들의 문장은 위로를 주지만, 동시에 우리를 또 다른 틀에 가두는지도 모른다. 이미 세상은 비표준화의 시대로 넘어왔는데도 말이다.



나는 쉬는 날이면 늘 서점에 간다. 베스트셀러 서가에 놓인 1등에서 10등까지의 책을 훑으며, 지금 사람들의 마음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가늠해 본다. 책의 제목과 표지를 보면, 시대의 생각이 읽힌다. 그러나 문득 의문이 든다. 이미 시대가 바뀌었는데, 우리는 왜 여전히 남이 남긴 길을 따라가려 하는가.



기술의 발전은 재화와 서비스를 개인화했다. 이제는 휴대폰 하나면 거의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의 마음은 여전히 복잡하다. 나는 요식업에 몸담은 지 어느덧 12년이 넘었다.



그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관찰해 왔다.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마음을 전달하고, 또 나름의 논리로 합의한다. 결국 마음의 방향은 늘 따로 흘러간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나와 결이 맞는 사람을 찾는 일을 오래 해왔다. 내 이야기에 공감하고, 같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 말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나의 작은누나만큼 깊이 통하는 도반을 살아가며 찾지 못했다.



이제 우리는 AI와 로봇이 ‘도움 주는 존재’가 된 시대에 살고 있다. 누군가는 말한다. “이제 공부할 필요도 없지. AI가 다 해줄 거야.” 그러나 나는 안다. 답을 대신해 주는 세상일수록, 사유하는 인간의 가치가 더 커진다는 것을.



이미 1인 가구가 늘고, 플랫폼의 연결성은 강화되고 있다. 인터넷 세상은 매일 새롭고, 알고리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 유튜브는 이미 개인의 취향을 가장 정확히 분석하는 스승이 되었다. 평생직장은 사라졌고, 세상은 프리랜서와 자영업자들이 주도하는 분권적 지식 경제로 전환 중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직까지 ‘채용’과 ‘영입’의 차이를 잘 모른다. 이제 기업이 원하는 건 단순히 일꾼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설계하고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다.



기업은 더 이상 가르치지 않는다.'바로 투입 가능한 사람'을 원한다. 한때 인턴십과 교육은 기업의 몫이었지만, 이제는 개인이 자신의 역량을 증명해야 하는 시대다. 자격증이 수십 개인 사람도 있지만, 그 자격증이 현실에 쓰이지 않는다면 그건 벽에 걸린 표창장일 뿐이다. 이제는 잠재력을 증명해야 하는 시대다. 회사가 원하는 능력을 이미 만들어 오라고 요구하는 현실 속에서, 그 역량은 누가 만들어주는가? 이제는 그 답을 각자가 찾아야 한다.



채용과 육성의 책임이 완전히 개인에게 넘어간 것이다. 미래는 누구에게는 먼저 오고, 누구에게는 나중에 온다. 이제는 유튜브가 스승이 되는 시대, 공부의 이유는 ‘성취’가 아니라 ‘몰입’에 있다.



억지로 목표를 세워도 작심삼일로 끝난다. 진짜 집중은 좋아서 하는 일에서 나온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걸 좋아한다. 누가 말려도 하게 되는 일들. 돌아보면, 이건 억지로 한 적이 없었다. 그저 자연스러웠고, 그래서 오래갔다. 방법이 아니라 방향이 먼저였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미래에는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의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창업이란 단어보다 ‘내 일’이라는 표현이 더 맞다. 예전엔 사람의 수명보다 회사의 수명이 길었지만,

이제는 기술의 속도가 그 질서를 뒤집었다. 어떤 직업은 10년, 길어야 20년이면 사라진다. 직장은 더 짧다.

인생은 결국, 하나의 ‘업(業)’을 이루기 위해 여러 직업과 직장을 거치는 여정이다. 따라서 평생직장은 환상일 뿐이다.



회사보다 내가 먼저 버텨야 한다. 그래서 나는 요즘, ‘시작을 잘하는 법’이 가장 큰 능력이라 생각한다. 사람은 할 수 있는 일과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안 되는 건 그냥 두고, 되는 일을 하면 된다. 나는 사람을 무서워하지만, 사람 속에서 일한다. 사람이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어 하면서도,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모순 같지만, 그것이 내 현실이고 또 내 삶이다.



개인의 궤적이 모여 국가의 궤적이 된다. 그 궤적이 건강한가, 아니면 지쳐 있는가. 우리는 이미 ‘호르몬의 노예’, ‘상황의 노예’가 되어 습관을 바꾸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근 나는 삶을 ‘집중의 단위’로 나누어 보고 있다. 일, 집, 생각, 다시 일, 집, 생각. 이렇게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실행 없는 다짐이 얼마나 공허한지 깨닫는다.



결국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사과나무 아래서 입 벌리고 사과가 떨어지길 기다리는 꼴이 될 뿐이다. 실천이 어렵다고 미리 정해둘 필요는 없다. 즐겁고, 잘 되고, 가치가 느껴지는 일. 그 세 가지가 만나는 지점이, 진짜 자기 효능감이 피어나는 자리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디에 집중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무엇에 마음을 쓰고, 무엇에 에너지를 쏟을 것인가. 방법보다 방향, 그리고 나를 남기는 일에 대하여

이제는 심각하게 집중해야 할 시대에 살고 있다. 퇴근 후, 홀로 걷는 산책길에는 '집중'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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