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이 넘었는데도 어른답다고 할 수 있는 센스는 부족한 것 같다. 어떤 상황에 처해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떻게 말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최대한 말을 고르고 정제된 행동을 하지만 지금 나의 언동이 정답인가 하는 의문부호를 항상 품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건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주제로 나올 때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다른 사람들도 동일하게 갖추고 있다는 전제 하에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이혼하는 부부들도 많고, 자연히 한부모가정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어찌 됐든 대부분 사람들은 엄마+아빠+자신(+형제) 이렇게 구성된 집에서 살고 있다. 그렇다 보니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도 당연히 대화 상대 역시 자신과 동일한 가족 구성원을 갖고 있을 거라고 간주한 상태에서 질문을 건넨다.
예를 들면 이렇다. 자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오히려 부모님이랑 떨어져 지내니까 사이가 더 좋아지지 않아요?” 부모님이 일찌감치 이혼하셔서 아빠와는 연락이 끊어진 지 오래인 데다, 엄마는 돌아가셔서 양친 모두 사실상 계시지 않는 내게 저 질문은 너무나 난감했다. 웃으면서 “네”라고 대답은 했지만. 이때는 대화 상대가 그렇게 가까운 관계의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긍정하는 걸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관계의 거리가 약간 더 가깝고, 만남의 빈도가 높은 이들과의 대화에선 고민이 생긴다. 지금 회사에 입사할 때 면접 과정에서 엄마를 병으로 보내드렸다는 사실을 오픈하긴 했지만, 사무실의 모든 분들이 이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 같이 점심을 먹으며 가벼운 대화 주제가 다양하게 나오는데, 가족 이야기 특히 부모님 이야기가 나올 때면 나는 음소거 모드가 된다. 다들 웃으면서 즐겁게 얘기하고 있는데 ‘저는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같은 얘기를 할 수 없지 않나. 병과 관련된 내용도 대처 난이도가 비교적 높은 주제다. 건너 건너 지인이 암에 걸렸다거나 암으로 돌아가셨다 라는 이야기 앞에서 나는 내가 어떻게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일단 그 얘기가 불편하다 보니 도저히 ‘아, 그렇군요’ 같은 가벼운 리액션은 나오질 않는데, 그렇다고 혼자 우중충하게 있어도 안 되니 말이다. 내가 지금 이 분위기를 망치지 않고 무던하게 잘하고 있는 건지 속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어찌해야 하지?’ 싶은 주제들이 나올 때면 그저 입을 닫고 적당히 웃으며 이 화제가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게 옳은 건지 매뉴얼이 있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그냥 웃으면서 침묵하면 되는 건지, 아니면 지나가는 말로 가볍게 얘기해버리면 되는 건지. 가볍게 얘기한다면 그 가벼운 정도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근데 나는 엄마 얘기도 엄마를 떠나보낸 얘기도 쉽사리 내뱉기가 아직은 힘이 드는데 그렇다면 역시 침묵이 맞는 건지. 그러다 누군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던져서 어떻게든 대답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땐 어떻게 대답해야 맞는 건지. 어떤 식으로 무슨 말을 해야 이어지던 즐거운 대화 분위기를 망치지 않을 수 있는지. 이런 고민에 빠질 때면 역시 생각하고 만다. 나이가 30이 넘었는데도 역시 나는 어른이 되질 못한 거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