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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an 10. 2018

동학의 공부법(13)

팔절 풀이

6. 천도교 수련의 유형 6 : 팔절 풀이


“(1864년) 11월에 이르러 <불연기연>을 짓고 또 <팔절>의 구절을 각처에 돌려 보이고 각기 <팔절> 구절의 이치에 합당한 것을 짓게 하였다. 이 글의 뜻을 봉(封)하여 각처에 보내니, 그 시에 말하기를 <밝음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거든 ... (중략) ... 마음의 얻고 잃음을 알지 못하거든>라고 하였다.”(윤석산 역주, 『초기 동학의 역사-도원기서』, 91쪽)


“12월에 이르러 <팔절>의 구를 지어 사람들이 남북으로부터 연이어 왔다. 초열흘에 이르자 묵는 사람이 하루에 5~60명이 되었다.”(윤석산 역주, 앞의 책, 94-95쪽)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팔절>은 ‘밝음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거든, 멀리 구하지 말고 나를 닦으라’와 같이 공부의 과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완결된)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위의 기록으로 볼 때, 팔절의 ‘문(問)’에 대한 답('뜻')은 처음에는 수운 선생이 밀봉하여 보냈고, 각처의 도인들이 모두 그 답('뜻')이 공개되기 전에 ‘문(問)’에 대한 나름의 답을 적어 대신사가 계신 용담으로 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수운 선생이 문제를 제시하고 도인들로 하여금 대구(對句)을 짓게 한 것이다. 『본교역사』에는 이에 관한 또 다른 스토리가 전한다. 


“문인(門人) 김황응(金晃應)이 대신사께서 팔절 지은 것을 좇아 별도로 다시 대구를 지어[更作] 바쳤다[進]. 대신사께서 그것을 보고 가볍게 웃으며[微笑] 말씀하시기를 '우리 도 가운데 사람을 얻기가 실로 어렵다.'고 했다.”


이 구절만으로는 김황응 도인의 글이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것인지, 그동안 보아온 많은 글들이 불만족스러웠는데 비로로 만족할 만한 대구 한 편을 보았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수운 선생이 팔절의 뜻에 합당한 대구를 찾고 있었음은 분명히 알 수 있다. 또한 김황응이 ‘다시 지었다[更作]’고 한 장면에 이르러서는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팔절의 ‘문답’과는 다른 각자의 답을 지어 보게 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로써 팔절이 각 도인들의 수행과 수학(修學)의 정도를 가늠해 보는 척도 역할을 했음을 알 수있다. 


잘 알다시피 팔절은 그 자체로 두고두고 곱씹어야 할 수도/수행/수양의 화두가 되기도 하거니와, 일찍이 해월 선생도 그 구조와 뜻을 풀어 말씀하신 바가 있다. 


주문만 외우고 이치를 생각지 않아도 옳지 않고, 다만 이치를 연구하고자 하여 한 번도 주문을 외우지 않아도 또한 옳지 아니하니, 두 가지를 겸전하여 잠깐이라도 모앙하는 마음을 늦추지 않는 것이 어떠할꼬. 

내가 바로 한울이요 한울이 바로 나니, 나와 한울은 도시 일체이니라. 그러나 기운이 바르지 못하고 마음이 옮기므로 그 명에 어기고, 기운이 바르고 마음이 정해져 있으므로 그 덕에 합하나니, 도를 이루고 이루지 못하는 것이 전부 기운과 마음이 바르고 바르지 못한 데 있는 것이니라. 

명덕명도 네 글자는 한울과 사람이 형상을 이룬 근본이요, 성경외심 네 글자는 물체(몸)를 이룬 뒤에 다시 갓난아이의 마음을 회복하는 노정 절차니, 자세히 팔절을 살피는 것이 어떠할꼬. 「멀리 구하지 말고 나를 닦으라」 한 것도 나요, 「내 마음을 그 땅에 보내라」 한 것도 나요, 「내 몸의 화해난 것을 헤아리라」 한 것도 나요, 「말하고자 하나 넓어서 말하기 어려우니라」 한 것도 나요, 「내 마음의 밝고 밝음을 돌아보라」 한 것도 나요, 「이치가 주고 받는 데 묘연하니라」 한 것도 나요, 「나의 믿음이 한결 같은가 헤아리라」 한 것도 나요, 「내가 나를 위하는 것이요 다른 것이 아니니라」 한 것도 나니, 나 밖에 어찌 다른 한울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바로 한울 사람이라」 하신 것이니라. 

