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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Oct 17. 2021

시천주의 의미

[개벽통문-201]

1. '시천주'란 사람(과 만물)이 모두 한울님을 모셨으므로, 이를 스스로 체득+체감+체리하고[내유신령], 세상 사람(과 만물)과 더불어 함께 현현+체현+구현하며[외유기화], 그렇게 살아가라[각지불이]는 말씀입니다. 시천주 안에 이미 사인여천과 체천행도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2. 시천주의 의미를 "'천'이 사람에게 모셔져 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이는 "사람이 '천'을 모시고 있음"으로 이해하는 것과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는 무의미한 정도일 수도 있고, 천양지차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그 말을 이해하고 실행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시천주의 이해를 '천'을 주체로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가, '사람'을 주체로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가 '시'라는 동명사를 주체로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가?"라는 물음으로 바꾸어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 또한 하나의 정답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근기와 수행의 정도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3. 오늘 느껴 안 바는, 천(진리)은 '사람(만유)'을 통해 현현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도외시하고 한울님 모심을 생각하고, 말하고, 바란다는 것은 물을 버리고 해갈을 구하는 것과 같고, 씨를 뿌리지 아니하고 싹이 나기를 바라는 것과 같으며, 김매지 아니하고 가을걷이를 하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해월신사는 이를 두고 "敬天만 있고 敬人이 없으면 이는 農事의 理致는 알되 實地로 種子를 땅에 뿌리지 않는 行爲와 같으니, 道 닦는 자 사람을 섬기되 한울과 같이 한 後에야 처음으로 바르게 道를 實行하는 者니라."라고 하셨습니다.


4. 오늘의 세상 사람들은 점점 '사람'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더 편안해하고 반려동물과 친해하며, 로봇이나 가상인물이 사람 구실을 하는 세상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반려동물이든 로봇이든 또는 가상인물이든 그들 또한 '만유'로서 한울님이라는 점만 보면, 굳이 '경인'에 구애되지 않고 '경물'로 나아가는 세태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생각건대, 경천과 경인과 경물은 그중 어느것 하나도 경시되거나 간과되어서는 안 될 요소입니다. 다만, 시대와 환경에 따라 그중에서도 간주관적으로 강조될 요소는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오늘의 세계에서 크게 문제시되는 것은 '불경물'의 사태라기보다는 '불경인'의 사태입니다. 


5. 오늘 세상 사람들은, 사람들이 물[物=자연환경]을 함부로 대하고, 인간중심주의 문명을 발달시키는 데서 오늘의 기후위기-지구위험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만 알고 둘과 셋은 모르는 말입니다. 근대문명은 인간중심주의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제국주의 국가, 그리고 국가 내에서는 일부 특권 지배계층, 그리고 인간의 측면에서 보아도 인간의 욕심이 견인해낸 자본주의 문명에 침윤된 인간의 삶의 행태가 '인간중심주의를 빙자하여' 만들어낸 괴물적이고 병적이며, 패륜적인 문명일 뿐입니다. 그 패륜적, 자멸적 근대문명이 자아낸 것이 오늘의 지구위험시대라는 점을 분명히 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인간을 위한 일(발전, 성장)"이라고 호도하면서, 오히려 인간을 도구화(생산)하고 대상화(소비)하는 문명이 근대문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되찾아야 할 것은 '오히려 (新)인간중심주의'입니다. 다만, 이 '인간중심주의'는 '한울중심주의'와 '사물중심주의'를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6. 이런 문명적인 차원이 아니라도, 오늘 우리의 일상에서 사람을 떠나서 인문학을 이야기하고, 사람을 떠나서 학문을 이야기하며, 사람을 떠나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공정이나 발전을 이야기하는 것은 모두 헛다리 짚는 데에 불과한 일입니다. 사람이 이해하고 공감하고 수용하고 향유하지 못하는 어떠한 교리나 학문과 주의주장도 모두괴설이며 요언에 불과합니다. '본질은 훌륭한데, 현재화하지 못했을 뿐'이라는 말은 사람을 도외시하고 '이론, 교리, 학설'을 우선시하는 반+몰인문(인간)적인 태도입니다. 오직, 사람에게 진리가 있고, 한울이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모심이 있고, 섬김이 있습니다. 오직 사람만이 살릴 줄 알고, 살릴 수 있고, 살릴 맘을 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곧 길이요, 진리이고, 그것이야말로 시천주의 참뜻입니다. 


7. 이렇게, 다시, 이전의 허물을 참회하고, 도를 선생께 깨달아, 수도의 길로 나아갑니다. 내일은 또 모시는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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