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지속력

잠들지 못한 세계의 가장 느린 호흡

by 구시안

밤새도록, 몇 시간이고, 빗줄기 떨어지는 소리를 듣던 밤.

밤새도록, 잠 못 이뤄 뒤척였고, 빗소리는 차갑고 단조롭게

내 창문을 두드렸다.


빗줄기는 어느새 파도를 일키며 손으로 빠르게 창문을 훑었고, 가끔은 침묵의 소리가 죽어버린 바깥세상을 잠재웠다. 새날의 아침이 자꾸 미루어지고 있었고, 어둠은 쉽게 걷히지 않은 채, 시계의 마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침이 밝아오는 것이 아니라, 어둠의 지속력을 지켜봐야 할 때 느꼈던 것은 내가 꾸었던 꿈들이었다. 창문을 열어 휘돌아 오는 빗줄기를 느끼다가 바라본 거리의 먼 끄트머리로, 결코 잠이 되지 못하는 나의 얕은 졸임의 밑바닥으로 잩아드는 이웃집에 문 닫는 소리가 들렸다. 내 방 벽 위로 내가 꾸던 꿈의 조각들과 희미한 빛과 검은 줄이 떠다니고 아무것도 아닌, 낮보다 훨씬 커진 가구들이 어둠의 부조리 속에 어렴풋한 얼룩을 만드는 광경을 보다가, 어느새 하늘은 활짝 열려 빛을 내고, 모든 사물에 쌍둥이처럼 그림자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비가 다시 불규칙하게 우두둑거리며 떨어지는 세상을 가로질러 빗소리와 함께 시간이 지체되고 있음을, 낮에도 그림자 속에서 나의 불면과 함께 했던 방안의 흐릿한 물체들이 만드는 나의 적막함 안으로 들어오는 거리의 그림자들을 확인하며 일상을 보내게 될 때마다, 햇빛이라는 것이 얼마나 극도로 느릿느릿하게 퍼지는 노란색인지를 확인할 때면 그 지저분해 보이는 노란색이 싫어 흑백을 상상하는 짓을 하다 보니, 달아올랐던 것 같았던 도시의 열기는 좀처럼 온도를 찾지 못하고, 한결 식은 상태로 그렇게 머문다는 사실을 느낄 뿐이다.


일상에 지쳐 시간이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사물들 사이의 간격이 점점 넓어졌다는 사실과, 마법처럼, 빠른 화면의 전환처럼 어느새 화창하게 개어 있는 하늘 아래 펼쳐진 신비로운 세상이 펼쳐지고, 어둡게 식어만 있던 모든 것들이 어느새 초록색의 활기를 달고 앉아 펄럭거리는 광경을 보게 될 때, 내 입에는 샌드위치 한 조각과 씁쓸한 커피가 녹아들어 가고 있다.


소리와 빛과 색깔이 공간을 이용하는 방식이 바뀌고 해체되는 순간을 목격하면서, 저속한 지난밤의 꿈들은 하수구에 처박아버리고 난 뒤, 괴짜들이 모인 정신병원처럼 보이는 하얀 기운의 풍경들을 보다가, 스쳐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이미 알고 있는 부끄러움과 체면보다 더 깊은 수치심 따위는 버리고, 최대한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며 앉아 있는 짧은 시간에 주어진 모든 것을 느껴본다.


생명체와 생명이 없는 사이

끈적임과 흐느적거리는 풍경을.

뇌의 분비물에 서식하는

달팽이처럼 느리게

두 눈을 뜨고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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