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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ch Dec 12. 2018

아트바젤 홍콩, 세계의 ‘중심’으로

아트인컬처 2018년 5월호 'Special Feature' ❶

홍콩이 국제 미술계의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2013년 아트바젤이 아시아 거점으로 홍콩에 상륙한 이래, 매년 3월이면 아트바젤 홍콩과 각 기관이 야심 차게 준비한 미술 행사를 관람하기 위해 글로벌 아트피플이 총출동한다. 올해 관객은 8만 여 명. 세계적 갤러리가 입주한 H퀸즈빌딩이 오픈하면서 열기는 더욱 뜨거웠다. 동서양 마켓이 교차하는 홍콩의 매력과 가능성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중국의 경제 성장, 면세 혜택, 젊은 컬렉터의 증가, 유명 옥션과 갤러리 등의 마켓 인프라, 글로벌 언어 사용 등을 이유로 꼽는다. 홍콩의 열기를 생생한 현장 취재로 전한다. / 한지희 기자


본문 1~2쪽 특집❶ 아트바젤 홍콩 리포트


제6회를 맞은 아트바젤 홍콩(3. 27~31). 올해는 주최 측과 참가 갤러리에게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4회 연속 부스를 꾸린 페이스의 대표 마크 글림처는 “올해 아트바젤 홍콩은 도시나 페어 둘 모두에게 변곡점과 같다. 지난 6년간 여러 변화를 겪은 후 이 페어는 새로운 차원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닷새간 홍콩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페어의 총 관객 수는 8만 명. 일반 관객을 맞이하기 전인 3월 28일 점심 무렵 입장권이 동났다. 27일 VIP프리뷰 날만 해도 세계 각지에서 컬렉터와 문화기관 관계자가 몰려들어 3만 4천㎡에 달하는 행사장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뉴욕 MoMA, 퐁피두센터, 서펜타인갤러리, 샤르자아트파운데이션 등 세계 유수의 기관 관계자를 부스 여기저기에서 만날 수 있었다. 무라카미 다카시, 안토니 곰리, 아니쉬 카푸어 역시 자신의 작품이 걸린 부스를 차례로 방문했다.

    페어장 밖에서도 열기는 뜨거웠다. 지난 1월 말 개관한 문화예술전문빌딩 H퀸즈는 단연 화제였다. 센트럴에 자리한 24층짜리 건물에는 데이빗즈워너 하우저앤워스 페이스 갤러리오라오라 펄램 화이트스톤 탕컨템포러리 SA+ 총 8개의 전시공간이 층층이 들어섰다. H퀸즈빌딩은 홍콩아트센터와 연계해 공원 조각전을 열거나 퍼포먼스를 주최하며, 단순히 갤러리에게 공간을 제공하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홍콩 예술계의 발전을 이끄는 주체임을 표방했다. 26일에는 아트바젤 홍콩 개최기간에 맞춰 홍콩 시내 갤러리 대부분이 일제히 전시를 개막하고 늦은 시간까지 관객을 맞이했는데, 폐관 1시간 전까지도 H퀸즈 입장을 위해 늘어선 줄이 건물을 둘러 옆 골목까지 이어졌다. 당일 개막식에 가장 많은 수의 관객을 동원한 전시는 데이빗즈워너에서 열린 볼프강 틸만스 개인전. 작가 프레젠테이션에 이어 질의응답까지 1시간이 넘게 소요됐지만, 작가는 기자들의 질문에 몸을 기울여가며 경청했고, 대부분의 기자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홍콩의 특징인 ‘갤러리 빌딩’의 원조 페더빌딩에도 미술계 주요 인사와 기자, 일반 관객이 줄을 지어 들어갔다. H퀸즈의 등장으로 타격을 입을 거라는 일부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오히려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두 빌딩이 시너지 효과를 내며 현대미술 애호가들이 분주히, 하지만 효율적으로 ‘미술 호사’를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아트바젤 홍콩 전야제나 다름없던 이날 저녁의 열기는 고스란히 다음날 막을 올린 아트바젤 홍콩 현장으로 옮겨갔다.


본문 3~4쪽. 왼쪽 표는 아트프라이스가2017년 경매 낙찰 총액을 기준으로 매긴 작가 랭킹 100위 중 1~50위다.


페어의 성공을 이끈 빛나는 장면들


올해 아트바젤 홍콩에는 32개국에서 모인 248개 갤러리가 참가했다. 이중 올해 처음 출전한 갤러리는 28개. 아시아 태평양 지역 미술계 발전에 힘쓴다는 행사 취지에 맞게 50%의 갤러리가 해당 지역 내 기반을 두었으며, 전 부문에 걸쳐 인도 지역의 갤러리 수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컨벤션센터 1층과 3층에 걸친 전시장은 가장 주가 되는 ‘갤러리즈’ 섹션을 비롯해 ‘인사이트’ ‘디스커버리’ ‘캐비닛’ ‘인카운터’ ‘필름’ 6개 부문으로 구성했다. 입장권 없이도 드나들 수 있는 로비 쪽에는 미디어 부스와 파트너 라운지가 마련됐다.

