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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Apr 23. 2016

다시 읽는 신인철학(9)

오래된 미래의 철학, 동학 다시 읽기

제4절 지기일원론(至氣一元論) 



1. 유물-유심론에서 실재론으로


이상에서는 다만 유심과 유물을 대조하여 말(一言)하였으나 다음에는 실재론(實在論)*을 약술하고 지기일원론의 결론을 맺고자 한다. 


이 세계에는 정신과 물질 두 가지가 있어 그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취하여 그를 각각 근본 원리로 삼고 세계 및 우주를 해석코자 하는 것이 물(物)-심(心) 양론 각기의 주관적 가치관이다. 


그러나 순수 철학상으로 고찰해 본다면 물-심 두 종(兩種)의 이론 이외에도 실재론(實在論)이라는 또 하나의 이론이 있다. 실재론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한마디(一言)로 말하면 정신과 물질의 두 현상을 제3의 원리에 의하여 통일하고자 하는 철학이다. 


물-심 양자를 결부하여 근본 원리로 삼은 것이 곧 실재론이다. 실재로부터 모든 현상이 나타나며 그 현상이 물적 현상과 정신 현상으로 갈라지기는 하나 이 두 가지 현상을 일관하는 근본 원리는 실재라는 말이다. 얼른 보면 실재라는 것은 물심 이외의 제3자로 보기 쉬우나 그것을 제3자라고 보는 것은 물심을 '실재'로 인정하는 선입관 때문에 생긴 기성관념에서 나오는 것이며, 또한 추상과 현상을 구별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다. 사실은 유일의 본체적 실재가 두 가지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실재는 물-심 두 방면을 일관하여 보는 진리이므로 실재는 심(心)이나 물(物)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두 현상을 모두 똑같이 실재의 작용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원래 이 실재론은 역사상 가장 뒤에 일어난 이론으로 유물론이 먼저 생기고 유심론은 다음에 나고 실재론이 그 후에 일어난 것이다. 역사의 순서로 보아 실재론이 최후로 생긴 것은 인간 사상의 자연적 경향이라고 볼 수 있다. 왜 그러냐 하면 실재론이 물심 양자의 양 극단을 다투는 치우친 진리를 원만 무결한 근본 원리에 귀납시키고자 하는 것은 진화상 자연의 요구일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실재론이 있게 된 자연적 경로를 보기로 하자. 


좌우간 세상에는 정신-물질이 양립하여 있다. 나는 유물론자라거니 나는 유심론자라거니 하고 덮어놓고 나는 다른 것은 모른다는 고집을 부리면 모르나, 적어도 공평한 입장에서 공평한 고찰 하에 이 양론을 생각하여 본다면 유심론에도 곤란한 점이 있고 유물론에도 곤란한 점이 있다. 그것이 이론과 실제의 방면에 사실로 나타나는 이상 거기에는 확실히 물심 양자 중 하나에만 치우쳐서는 안 될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다시 말하면 진리는 물심 양자 중 어느 한쪽에 있는 것이 아니요, 그 양쪽을 관통하는 일이관지의 본체에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느냐 하는 점이 실재론이 실재론인 이유이다. 



2. 지기일원론과 유물-유심-실재론


이제 수운주의에서 말하는 지기일원론이라는 것이 유물론이냐 유심론이냐 또는 실재론이냐 하는 것부터 말하자면 지기일원론은 확실히 실재론에 가까운 것을 알 수 있다. 


지기일원론의 출처는 수운이 각도(覺道) 후 삼칠(21)자로 된 주문을 지어 제자들에게 주었는데, 그 주문 첫머리가 ‘지기금지원위대강(至氣今至願爲大降)’이라 하였고 다시 <논학문(論學文)>이란 글을 지어 제자에게 줄 때에 ‘지기(至氣)’ 두 자를 해석하여 “지라는 것은 지극한 것을 일컬어 '지'라고 하였고(至者 極焉之而謂至), 기는 허령이 창창하여 간섭하지 않음이 없고 명령하지 않음이 없으나(氣者虛靈蒼蒼, 無事不涉無事不命), 형체가 있는 듯하나 형상하기 어렵고 들리는 듯하나 보기 어려우니(如形而難狀, 如聞而難見), 이는 또한 혼원한 일기이니라(是亦渾元之一氣也)"라는 간단한 문구로 우주의 본원적 진리를 표현한 것이다. 


‘지(至)’는 ‘극(極)’이라 하였으니 극이란 만물의 본원, 천지(天地)의 본체를 말한 것이다. 유심-유물의 현상을 더듬어 올라가 그 극(極), 즉 만물의 본원에 도달하고 보면 여기에는 물질이라고 볼 수도 없고 정신이라고 칭할 수도 없는 일원적 극(極)이 있다는 것이다. 극은 무엇으로 된 것이냐 하면 수운은 이것을 지기(至氣)라 이름 짓고 ‘허령창창(虛靈蒼蒼)’이라는 형용사를 썼다. 


