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강(面講)과 화두(話頭
면강(面講)이란 원래 배강(背講)과 더불어 조선시대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교육 방법인 강의(講儀)의 한 가지를 일컫는 말이다. 배강은 글의 내용을 외어서--책을 펴 놓은 채 돌아 앉아서--읽는 것을 말하고 면강은 책을 보고서 읽는 것을 말한다. 다만, 과거시험을 볼 때, 시험관 앞에서 글을 외우는 것도 면강이라고 부르므로, 보고 읽는 것과 외워 읽는 것의 차이는 크게 보지 않을 수도 있다.
수운 선생도 이 면강을 자주 시행한 것으로 보인다. 기록에 남아 있기로는 포덕 4년 수운 선생의 생신연이 있었는데, 수운 선생은 이 자리에서 “내 마음이 지극히 묘연한 사이를 생각하니, 의심컨대 태양이 흘러 비치는 그림자를 따르네”라는 시를 읊고 그 뜻을 물었다. 그러나 그 뜻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 이후의 상황은 이러하다.
선생(수운 최제우)께서 말하기를, "‘흥비가’는 전에 반포한 바가 있다. 누가 그것을 외울 수 있는가?" 하고 각기 면강(面講)하게 하여, 차례로 이것을 읽게 하였다.
강수 홀로 좌중에서 나와 선생을 면대(面對)하여 읽고 뜻을 물었다. 선생께서 각 구절마다 먼저 뜻을 물으니 강수가 묵묵히 대답을 하지 못했다.
선생께서 우스갯소리로 말하기를[戱曰] "그대는 진실로 묵방(墨房)의 사람이다."
강수가 도리어 뜻을 물어 보니, 선생께서 서쪽을 가리키고 동쪽을 가리켰다.
강수가 또 문장군(蚊將軍)의 뜻을 물어 보니, 선생께서 말하기를, "그대가 마음이 통하게 되면 알게 될 것이다." 하였다.”(윤석산, 최선생문집 도원기서, 85쪽)
여기서 수운대신사께서 ‘누가 그것(흥비가)을 외울 수 있겠는가’라고 물은 것으로 보아 배강(背講)에 해당하는 ‘암송(暗誦)’ 또는 암송으로서이 면강 역시 시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면강도 유교식 강의 방법과 유사하면서도 그와는 다른 요소들도 찾아볼 수 있다.('문장군'은 수운 선생의 한글가사 경전인 용담유사 흥비가 편에 나오는 말로, 모기를 가리킨다.)
위의 인용문 장면에서 주목할 것은 무엇보다 강의 분위기가 엄숙․경건 위주가 아니라 ‘우스갯소리’를 하실 만큼 넉넉하고 여유로왔다는 점이다.
특히 '묵묵(默默)'히 대답하지 못하는 강수 선생을 일러 '묵방(墨房; 조선 세종(世宗) 때, 책을 박아내는 데 쓰는 먹을 맡았던 임시 부서) 사람이라고 한 것은 명백히 '아재개그'이다. 수운 최재우 선생이야말로 아재 개그의 효시인 셈이다(혹자는 김삿갓의 시가 그 효시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제자의 물음에 ‘서쪽을 가리키고 동쪽을 가리켰다’는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 일찍히 부처님은 ‘염화미소(拈花微笑)’의 설법을 남겨 ‘말을 하지 않고도 마음과 마음이 통하여 깨달음을 얻는’ ‘선(禪) 수행’의 기원을 이루게 했거니와 수운 선생은 그 방식의 고금신구(古今新舊)에 구애되지 않고 진리를 전승하는 데 주력하셨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말하지 않고 가르치는 방식’ 외에도 수운 선생은 “일후(日後)에 도(道)의 일에 있어 법을 위하는 사람은 하나에 있고 둘에 있지 않으며, 셋에 있고 넷에 있지 않으며, 다섯에 있고 여섯에 있지 않다.”는 식의 ‘화두(話頭)’와 같은 말씀을 함으로써 제자들이 수행의 근거로 삼도록 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하여 살펴볼 것은 수운 선생이 동경대전과 용담유사 속의 각각의 경전을 지을 때마다 말미에, 그것을 공부하는 방법을 직접적으로 서술한 부분이다.
간략하게나마 적어내어 가르쳐 보이니 공경히 이 글을 받아 삼가 교훈의 말씀으로 삼을 지어다.(포덕문)
내 지금 도를 즐거워하여 흠모하고 가만함을 이기지 못하므로 논하여 말하고 효유하여 보이니 밝게 살피어 현기를 잃지 말지어다. (논학문)
내 지금 밝게 가르치니 어찌 미더운 말이 아니겠는가. 공경하고 정성들여 가르치는 말을 어기지 말지어다. (수덕문)
내 역시 이 글 전해 효허 없이 되게 되면 네신수 가련하고 이내 말 헛말 되면 그 역시 수치로다. 생각고 생각할까. (교훈가)
그 말 저 말 듣지 말고 거룩한 내집 부녀 이 글 보고 안심하소. 이 가사 외워 내어 춘삼월 호시절에 태평가 불러 보세. (안심가)
귀귀자자 살펴내어 정심수도 하여 두면 춘삼월 호시절에 또다시 만나볼까. (도수사)
운수 관계 하는 일은 고금에 없는 고로 졸필졸문 지어내어 모몰염치 전해주니 이 글 보고 웃지 말고 흠재훈사 하여스라. (권학가)
일일이 못 본 사람 상사지회 없을소냐. 두어 귀 언문가사 들은 듯이 외워 내어 정심수도 하온 후에 잊지 말고 생각하소. (도덕가)
이 글 보고 저 글 보고 무궁한 그 이치를 불연기연 살펴내어 부야 흥야 비해 보면 글도 역시 무궁하고 말도 역시 무궁이라. 무궁히 살펴내어 무궁히 알았으면 무궁한 이 울 속에 무궁한 내 아닌가. (흥비가)
오늘날 동학공부의 요체는 ‘마음을 통하는 법’으로 ‘주문 수련’만을 강조하거나 ‘유일한 것’으로 치부하는 우를 범하고 있지 않는지를 돌이켜보아야 한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면강’과 ‘화두’의 방법이 동학 공부의 중요한 요소로 부각된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재구하고 현대 사회의 환경과도 배치되지 않도록 가다듬는 일도 생각해 봄직하다.
(필자는 이런 측면에서, 동학/천도교 기반의 독서 프로그램을 구상하는 중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천도교의 종교의례로 정착한 '집단공부모임'인 시일식(매주 일요일 오전 11시에 전국에 있는 천도교 '교당'에 모여서 행하는 천도교의 종교의식)에서 '경전봉독'은 바로 이러한 수운 선생 당시의 '면강'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따라서 경전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은 단지 '책 읽기'가 아니라, 동학 천도교를 공부하는 중요한 방법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또한 ‘경전암송대회’(배강의 전통을 계승한 셈이다) 같은 식으로 현재 천도교단 내에서 시행되고 있는 이 부분과 관련된 교단의 ‘수행 문화’를 좀더 수행의 느낌을 살리는 용어로 바꾸고 내용과 형식 모두를 체계화하는 일도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