    세계적인 메가 갤러리가 대거 모인 1층에서는 개별 작품이나 부스 크기로 승부수를 띄워서는 큰 효과를 보기 어려웠다. 그래서일까. 갤러리마다 차별화된 전략을 구사했다. 좋은 작품 공개는 물론 그와 부합하는 이벤트로 관객의 이목을 끌었던 것. 3월 27일 오후 데이빗즈워너 부스에서는 제프 쿤스가 신작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해 슈퍼스타를 보러 몰려든 사람들로 주변 일대가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벤트가 마무리될 즈음, 틸만스가 나타나 두 슈퍼스타가 나란히 카메라 셔터 세례를 받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3층에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주요 작가를 조명하는 ‘인사이트’나 유망작가를 소개하는 ‘디스커버리’ 부문으로 진출한 갤러리가 모였다. 이 층의 부스에는 비교적 작가의 스타성보다 작품 자체가 주는 강렬함에 집중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덩치 큰 갤러리들 사이에서 개성 있는 개인전을 준비해 틈새시장을 노린 갤러리도 많았다. 오클랜드의 고우랭스포드갤러리는 뉴질랜드 대표작가 콜린 맥카혼의 대규모 회화 7점을 전시해 뉴질랜드 모더니즘 미술에 관객의 주의를 환기시켰으며, 홍콩의 갤러리뒤몽드는 우치충의 시아노콜라주 연작 7점으로 단출하지만 인상 깊은 부스를 꾸렸다. 파리의 신생 갤러리 하이아트는 1층에 꾸려진 ‘디스커버리’ 부스에 참가해 캘리포니아 출신의 설치미술가 막스 후퍼 슈나이더의 신작 4점을 선보였다. 케이블 치마를 입은 듯한 물범의 상반신 모형을 부스 전면에서 설치했고, 네온사인이 해초 사이사이 박힌 유리 상자, 세탁기로 만든 어항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국 갤러리는 11곳이 참여했다. ‘갤러리즈’ 섹션에 아라리오, 학고재, 리안, 원앤제이, PKM, 국제갤러리가, ‘인사이트’ 섹션에 313아트프로젝트(제여란), 갤러리바톤(애나 한), 갤러리EM(채지민, 이재이), 우손(이강소), 조현갤러리(이배)가 참여했다. 학고재는 윤석남 신학철 오세열 손장섭 강요배 등 민중미술 계열의 작품을 대거 선보였다. 부스 밖에서 까맣고 커다란 이미지에 이끌려 부스 안으로 들어온 관객은 노순택 사진이 포착한 상황이 2016년 겨울 한국의 전 대통령을 끌어내린 역사적 순간이라는 점에 흥미로워했다. 대구 우손갤러리는 이강소의 조각과 회화 포함 8점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갤러리 관계자는 해외에선 퍼포먼스 작가로 더 익숙한 작가의 다양한 예술세계와 미적 변천사를 훑는 기회를 마련하여 외국인 관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만족해했다.

    아트바젤 홍콩의 꽃으로 통하는 ‘인카운터’ 섹션도 선전했다는 평을 받았다. 동시대 주요 작가의 대규모 설치작품을 선보이는 전시의 기획은 작년에 이어 알렉시 글래스-캔터가 맡았다. 총 9점이 페어장 곳곳에 10×10×10m의 공간을 무대 삼아 설치되어 있었다. 이중 에르빈 부름의 <1분 조각>(2000~18), 울라 폰 부란덴부르크의 <7개의 커튼>(2017)은 관객 참여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관객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완성되는 작품인 만큼 전시 지킴이들이 사진을 찍어주며 커튼 사이를 가로지르거나 1분 조각이 되기를 적극적으로 권했다. 3층 주출입구와 마주한 오마키 신지의 <Liminal Air Space-Time>(2018)은 하늘거리며 공중을 부유하는 반투명 천이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근처에 앉아 작품을 오래도록 응시하는 관객이 많았다. 페어 기간 판매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은 윌렘 데 쿠닝의 <무제 12>. 판매를 위임받은 레비고비갤러리가 27일 개장 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거래를 성사시켰다. 호가 3천5백만 달러(약 370억 원)에 판매됐으며 닷새 후에도 이 가격을 능가하는 거래는 이뤄지지 않았다.

    공개된 자료 중 판매 합산액 최고치를 기록한 곳은 페이스갤러리. 요시토모 나라, 라킵 쇼, 로버트 라우셴버그, 송동 등의 작품 15점을 판매하며 총 3백75만여 달러(약 4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한국의 갤러리 중에는 국제갤러리가 약 1백6십만 달러(약 17억 원)에 거래된 이우환의 <바람과 함께>를 포함해 총 1백96만 달러(한화 약 21억 원)의 판매 성과를 거뒀다.


본문 5~6쪽. 아트프라이스 작가 랭킹 51~100위가 이어진다.