이로 보면 지기는 물질도 아니요 정신도 아닌 우주의 실체로 활동력의 단원(單元=근본단위)이 되는 것이다. 이른바 ‘힘’이라 함은 자존자활적(自存自活的) 힘으로서 다른 것의 영향에 의하여 변화하지 못하는 독립자존체(獨立自存體)로서, 분할하지 못할 비물질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지기의 활동은 자기표현이며 자율적 창조이니 이것이 '한울'의 본질이 된 것이다. 이른바 ‘질적(質的) 한울’인 것이다. 


다시 나아가 지기 및 심(心)과 물(物)의 관계는 어떠한가? 지기의 본체로서 우리에게 알려지는 것은 그의 속성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 속성은 곧 본체의 본질로 된 것인데 그 속성 중에서 나타나는 두 가지 현상을 우리는 물과 심이라 이름한 것이다. 



이와 같이 지기의 본체에서 우리에게 확실히 알려지는 것은 심과 물의 두 가지 현상이며 이 두 가지 현상에서 여러 가지 잡다한 사물이 생기게 된 것인데, 수운은 이것을 가리켜 ‘무사불섭(無事不涉) 무사불명(無事不命)’이라 한 것이다. 이는 모든 사물을 자율적으로 나타나게 하였다는 의미이니, 즉 사물의 차별상은 그 자체로 본체의 표현이므로 이것을 본원차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본체의 속성이 한편으로 심(心)의 방면에서 출몰무상(出沒無常)한 여러 가지 상념을 일으키게 하며, 다른 한편으로 물(物)의 방면에서 여러 가지 형상의 물체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비유로서 말하면 본체와 차별상의 관계는 선(線)과 점(點)과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 


개개의 점이 집합한 것만으로는 선이 되지 못하고 점으로 선을 이루고자 하면 점이 따로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점과 점이 일체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선은 또한 결코 개개의 점을 떠나서는 있지 못함과 같이 만물과 본원의 관계도 또한 그러한 것이다. 


만물은 개개의 개체 상태에서는 바로 지기 본체, 즉 ‘한울’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만물은 만물 전체로 본다면 만물과 ‘한울(至氣)’ 양자가 상즉(相卽)하여 불이불반(不離不反)하게 되는 것이다. 유일무한(唯一無限)이라는 면에서 보면 모든 것은 유일무한한 원만의 본체, 즉 ‘한울’에 불과하며 유한차별(有限差別)의 방면에서 보면 하나도 상주불변(常住不變)하는 것이 없고 만물은 오직 그 본체 속을 남나드는 물결일 뿐이니 이것이 곧 현상계이다. 


*[편역자 미주1]실재론[ realism]   원어 realism은 <물질(res)>에서 유래하며, <물질의 실제, 진실된 모습(realitas, reality)>을 파악하고 있다는 입장으로관념론에 대립한다. 번역어는 실체론, 실유론을 거쳐서 거의 20세기 초에 실재론으로 정착, 중세의 보편논쟁에서 유(類)나 종(種) 등의 카테고리 즉, 보편개념을 <실재적인 것(realis)>으로 보는 실념론(개념실재론)자와, 개개의 사물의 실재성을 인정해서 보편적 개념은 <소리(vox)>, <이름(no-men)>에 지나지 않는다는 유명론(명목론)자(nominalen)가 대립하며, 최초의 실재론은 이 실념론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는 말이나 관념ㆍ상념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외계 사물의 실재성을 파악하는 입장을 가리킨다. 가장 초보적인 실재론은 소박실재론(naive realism)이며, 우리들이 지각하고 경험하는 대로 물질이 존재하는데, 물질의 실재성은 지각하고 경험하는 대로 파악된다고 본다. 소박실재론은 지각이나 경험이 거울처럼 물질의 실재성을 묘사해서 반영한다는 소박한 모사설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물질의 주관에 있어서 보는 방법, 표현방법에서 원래 그 자신의 존재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넓은 의미의 비판적 실재론(critical realism)은 우리들이 지각하고 경험한 여러 가지상에 척도를 측정ㆍ계측하고, 동종의 것과 비교ㆍ대조해서 추상하고 사상하는 등, 소박한 것의 상에 수정을 가해서 간주관적으로 물질의 실재성에 근접하고자 한다. 실재론의 목표가 물질의 실재성의 인식이라고 한다면, 실재성의 인식에는 물질 측에서의 표현방법과 이를 수용하고 아는 주관측에서의 능력, 상태, 상황, 장치와의 공동이 필요하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겨우 인식된 실재성이 진리성을 띠기에 이르렀다. 진리로서 인식된 실재성은 인간의 지식이 편입되고, 객관적인 지식으로서 간주관적으로 타당하게 전달될 수 있는 신종의 <물질>이 된다. 넓은 의미의 실재론은 감각되어 지각될 수 있는 외계 물질의 실재성만이 아니라, 인류가 획득하는 참된 지식의 실재성, 따라서 관념적ㆍ이념적인 것의 실재성도 허용하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실재론 [realism] (종교학대사전, 1998. 8. 20., 한국사전연구사)


(다음에 3. 지기의 본체와 무사불섭 무사불명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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