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과 기억, 그리고 문학으로 돌아오는 길
사라졌던 상상의 잔재가 나른한 무기력 속에서 불길한 사실처럼 가시 돋듯 나타난다. 무지(無知의 바다 위에 계획을 세우고서 가설에 뿌리를 둔 채, 다시 자라는 그것을 막지는 않는다.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들의 광채에 눈부신 하루가 지나가고 있고, 여행 가고 싶다는 생각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유혹하는 듯한 암시적인 느낌으로 나를 유혹하고 있다.
온 세상의 전경이 내 발이 닿지 않은 곳에 이미 펼쳐져 있을 것이고, 아직은 벗어날 수 없는 도시의 시간에 매여 나는 더 이상 움직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어 욕망의 밑그림을 그려본다. 앞으로 보게 될 풍경들에 미리 지쳐버린 피로가 냉혹한 바람처럼 다가 힘없이 늘어진 내 심장에 피어난 꽃을 괴롭힌다.
머릿속은 고전과 현대물이 오고 가고
다른 이들의 감정을 통해
내 감정을 새롭게 할 수 있고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러하겠지만
사람들 사이의 모순에 기반한 사고로
나 자신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책을 읽는 실제 행위는
읽고 싶다는 욕구를 없앤다.
여행에 대한 상상은
곧 창백하게 시들어 버린다.
아무도 모르는
나그네 같은 나의 일상 속에
잠들지 못한 불면증 같은
나의 꿈을 드려다 보는 일이
말없이 흘러가는
내 일상을 중단시킬 수 있는 일이
일어날 때면
항의를 가득 담은 눈길로 거울에 비친
모습을 바라본다.
세상의 밑바닥에서 오는
끈질김으로
건반을 두드리는 집요함으로
내 기억의 척추를
올리고
울리고
가끔씩 또 울린다.
마치 다른 사람들이
사는 과거의 거리처럼
느껴지는 짧은 산책시간에
밤에 들려오는 개울물 소리를 찾아 듣고
조용한 건물의 밑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는 동안에
하늘을 보니
바람에 느껴지는 것을 보니
비가 올 것이라는 걸 예감하게 된다.
마음에서 나오는 축음기를 멈추고
얇은 막 같은 피부와 지나치게 민감한
신경 속에 피아노의 음계를
연주하고 있는 나의 손가락을 멈춘다.
나의 머릿속 어느 부분이 제멋대로 작동하게 된 것처럼, 익숙한 피아노의 음계가 내 아래와 위에서 연주되고 있다. 후각은 특이한 시각이 된 것처럼, 나는 매우 여러 번 그것을 경험했는데. 바람이 보내는 신호에서 비 냄새를 맡게 되는 일이다. 나는 추억이라는 문을 통해 문학이라는 유일한 진실로 돌아왔으니, 행복해야 하지만,
비좁은 가게의 선반에서 과일 향기가 나는 것처럼 느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술을 통해 존재의 누추함에서 자유로워진다는 환상을 품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술을 향유했다고 내야 하는 세금은 없겠으나,
사용한 육신이
사용한 정신이
손상을 입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걸.
예술이 쾌락을 주는 것은 아니기에,
그걸 누렸다고 해서 대가를 치를 필요도 없고
후회할 까닭도 없다.
예술은 늘 나의 것이 아니면서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모든 것이
될 수 있다는 영역이기에.
누군가에게 건넨
미소
날이 저물 때 지는
노을
어느 날 문득 적게 되는
시(詩)처럼
소유하는 것이
상실이 되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
소유하지 않고
느끼면 진정 그것을 간직하게 되는 것.
소유하면
소유당하게 되므로
결국 자신을 잃는다는 것.
관념으로 접근할 때만
손상 없이 현실의 의미를 파악한 다는 것이
문학의 활동에 대한
보상을 주지만
혼란도 초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적응한 자와
적응하지 못한 자뿐이다.
꾸준히 지속되고
멈춰진 사람들 사이에
마치 생기 없고
활기 없는 거리로
펼쳐진 문학의 길은
국경을 넘어가는 바람에
국적을 잃은 나를 위로할 때가 있다.
환상 없이
살 수 있는 능력이
오로지
시인과
철학자만이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는 것처럼.
환상 없이 살 수 있는 능력이
그들에게만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
골목의 불어오는 선선해진 바람에서
비가 올 것임을 예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