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으로 변한 사무실

혼자 남겨진 순간, 비로소 숨 쉬는 나

by 구시안

달력에 빨간날이 의미없는 요식업의 세계에 들어온지도 오랜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이 각자의 주어진 자리로 빠져나가고 무슨 까닭인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 사무실에는 나 혼자만 남겨져 있다. 혼자라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기는 했지만, 이미 막연하게 감지하고 있었다. 내 의식의 어느 한구석에서 넉넉한 안도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양쪽에 자리한 폐가 한층 더 깊은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로 가득하고 소란스러운 곳을 지나온 듯, 마치 집이 아닌 장소에서 혼자 있게 되는 시간이 낯선 듯, 어쩌면 우연한 만남 속에 부재가 함께 불러일으키는 순간을 경험한다. 회사라는 곳은 수월하고 폭넓게 지배력을 행사하는 곳인데도, 이상하리만치 이 순간, 안도감과 평온함을 함께 누린다.


세상의 모든 소음은 늘 가까이 있다 해도, 나와 무관한 다른 세상의 속하기에 외부의 것이 되어버리고 마는 순간. 건물 전체가 초록색의 들판이 된 듯, 이 사무실이 어느 한적한 시골의 농장처럼 느껴진다.


열렬히 원하는

무언가도 없고

고정적인

급여를 받으며

사실상

아무 필요도

걱정도 없이 사는

사람처럼.


누군가의

계단을 오르는

소리 하나 없는

이 고요함을 즐긴다.


언젠가는

이 고요를 방해하려

누군가가 나타날 것만 같은

불안감 하나 없이.


스스로 나의 눈을 마주 하고 거울 앞에서 눈을 맞추고 구애를 하듯 서서 못나 보이는 나를 호감형으로 바꾸기 위해 으레 등지고 앉는 습관 없이 마주하고 있다. 허영심과 과시욕으로 물든 이곳에서 마음껏 발산할 수 있게

사람임을 잊지 않으려 소리 없이 나 자신을 토닥거려 주는 것이다. 상상하기 어려운 천박함과 비열함도 존재하는 이곳에서 한심함과 질투심과 착각이 부른 하루를 보내고 난 뒤에 펼쳐진 진흙탕이 메말라 그곳에서 자란 풀들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다.


노골적인 시기심과 천박한 난폭함

혐오스럽게 무례함을 설명해 주는 이 없이

혼자만의 유머가 있고

사람들에 대한 험담이 없는

지금 이 시간을 즐겨준다.


저급한 사회집단의 정체성을

꿰뚫어 본다.

잠시 이렇게 고요하게 앉아

잠시 이렇게 머물러 앉아

혼자만이 할 수 있는

이 시간에

머물러

성공했다는 식의 허풍을

모면한다.


말로만 떠들던 전투에서

누군가는 승리해

자축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 시간에

검은 깃발 뭉치 아래

영원히 숨어 있는

그들은 절대 알아낼 수 없는 것을

자부심을 접어 접어둔다.


망설이면서

자신을 드러내도 좋은

이 시간에 홀로 남겨진

초록으로 바뀐 들판에 머물다.





화,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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