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꽃이 아니라고 말하는 시간
일찍 일어나기 위해 창문을 열어뒀지만, 나는 아직 잠들지 못하고 있다. 온전히 깨어 있는 상태도 아니다. 벌써 밤은 깊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기 시작했다. 달빛은 내방의 그림자들 너머에 누군가를 지키는 기사처럼 서 있지만, 그 기사의 손에는 무기가 없다. 달빛은 속이 텅 빈 은으로 빛이 난다. 침대에서 누워보면 건물 지붕은 검은빛이 도는 흰 연기들로 가득 차 있다.
느리게 흘러가는 달밤,
바람도 천천히 불어 그림자가 흔들린다. 마치 세상의 꼭대기에 널어놓은 옷가지들처럼, 자연스럽게 고요한 조화를 이루며 만질 수 없는 형태로 펄럭인다. 가장 진실한 달을 묘사하는 말은 무엇일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비밀스러운 저 행성에는 누가 존재하고 있을지. 들을 수 없는 이에게 달에 산다는 것을 축하한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여전히 오늘 밤도 달은 기척이 없이 슬픈 평화가 흐르고 있을 뿐이다.
광기의 걸음들로 포위된 낮이 지나고
입들과
글들
그리고 의미를 모르는 표시들.
세상에 새겨진 모든 것들이
꾸며낸 것이라고 믿고 싶은
유난스럽게도 느리게 흐르는 듯한 달밤에
내 얼굴 주위에는 깊이가
푸르고 회색이다.
피아노가 노래하고
또 하루 성숙해지고
하얗고
부정확한 것들만이 넘실 댄다.
커다란 동일함 속에
내일의 경고를 위해
탈구된 뼈들을 맞춘다.
순종하지 않는 이를
끝까지 엿듣는 이를
생각의 숨 가쁨을
증거도 없이
커다란 표지 너머로
내일인 것이
나의 방 안으로 쏟아진다.
봉인된 잘 익어 있는
나의 목과 입은
여전히 닫혀 있다.
이미 오늘은 오늘을 두려워하진 않는다. 노동의 대가는 따를 것이고 또 새로운 오늘의 대가도 그렇게 지탱해 내면 되는 일이기에. 잠은 부속일 뿐이다. 꽃은 꽃이 아니다는 곡이 생각나 방안에 조용히 퍼트린다.
서로 다른 어두운 색 지붕들 위에 달은 저 아래 건물들을 거무스레한 하얀빛으로 빨간색 타일들을 가리고 색깔 없는 것으로 물들인다. 평온한 심연에는 잿빛 조약돌들이 흘러나오고 거리 끝에 있는 발가벗은 가로등이 검고 노란색을 띠고 있을 뿐이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려 달빛을 바라본다.
느리게 흘러가는 달밤.
은은한 자갯빛 실들이 떠다닌다.
도시를 물들인 저 희미한 하얀색 앞에서
눈을 감은 듯 더욱더 어두워질 것이다.
느리게 흘러가는 달밤에
쓰지 않는다면 무엇이 남을까를 생각한다.
어두운 방을 싫어하는 사람처럼
침묵을 견디기 싫어하는 사람처럼
내 주관으로 만든 의자에서 일어서고 싶지만
마치 의자를 계속 들고 다니는 것만 같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