아트페어와 갤러리의 상생을 위해


출품작 전반을 살펴보면 규모가 크고 문제적인 주제나 소재를 다뤄 화제가 될 만한 작품보다는 대체적으로 무난하게 잘 팔리는 스테디셀러가 주를 이뤘다. 또한 ‘디스커버리’나 ‘캐비닛’처럼 신진작가 지원이 가능하도록 장치가 마련된 부문 이외에는 스타작가가 대거 포진해있었다(디스커버리는 신진작가를 위한 무대이나, 캐비닛의 경우 경력과 관계없이 출전 갤러리가 집중적으로 한 작가를 소개하는 기획이다). 특히 ‘갤러리즈’ 부문에는 ‘아트프라이스’의 생존 작가 순위 50위 안에 이름을 올린 작가들의 작품이 인기를 끌었다. 이런 경향은 페어에 출품한 한국 작가 명단에서도 발견된다. 국내외 갤러리를 막론하고 서도호 양혜규 백남준의 작품을 비롯해 단색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아트페어의 주목적이 작품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이므로 판매 가능성이 높은 블루칩 작가를 내세우는 전략은 갤러리 입장에서는 당연지사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미술 전문 기자들은 입을 모아 “세계 어느 페어에 가도 이제 제프 쿤스만 보인다. 점점 인기에 영합하는 방향으로 출품작이 구성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아트바젤 디렉터 마크 스피글러 역시 취재기자단 환영회 자리에서 “갤러리스트가 할 일은 단순히 작가를 발굴하고 그들의 작품을 파는 것만이 아니다. 잠재적 컬렉터를 찾고 미술계를 후원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나가는 것 또한 그들의 몫”이라며 갤러리의 변화를 촉구했다.

    홍콩에 전시공간이 있는 갤러리는 홍콩점에서 열린 전시와 부스 출품작의 관계를 세밀하게 조정하며 컬렉터와 관객의 기대치를 높였다. 가고시안의 제니퍼 귀디, 데이빗즈워너의 볼프강 틸만스, 리만머핀의 오스게메오스, 페이스의 요시토모 나라, 로이 홀로웰, 화이트큐브의 안토니 곰리 등 아트바젤 홍콩 시즌에 맞춰 홍콩점에서 개인전을 연 작가 대부분이 페어 부스에도 등장한 것. 누군가 해당 갤러리의 부스를 방문해 이 작가에게 관심을 가졌다면 페어 기간에 열리는 작가의 개인전에도 가보고 싶어 할 확률은 높아질 테다. 페어장을 벗어나 갤러리로 잠재적 고객을 유입시키는 좋은 유인책인 셈이다. 고객 입장에서도 정신없는 페어 장보다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된 갤러리에서 더 많은 작품을 살피고 갤러리스트와 1:1로 대면해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으니 서로에게 이로운 전략이다.

    지난해 국가별 미술시장 점유율에서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한 중국은 2018년 현재 명실상부 세계 미술시장의 중심축이 됐다. 중국의 급부상에는 단연 홍콩의 역할이 컸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트바젤 홍콩과 메가 갤러리가 있다. 2012년을 전후로 가고시안, 페로탕, 화이트큐브 등 내로라하는 국제 규모의 상업 갤러리들이 홍콩에 전시공간을 열어 물꼬를 텄고, 여기에 아트바젤 홍콩이 가세해 쐐기를 박았다. 중국이 놀라운 속도로 경제 성장을 이뤘고, 그에 따라 미술품 수집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 해도 중국 내 미술품을 구매할 수 있는 채널이 없었다면 시장이 이만큼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전후 맥락을 이해할 때, 세계적인 갤러리가 한꺼번에 H퀸즈빌딩에 새 둥지를 마련했다는 사실은 무척 고무적이다. 지난 6년간 홍콩 에디션이 지역 미술시장을 키워낸 덕분에 그 중요성을 인식한 거대 갤러리들은 홍콩에 지점을 열고, 이곳 미술계에 깊숙이 관여하게 됐다. 훌륭한 작가와 일하는 메이저 갤러리의 홍콩 상륙은 아트바젤 홍콩의 입장에서는 무척 반가운 소식이다. 거대 갤러리의 존재만으로도 아트바젤 홍콩, 나아가 아시아 시장은 충분히 낙수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지역 내외 미술애호가들의 열망을 충족시키고, 이들의 취향을 단련하는 교육적 역할도 기대해봄직 하다. 페어장 안팎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미술을 향한 애정, 수집을 향한 열정, 그리고 좋은 취향까지 갖춘 관객이 있는 곳이라면 아트마켓은 융성할 수밖에 없다고.


* 입사 이후 처음 해외 출장을 다녀와 진행한 특집이다. 현장스케치를 위한 리포트를 작성하고, 이어지는 갤러리 소개와 갤러리스트 인터뷰를 진행했다. 자세한 업무분장 내용은 해당 기사 아래 작성해뒀다.


원고 작성: 한지희

편집, 감수: 김재석

디자인: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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