그러면 나와 한울이 도시 한 기운 한 몸이라. 물욕을 제거하고 도리를 환하게 깨달으면 지극히 큰 지극한 한울이 지기와 지극히 화하여 지극한 성인에 이르는 것이 도무지 나이니라. 

성경외심과 대인접물은 모든 일의 한울이니, 지기와 지극히 화하여 지극한 성인에 이르는 절차 노정이니라. 

이러하면 결코 다른 말이 없고, 이 또한 내 말이 노망 같으나 오직 성인의 가르치신 것이니, 여러분은 밝게 분별하고 힘써 행하여 참된 한울의 이치를 실천하여 다같이 대도 이루기를 크게 원하노라.

[해월신사법설, 수도법(전문)].


인용한 데서 알 수 있듯이, 해월신사법설의 수도법은 그 자체로 '팔절'의 해석이자 해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기와 지극히 화하여 지극한 성인에 이르는 절차'라고 제시되어 있다. 


다만 여기서는 그 팔절의 내용 자체보다, 이러한 '수도법'으로서의 팔절의 완성을 수운 선생과 제자들이 '문답'으로 진행하였다는 것, 그리고 수운 선생이 제자들로 하여금 '글쓰기'를 하도록 지도하였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다. 


팔절의 물음과 대구는 “~이 있는 곳(바)을 알지 못하거든, ~하지 말고, ~하라”는 형식의 한문 구절로 되어 있다. 이는 물론 ‘한문’과 ‘한시’에 익숙한 당시 사람들의 문화와 교양을 바탕으로 해서 이해되어야 한다. 운을 맞춰 시를 짓거나, 대구를 주고 받으며 시회(詩會)를 하던 전통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이를 오늘날의 ‘수련/수학’의 전통으로 계승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오늘날의 교인들이 ‘한문’ ‘한시’의 문화를 좀더 익숙하게 익히거나 둘째로 예전의 팔절 풀이를 현재의 언어/문자 문화를 바탕으로 재구할 필요가 있다. 


팔절 풀이 ‘문화’의 계승은 이처럼 ‘전통’ 복원이라는 과제와 ‘재구’와 '응용‘이라는 과제를 제시해 준다. 


응용의 일례로 ‘명덕명도성경외심(明德命道誠敬畏心)’이라는 ‘화두(話頭)’ 외에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어떻게 살 것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어떻게 살릴 것인가)’ ‘천도란 무엇인가’, ‘포덕이란 무엇인가(어떻게 할 것인가)’, ‘보국이란 무엇인가(어떻게 할 것인가)’, ‘안민이란 무엇인가(어떻게 할 것인가)’, ‘효란 무엇인가(어떻게 할 것인가)’ 등의 주제로 확장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물론 현 시대에 대한 많은 정보와 식견(識見)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정보와 식견만으로 이에 대한 바른 답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의 판단 능력으로 볼 때) 이에 대한 ‘바른 답’이 반드시 하나로만 귀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잘 산다’는 것 하나만 놓고 볼 때도 ‘부(富)’를 기본 척도로 삼는 사람과 ‘명(名)’을 기본으로 하는 사람, ‘심신(心身)’의 안정을 우선으로 하는 사람 등등에 따라 그 답은 제각각으로 달라질 것이다. 물론 그 가운데서도 가장 원천적이고 근본적인 수준에서의 답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답이 모든 이에게 가장 절실하고 가장 중요하며 가장 ‘적확(的確)’한 답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의 일차적인 독자(讀者)는 바로 나 자신이라는 점이다. 즉, 누군가에게 나의 지혜나 깨달음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의문에 대한 답을 얻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이러한 공통된 문제에 대한 각자의 답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본다면, 내가 생각하는 답이 다른 사람의 답과 다를 수도 있다는 것과 심지어는 내가 철석같이 ‘옳다’고 믿은 답이 ‘틀린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발견하는 과외 소득을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유사한 것으로, 조선시대 정부에서 국가 경영의 지혜를 얻기 위해 과거 시험 등에서 시행했던 ‘대책(對策)’도 생각해 봄직하다. 대책이란 원래 조선시대 임금이나 윗사람의 물음[詢問]에 답을 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 물음의 내용은 국가의 시책이나 당면한 정책적 과제에 관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앞서 ‘팔절’의 대구가 교리와 수행에 관한 철학적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면 ‘대책’은 교단이나 기관의 운영 또는 어떤 정책을 시행하는 방안을 묻는 것을 말한다. 널리 교인들의 지혜를 모으는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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